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 쪽문 근처 자취촌. 수많은 집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대부분의 성대생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
홍현진
A양이 성추행을 당한 것은 지난 9월 18일 7시 20분쯤, 추석이 되기 며칠전이었다.자취방으로 가고 있던 A양의 가슴을 누군가 만지고 달아난 것이다. A양이 성추행 당한 곳은 학교 쪽문(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았고 가로등도 있는 곳이었다.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던 A양은 평소에 성추행과 관련 이야기를 접했을 때, 자신이 만약에 그런 일을 당한다면 성추행범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근처 파출소 전화번호까지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다녔다는 그녀는 그러나 성추행을 당한 그 순간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눈물만 났다고 했다.
그녀는 말했다. 성추행을 당하기 전과 당하고 난 후의 세상은 너무도 달랐다고.
그녀는 파출소에도 가보고 교내 학생지원팀에도 찾아갔지만 가해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곧 긴 추석연휴가 다가왔기 때문에 사건 해결은 그렇게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하지만 A양은 순간순간 성추행범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느꼈다. 그리고 한 달쯤 뒤에 성균관대학교 커뮤니티인 '성대사랑'을 통해 또 한 건의 성범죄 사례를 접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자취방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성범죄가 발생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한 이는 성균관대만의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만 잠깐 치안이 강화되는 듯 하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A양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다른 여학우들의 피해사례를 수집하면서 자신이 당한 일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며 학교 주변 치안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총여학생회와 함께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고 피해사례를 수집했다.
11월 30일까지 총 15건의 피해사례가 접수되었고, 자취촌 근처에서 성추행을 시도하던 가해자 한 명(만 16세)이, 대자보를 본 성대 남학생에게 붙잡혔다. 현재 A양은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혜화경찰서에 의뢰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인데 범죄 유형을 살펴볼 때 총 4~5명 정도의 가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고하기 두려운 피해자들피해자들의 사례를 수집하면서 그녀는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말했다. 수사를 하려면 피해자들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밝히기를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연락이 끊긴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가 신고를 하고 수사를 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2차·3차의 피해를 입게 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A양 역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과정에서 왜 사람들이 신고를 안 하는지, 이 과정을 끝까지 끌고 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요청을 통해 여자 경찰과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남자 경찰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찰서에서 자신이 겪은 성추행 사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그것은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내 성평등상담실 B연구원은(실제 이름과는 관련없음) 캠퍼스 주변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의 유형이 강간과 같은 비교적 높은 수위의 성범죄가 아니라 가슴을 만진다든지, 자위를 한다든지 하는 비교적 낮은 수위의 성범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일을 크게 만들기 싫어서 그냥 신고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2007년 한 해 동안 학교 측에 신고된 성범죄는 지난 11월에 A양이 신고한 것이 처음이었는데 A양이 보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접수받은 피해사례가 15건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밝혀지지 않은 성범죄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