공모전 전문포털 ‘씽굿’의 통계에서 대학생들의 공모전 참여 동기 중 경력 및 이력서 활용을 위한 공모전 도전은 56.1%로 과반수를 넘어가고 있다. 현재 공모전 참여자의 많은 수가 공모전을 입사 지원 시 제시할 옵션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공모전을 통해 취업난을 해결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의도와 기업을 홍보하고 학생들의 발랄한 아이디어를 차용하기 위한 기업의 공모전 주최 의도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공모전 코칭 전문가(이동조씨)와의 인터뷰 중 기업이 아이디어를 요구 한다는 반복조의 말 속에서 아이디어는 찾되 정작 사람은 찾지 않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가운데, 취재 과정에서 실시한 기업 담당자 인터뷰는 추측에 힘을 더하게 했다.
“공모전으로 입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버리는 것이 좋아요. 더구나 국가에서 주최한 대회에 입상을 하거나 공모전을 주최한 기업에 입사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 외의 공모전 경험은 없는 것과 하등 차이가 없어요. 다시 말하면, 공모전에 입상한 경력이 특정 분야나 특정 기업에 대한 관심도의 표현을 대변할 수는 있겠지만, 채용과정에서 테스트 되는 여러 요소가 오히려 더 비중있게 반영되죠.
사실 학교 전공 공부를 하면서 공모전 준비를 하는 게 무리 아닌가요? 저도 사내에 붙어 있는 공모전 포스터를 본적이 있는데, 아이디어 공모전이나 디자인 공모전 등등의 경우는 고객 유치 차원의 행사일 뿐이에요. 전공과 상관없이 이런 공모전에 에너지를 쏟는 것 자체는 채용 시 부정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이지도 않을 거라는 거죠.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이해가 될 거에요.“
취업준비생들과 기업 사이에 인식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몇몇 공모전의 제한적 취업특전 사례가 공모전이라 이름 붙은 다수의 홍보성 공모전으로 확대되어 공모전 열풍에 기여하고 하고 있다. 기업의 아이디어 뱅크로 그리고 홍보수단으로 쓰이는 기업의 전략이 어느새 취업예비군들의 생존프로그램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공모전 수상자의 채용 특전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사원채용 시 옵션이나 가산점 없는 공모전이 상대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동일한 업종의 기업이라 할지라도 자회사에서 주최하지 않는 공모전 수상자에게 취업 특전의 수혜를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공모전의 분야도 참여형 공모전, 즉 IT(웹, 프로그래밍, 애니메이션, 디자인), 마케팅에 80.4%가 집중되어 있다. 인문계열 분야의 공모전은 찾기도 힘들고 참여자도 드물다. 이공대의 공모전 역시도 기초 이론을 토대로 한 학부생들에게는 처음부터 입상이 요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모전이 취업경쟁에 있어 주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카더라’식의 추측이 가뜩이나 부족한 학점 메우랴 영어 공부하랴 바쁜 청춘들에게 유행처럼 공모전까지도 준비하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들의 불안을 부채질하며.
공모전 참여, ‘묻지마!!!’...
한국외국어대학교 방송통신학과에 재학 중인 이호준(21). 그가 계획하는 장래의 진로는 방송사 취업과 영상편집의 두 가지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전공과 진로는 아니지만 관련된 공모전은 많은 편이라 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학교생활은 어떠한가.
“저희 학과 선배들이 졸업해서 취업하는 방향을 말씀드리자면, 전공과 관련되지 않은 쪽으로 취업하는 선배들도 제법 되지만 방송통신학과라는 전공을 살린 취업은 크게 나눠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사로 취업하는 부류와 외주를 받아 영상을 편집하여 운영하는 개인사업체로 취업하는 부류로 나눠지더라고요.
저희가 배우는 영상편집에 대한 부분은 이론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기술적인 요건이 더 중시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면을 보여줄 수 있는 공모전 참여가 다른 곳 보다는 활발한 축에 속하죠. 저희가 참가하는 영상제는 학교공부와 거의 연결되어 있어요. 매학기 학교에서 제출하기를 요구하는 결과물이 있잖아요. 연극영화과나 영상학과의 경우 직접 연출한 영상물인데요, 그걸 공모전에 제출해버리는 거죠. 기왕에 해놓은 건데 한번 쓰고 폐기하긴 아깝잖아요. 그런 식으로라도 이용해야죠.”
자신이 응모한 공모전 진행에는 반년씩 아니면 몇 달씩이나 많은 시간이 요구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짧으면 일주일에서 길어야 한 달 정도를 준비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제출물이란 것이 전공에서 필연적으로 산출될 수밖에 없는 결과물들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제출하는 식이라고 하였다. 이호준은 관심사에 맞춰 동아리도 하나 들었다. 그런데 동방(동아리방의 준말)에 가나 과방에 가나 보는 얼굴은 똑같단다.
“동아리 차원에서 공모전 참여는 많이 해요. 하지만 공모전 참가를 목적으로 동아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에요. 그저 같은 전공자들이 모여 놀다보니 만들어진 동아리고, 단지 저희는 큰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도 공모전 참여가 가능했으니깐요. 게다가 같은 전공으로 구성되다보니 참여인원도 많고, 장비도 빌려 쓸 수 있고 학교측에서 돈도 지원해주죠. 그래서 참가할 기반이 되어 있다 보니 참가했었던 거에요. 그런 조건이 없다면 애써 참가하려 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공모전 입상을 노리거나 특전까지는 기대하지는 않아요. 받으면 고맙긴 하지만요.”
서울소재 대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한 자체 설문결과, 공모전 참가 여부는 17%에 해당하는 인원이 ‘없다’라고 대답하여 20% 내외의 대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공모전 코칭 전문가의 말을 뒷받침해 준다. 공모전 참여 유경험자의 대다수에 해당하는 88%의 참여 동기는 전공과 적성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참여인원의 다수가 이호준의 경우처럼 전공이나 학과에서 산출된 결과물을 이용하여 공모전에 참여한 셈이다.
공모전에 참여하지 않은 원인을 들어보면 현실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현실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응답이 29.4%, 원하는 공모전 정보부족 27.0%, 자신감 부족 21.8%, 너무 어렵다고 느껴서 17.0%, 아이디어 부족이 3.1%이다. 학생들에겐 공모전 참여가 부족한 시간, 부족한 역량에 비해 너무도 버겁게만 느껴지고 있는 모습이다.
여전히 다수의 학생들이 공모전을 취업 전선에서 중요한 스펙으로서 고려하고 있기는 하다. 또한, 공모전에 참여한다는 것은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에 부담만 가중된다고 생각한다. 참여자들 역시 전공에 관련되거나 시간적인 여건, 물질적인 지원이 있다 보니 참여할 뿐이지 공모전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자각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해두면 써먹을 곳이 있긴 하겠지’라는 식이다. 여러 가지 취업 팁이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아직 공모전은 그들에게 깜깜한 취업터널 속의 빛으로 다가오진 못하는 듯 보인다.
공모전은 전문성을 확보하는 전공의 연장인가?
6명의 학생들이 라디오 컨트롤러 조립에 한창이다. 미세한 부품 하나라도 떨어질새라 조심하는 모습이다. 건국대학교 모형 비행기 제작 동아리 ‘해오기’에서는 방학 중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조립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동아리방에는 이불, 갈아입을 여벌의 옷가지, 각종 세면도구들이 한쪽 구석에 어지러이 놓여있다. 다들 며칠씩 학교에서 지냈는지 피곤에 찌든 모습이다.
“보통 비행기 하나를 공모전에 출품하는데 10명이 붙어서 일해도 3개월 정도 걸려요. 방학이 끼면 방학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판국에 학교공부가 문제겠어요? 제가 2점대 초반 학점인데 이것만 아니면 3.5정도는 받았겠죠.”
모임의 좌장 격이던 양회웅(24)이 정확한 학점 밝히기를 쑥스러워 하며 말했다. 책은 들어있지 않고 옷가지로만 가득 찬 가방을 열어 보여주며, 요즘은 거의 학생회관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한다.
“학교 수업도 빼먹을 정도인데, 지금 토익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죠. 이렇게 시간을 투자해도 수상하기가 힘든 마당에 학점관리와 영어공부는 사치죠. 두 마리 토끼를 쫓기는 현실적으로 무리에요. 제가 슈퍼맨이 아닌 이상 공모전을 쫓으려면 다른 부분은 포기해야죠. 보통 아침에 모이면 일단 1시간 정도 회의로 시작해서 설계하고 조립하는데 평균 5시간 정도 걸려요. 점심 먹고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오면 어느새 4시죠. 게다가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추가적으로 4~5시간 정도 더 걸려요.”
시간도 시간이지만 재정적인 면도 크나큰 부담이다. 보통 비행기 부품 마련하는데 드는 비용만 해도 40만원이다. 학교에서 비행기 부품 값 정도는 지원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매일 모여 무언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추가적으로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후배들 목마를까봐 음료수라도 한잔 사줄라 치면 어느새 천원짜리 지폐가 석장이나 자판기에 들어가 버린다. 어제는 깜빡 실수해 모터를 태워버려 눈깜빡할 사이 5만원이 나갔다. 지난번 산업 자원부에서 주최한 UAV(무선 정찰 비행기) 공모전에 들어간 비용은 2000만원이었다. 학교 지원금과 교수가 끌어온 돈으로 부담하기엔 500만원이 비었다. 그래서 갹출해 나머지 비용을 채워야만 했다.
“저희가 하는 공모전이 학과와 전공의 연장이라고 하면 연장일 수도 있겠죠. 여기 있는 모두가 기계항공과 재학 중이니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전문지식과 작업실 기계 때문에 공모전 수상하기는 정말 힘들어요. 그나마 지원이 좋다는 저희도 이렇게 어려움을 느끼는 터에 다른 곳은 오죽 하겠어요. 동아리 성격상 대물림 되는 공모전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그만뒀겠죠. 정말 학과와 전공의 연장이라면 포기하는 부분이 있으면 안 될테죠. 그랬다면 제 학점도 더 좋았을 텐데 말예요.”
전공과 연계되었음에도 부족한 역량과 부족한 시간, 그리고 학생신분에서 감당하기 힘들었던 자금문제에 대해 언급했던 양회웅과 비행동아리 ‘해오기’ 회원들의 모습은 공모전이 학과와 전공의 연장이기 때문에 큰 부담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 공모전 전문가들의 말과는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인다.
그나마 자신들의 경우 지원이 좋은 편이고 자신들처럼 한 분야의 공모전에 몰두하는 대학생들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행동아리 회원의 말에서 대학사회를 강타하는 공모전 열풍을 느끼기는 힘이 들었다. 공모전 열풍은 대세가 아니고 누군가의 고육지책은 아니었을까.
2007.11.27 08:22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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