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성인이 화살을 맞다

<유럽기행 16> 잘츠부르크(Salzburg) 돔 기행

등록 2007.12.04 09:07수정 2007.12.0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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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이 잘츠부르크에 머물렀던 기간은 음악 축제 일주일 전이었다. 나의 가족은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처음 시작되었던 돔 광장에 도착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일컫는 돔의 광장에는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위해 가설된 계단식 객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축제의 객석 때문에 1771년에 제작되었다는 돔 앞의 마리아 상이 초라해 보였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잘츠부르크 가톨릭 역사를 상징하는 대형 건축물이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잘츠부르크 가톨릭 역사를 상징하는 대형 건축물이다. 노시경
▲ 잘츠부르크 대성당. 잘츠부르크 가톨릭 역사를 상징하는 대형 건축물이다. ⓒ 노시경

 

역사 깊은 성당

 

잘츠부르크 돔은 유럽 대도시의 다른 성당들처럼 외관이 웅장하다. 744년에 처음 건설된 성당이라고 하니 역사가 아주 오래된 성당이다. 잘츠부르크 돔은 12세기 후반에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고쳐졌고, 1598년의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세기 초에 현재와 같이 돔을 얹은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오랜 역사의 이 성당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성당의 일부가 다시 파괴되었다가 1959년에 재건되었다.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답게 대리석으로 된 쌍탑이 마주보고 서 있다. 햇빛 아래 돔과 첨탑의 청록색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돔의 입구에는 성인들의 인상적인 석조 조각상들이 서 있다. 이 흰색의 조각상들은 손잡이가 황금으로 된 칼을 들고 있고, 끝이 황금으로 장식된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황금색으로 치장된 열쇠를 쥐고 있다. 이 황금들은 백색의 대리석 사이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성당 입구의 베드로상. 그는 손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황금열쇠를 쥐고 있다.
대성당 입구의 베드로상.그는 손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황금열쇠를 쥐고 있다. 노시경
▲ 대성당 입구의 베드로상. 그는 손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황금열쇠를 쥐고 있다. ⓒ 노시경

 

성스러우면서도 우아하고 격조 있는 성당 내부

 

천국의 황금열쇠를 왼손 높이 들고 있는 이는 베드로(Peter the Apostle)이다. 굳이 이 성당에 베드로가 자리한 것은 잘츠부르크를 다스리던 가톨릭의 주교가 자신이 어린 시절을 지냈던 로마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를 알프스 이북의 로마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잘츠부르크의 주교는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인 베드로의 손에 들린 번쩍거리는 황금제 열쇠를 통해서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사고가 나에게는 못내 거북스러웠다.

 

로마시대에 도시가 형성된 잘츠부르크에는 로마가 멸망한 이후인 8세기에 주교청이 설치된다. 가톨릭의 주교청이 설치된 잘츠부르크는 교회령이었고, 주교가 통치를 하게 되었다. 자연히 이 도시는 가톨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고, 이 잘츠부르크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이 잘츠부르크 대성당이었다.

 

대성당의 3개 석상 옆에 자리한 성당의 문도 특이하다. 성당 내부로 인도하는 성당 입구의 문이 3개나 있는데, 이 문들은 왼쪽의 문부터 신앙, 사랑, 희망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가족을 데리고 신앙의 문을 통과했다. 나는 성당 앞의 성인들이 든 황금과 성당 문에 작위적으로 지어진 이름들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흔한 관광상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성당의 내부는 달랐다. 순결한 백색의 성당 내부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성스러우면서도 우아하고 격조 있는 공간이 내 가족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약간은 평범해 보이는 대성당의 외부와는 달리 대성당 내부는 인상적인 내용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자랑한다.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자랑한다. 노시경
▲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자랑한다. ⓒ 노시경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연주한 파이프 오르간

 

성당 내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세계 최고의 소리를 자랑한다는 파이프 오르간이다. 성당 벽면에 자리한 이 파이프 오르간은 바로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이 성당에 근무하면서 연주했던 바로 그 파이프 오르간이다. 이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던 모차르트도 1779년부터 이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다.

 

이 파이프 오르간이 대성당의 넓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순간은 당연히 미사가 진행 중일 때이다. 이 파이프 오르간에 걸맞은 것은 성가대의 합창일 것이고,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성가대 합창은 웅장하게 성당 내부를 울릴 것이다. 파이프 오르간의 아름다운 소리는 하늘에 가서 닿았을 것이다. 나는 실제로 이 파이프 오르간 연주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속이 상했다. 최고의 소리를 탐닉할 수 있는 공간 속을 나는 무의미하게 걷고 있었다.

 

나는 중앙 제단을 향해 걸었다. 성당 내부의 중심은 전체적으로 조명이 어두웠지만, 벽과 천장에 난 창문을 통해 하늘과 소통하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성당 내부를 채운 백색의 색조가 밝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천장과 벽면에 그려진 화려한 성화들 때문에 스테인드 글라스는 만들지 않은 듯하다. 화려한 성화 곁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는 그 화려함이 묻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대성당 천장의 성화. 높은 천장에 자리한 성화는 알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대성당 천장의 성화.높은 천장에 자리한 성화는 알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노시경
▲ 대성당 천장의 성화. 높은 천장에 자리한 성화는 알 수 없는 감동을 준다. ⓒ 노시경

 

저 높은 곳에다 어떻게 그림을 그렸을까? 

 

이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것은 고개를 들어서 봐야 하는 천장에 있었다. 천장 돔의 내부 공간에는 가톨릭 성화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 천장의 돔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절로 감탄사가 나오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감동이 몸에 퍼지고 있었다. 성화의 섬세함이야 이루 말할 나위 없지만, 내가 더 궁금한 것은 어떻게 저렇게 높은 천장의 궁륭에 그림을 그려 놓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서기에도 너무 높은 곳에 천장의 돔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돔의 아래, 바로크식 중앙 제단에는 십자가를 손에 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성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제단 아래에는 노랗고 하얀 꽃 수십 다발이 제단을 장식하고 있었다. 제단이 너무 화려하기는 했지만, 갈색의 대리석 기둥이 은은한 백색의 성당 벽면과 잘 조화되어 있었다. 이 대리석 기둥은 성당 설계에도 영향을 미친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성인을 그린 그림 앞에서 멈춰 섰다. 나의 딸 신영이가 이 성화 앞에서 촛불을 밝히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열렬한 그리스도교 신도이자 로마 친위대의 젊은 장교였던 세바스티아누스는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 발가벗겨진 채로 화살을 맞고 처형을 당한 인물이다. 화살을 맞고 거의 죽었다가 회복되었던 그는 그리스도교인으로서 황제에게 다시 도전하여 몽둥이를 맞고 죽었다.

 

세바스티아누스 성화. 고통 속에 죽어간 성인이 너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세바스티아누스 성화.고통 속에 죽어간 성인이 너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노시경
▲ 세바스티아누스 성화. 고통 속에 죽어간 성인이 너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 노시경

 

  신영이는 투명하고 붉게 빛나는 양초에 촛불을 켜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지만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세바스티아누스의 모습이 어느 여인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중성적인 매력이 풍겼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젊은이가 죽음을 불사하고 신앙을 지켰기에 더 추앙을 받는 것인가?

 

  젊은 군인이면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세바스티아누스는 거의 벌거벗은 몸매 안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볼수록 처참하게 죽어갔을 처형 장면을 너무 자극적이고 아름답게 그려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중세의 신 중심 세상에 살던 이들이 그들의 억압받던 욕망을 이 화폭에 남겨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세의 유럽인들은 인체의 아름다움과 욕망을 순교한 성인의 몸을 빌려 표현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성당 안에는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성당의 긴 예배석에 앉아 여행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차분하게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있는 그들은 성당 안을 돌면서 사진 찍기에 열중인 나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 이 성당의 외형을 사진에 담기보다는 이 성당의 정신적인 내력을 듣고 있는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렇게 차분히 앉아 설명만 듣고 성당을 떠난다는 것은 내 성격과 전혀 맞지 않았다.


  아내는 성당 뒤편의 긴 예배석에 앉아 성당의 천장과 성당 내부의 이모저모를 훑어보고 있었다. 돌아다니지 앉고 편히 쉬면서 눈으로 성당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와 딸이 이 성당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휴식과 명상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딸, 신영은 어린 여행가라면서 성당의 이곳저곳을 기록에 남겼다. 나는 나의 딸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먼 이국에서 딸을 잃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딸을 잘 데리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2.04 09:07ⓒ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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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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