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의 로고가 인쇄된 간판. 전 세계에서 1만30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벅스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화현상으로 부상했다.
강인규
스타벅스가 누리는 인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사람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훌륭한 커피 맛과 서비스'라는 교과서적 답변에서 '경영자 개인의 뛰어난 비전과 마케팅 능력' 때문이라는 처세적 영웅담, 그리고 '서구 문화에 환장한 철부지들의 허영'이라는 힐난까지.
나름의 근거를 갖춘 설명도 있지만, 대부분의 답변들이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비껴가고 있다. 바로 '사회'다. '스타벅스가 어떻게 인기를 얻었나'라는 질문은 '사회는 왜 하필 이 시기에 스타벅스식의 다방문화를 받아들였느냐'는 물음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만 보아도 커피체인의 선두주자는 스타벅스가 아니었다. 이미 1950년대에 커피 체인을 시작한 '던킨도너츠'가 있고, 스타벅스에 앞서 전국의 주요 대학가를 중심으로 에스프레소 음료를 선보인 '에스프레소 로얄(Espresso Royale)'도 있었다.
이들이 스타벅스처럼 비약적인 성장을 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 내에서 꾸준하게 매장 수를 늘려왔다. 이는 미국사회가 스타벅스 이전부터 커피체인과 에스프레소 음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사람들이 스타벅스에 보인 특별한 반응을 생각할 때, 이 커피숍 체인엔 분명 남다른 면이 있다. 무엇일까?
'괴상한 이름의 음료를 파는 이국적 커피숍'스타벅스의 커피맛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지만, 결코 뛰어나지는 않다. 스타벅스는 '좋은' 커피보다는 '다른' 커피를 판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스타벅스는 다양한 에스프레스 음료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의 커피마저 오래 볶은 원두를 써서 미국인들이 전에 보지 못한 진한 커피를 내놓았다.
담아주는 용기마저 기존의 '작은 컵,' '중간 컵,' '큰 컵' 대신 '톨(Tall),' '그란데(Grande),' '벤티(Venti)'라는 (미국인들의 표현을 빌면) '기괴한'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어로 '20'을 뜻하는 '벤티'는 '20온스들이 컵'이라는 의미라 치더라도, '크다'는 뜻의 영어 '톨'과 역시 '크다'는 뜻의 이탈리어어 '그란데'를 컵 구분용으로 쓴 것은 실로 기괴한 결정이었다.
스타벅스의 한 직원에게 물었다. "왜 작은 컵에 '큰'이라는 이름을 붙여 팔까요?" 직원은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인다. "작은 커피를 사면서 '큰' 것을 받으면 기분은 좋아지지 않겠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정체 모를 '유럽적 분위기' 연출이라는 제 역할은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 출신의 한 대학원생(30)과 미네아폴리스 출신의 작곡가(34)에게 스타벅스가 주는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그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카페모카,' '라테,' '캬랴멜 마끼아또' 등 외국어로 된 음료를 팔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애쓰는 커피 체인.""대낮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 안 보고 갈 수 있는, 분위기 괜찮은 바. 보통의 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술 대신 커피를 판다는 것." 미국인들에게 스타벅스는 아직까지도 기묘한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장소다. 이런 '이국적' 느낌을 심어주는 것이 생소한 음료 이름이나 앞치마 두른 '바리스타'만은 아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4000원짜리 커피'라는 것은 '발상의 전환'에 가까운 충격이었다. 미국인들에게 '커피'란 간이식당에서 여종업원들이 계속 채워주는 1불 50센트짜리, 또는 주유소에서 사서 차 안에서 마시는 2불짜리 미지근한 음료수(도넛 두 개를 포함한)였다.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과시소비' 및 '허영'의 상징으로 부각시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스타벅스 가격대의 커피는 한국사회에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스타벅스는 '정상가'의 두세 배를 받으면서도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현상이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포벅스(Fourbucks)'라는 냉소('4달러'라는 뜻에서)를 거두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지난해 4월 23일 미국 CBS의 시사프로그램 <60분>에서는 스타벅스 열기를 보도하면서 이렇게 서두를 열었다.
"어느 누가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줄을 서서 4불이나 되는 커피를 살 것이라 상상했겠는가? 도대체 어느 누가 우리들이 커피숍에 들어가서 태연히 '더블 샷에 시럽은 한 번만 담고, 저지방 우유로 거품을 내어 얹은 캬라멜 마끼아또 주세요'라는 주문을 하게 될 거라고 믿었을까? '마끼아또'라는 건 또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