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돌담 길

담장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등록 2007.12.08 05:09수정 2007.12.08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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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 돌담길이 있네.”
 

돌이 박힌 담장이 서 있었다. 정겨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고향의 골목길이 생각난다. 물론 그 곳의 돌담은 순수하게 돌로만 쌓았던 돌담장이었다. 그래서 힘을 세게 가하면 담장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그렇지만 폭풍우가 몰아쳐도 담장은 언제나 그 자리를 굳건하게 잘 버티고 있었다.

 

a 돌담 길

돌담 길 ⓒ 정기상

▲ 돌담 길 ⓒ 정기상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 온 지가 5 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사이에 서 있는 담장을 보지 못하였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담장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파트를 건축할 당시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것을 보지 못하였을 뿐이었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담장에 박혀 있는 돌들이 그렇게 앙증맞을 수가 없다. 하나 같이 매끄럽고 곱다. 돌에서는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울려나올 것만 같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있던 이런저런 사연들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송사리를 잡고 있던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하다.

 

  퇴근하였는데, 약속 시간까지에는 여유가 있었다. 자투리 시간을 어찌 보낼까 생각하다가 아파트 주변을 둘러보게 된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눈에 들어오는 담장을 보고 포근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담장의 오밀조밀함이 마음에 고스란히 전해지니, 잊어버리고 있는 고향 생각이 새로워지는 것이었다.

 

  담장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돌아다본다. 오늘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쁜 일도 있었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이 그렇지 못한 것이 마음을 무겁게 잡고 있었다. 결과를 통해 분명 무엇인기 잘못 살았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a 그리워지는 고향 고향

그리워지는 고향 고향 ⓒ 정기상

▲ 그리워지는 고향 고향 ⓒ 정기상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해낸 일을 결과적으로는 나만이 해내지 못한 것이다. 참담한 심정을 주체하기 어렵다. 감정은 폭발 직전이었다. 그렇지만 그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나 자신의 일이니,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그러니 더욱 더 착잡해지는 것이다.

 

  어지러워진 마음을 담장이 잡아준다. 추구하는 일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어 그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것에 매달려 있을 때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집착은 나 자신을 가두어버린다는 점을 잊고 있었다. 담장에 박힌 돌들은 그 점을 깨우쳐 주었다. 담장을 바라보면서 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낸 것이다.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다. 한 가지 일을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일이 분명히 있다. 이루지 못한 일에 집착하다보면 결국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를 꽁꽁 묶어놓고 있던 밧줄을 잘라낸 듯한, 느낌이 든다. 그 것은 자유였다. 나를 가두고 있던 곳에서 탈출한 느낌이었다.

 

  나무만을 바라보면서 그 것에 집착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무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나무들과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다. 집착하게 되면 숲은 볼 수가 없고 나무만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나를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은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a 편안해지는 마음

편안해지는 마음 ⓒ 정기상

▲ 편안해지는 마음 ⓒ 정기상

  모든 사람이 똑 같이 성취하고자 하는 일을 다 얻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있듯이 달라야 한다. 한 가지 일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여 실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일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담장을 바라보면서 왜 진즉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였는지, 후회가 된다. 담장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전주시 삼천동에서 촬영

2007.12.08 05:09ⓒ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사진은 전북 전주시 삼천동에서 촬영
#돌담길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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