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알아낸 우리나라 둘레는 2910km

[환경을 생각하는 자전거 전국 여행 마지막회] 화천에서 강릉까지

등록 2007.12.10 09:25수정 2008.01.3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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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경을 자랑하는 화진포 호수.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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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한 바퀴 완주를 끝내고... ⓒ 이규봉


2006년 8월, 제주도 일주를 시작으로 떠난 '환경을 생각하는 자전거 전국 여행'이 화천에서 고성을 경유하여 강릉에 도착함으로써 그 막을 내렸다. 제주도 한 바퀴 260km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한 바퀴의 거리는 2910km였다.

11월 17일 막 제대한 큰 아들과 함께 화천을 출발했다. 461번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평화의 댐 이정표를 따라 460번 도로로 들어섰다. 과연 강원도답게 길은 계속 오르막을 유지한다.


마침내 '최북단 최고봉 최장 터널'이라는 해산터널이 나타났다. 터널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것이 없었더라면 앞에 보이는 저 산을 또 넘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위성항법장치(GPS)를 보니 터널은 출발지점보다 600여m 더 높은 곳에 있다. 최장 터널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 길이는 1986m라고 적혀있다.

터널을 지나자 마치 올라온 고생을 보상받듯 내리막을 10여㎞나 굽이굽이 달리며 평화의 댐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북한강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평화의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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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기만하여 정권유지를 위해 만든 평화의 댐. ⓒ 이규봉


'평화의 댐 사업내용'이라는 표지석에는 그 목적이 "평화의 댐 상류지역에 급격한 홍수사태 발생 시 북한강 수계 댐의 안정성 확보 및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적혀 있으며, 추진 경위에 "1986. 10. 21 북한 금강산발전소 착공 발표, 1986. 11. 26 정부 대응 댐 개념으로 평화의 댐 건설계획 발표"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미 전두환 정권이 정통성을 상실하고 평화의 댐이 정권유지 차원에서 조작되어 시민을 기만하여 세워졌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말에 세워진 이 표지석에는 그들이 국민을 기만한 주장 그대로 목적에 적혀있으니 이 비석을 세운 관련자들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다.


어차피 세워진 댐을 다시 허물 수는 없지만, 당시 전두환 정권이 어떻게 시민을 기만하여 이 댐을 조성하였는지에 대한 진실이 담긴 조형물을 설치하여 이러한 일이 후대에 다시는 발생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평화의 댐'을 지나 2㎞ 정도 더 내려가자 다시 오르막이 기다린다. 5㎞ 정도를 꾸준히 올라가니 국토지리정보원이 세운 수준점에 해발 474m라고 적혀있는 오천터널이 나온다. 1298m나 되는 터널을 지나 8㎞를 내려가니 또 오르막이다.

이번에는 15㎞를 따라 올라가니 해발 600m 지점에 도고터널이 나온다. 도고터널을 지나자 잠시 후 31번 국도로 갈라진다. 해안면 방향으로 가다 광치령 이정표를 보며 따라가니 급한 경사의 오르막이 또 나온다.

한 3㎞를 오르니 마지막 고개 광치터널이 나온다. 15㎞ 정도를 줄곧 내려가면서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들어서니 5시쯤 되었다. 강원도에 전입신고나 하듯 높은 고개 4개를 넘은 이번 구간이 우리나라 한 바퀴 도는 여행의 전 구간을 걸쳐 가장 힘들었던 구간으로 생각된다.

고개 넘어 또 고개, 터널 지나 또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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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종착지 진부령에서 아들과 함께. ⓒ 이규봉


다음 날 오전 9시에 원통을 출발하여 진부령으로 향하였다. 이 역시 높은 고개라 생각하였으나 별로 힘들지 않게 두어 시간 달리자 눈앞에 '해발 520m 진부령'이라는 이정표가 붙어 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앞에 '백두대간 진부령'이라는 비석이 서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하였다. 27㎞에 걸쳐 한 300m 정도 올라 왔으니 매우 완만한 고개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리막은 아주 달랐다.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영서쪽으로는 완만하고 영동 쪽으로는 급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진부령에는 어울리지 않게 한 쪽에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진부령 미술관이 있다. 아쉽게도 휴관하는 날이라 관람하지 못하였다. '백두대간 진부령'이라는 비 아래에는 백두대간을 종주한 등산객들이 무리지어 있어 백두대간을 중도에 하차한 나는 그들을 경외하며 한 편으론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진부령에 오르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았지만 진부령에서 내려가는 맛은 환상적이었다. 올라올 때와 달리 경사진 길은 굽이굽이 23㎞나 뻗어 있었다. 간성읍 광산리의 광산초등학교를 지나자마자 왼쪽 해상리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섰다. 해상리와 석문리를 지나 송정교에서 노인산을 돌아가는 길을 택하였다.

이 때부터 아들이 무릎이 아프다며 힘들어했다. 젊은 나이만 믿고 연습 없이 떠난 것이 첫 날 큰 고개를 만나 너무 무리를 한 것 같았다.

지도에 나있는 소로를 따라 가니 산불예방을 계도하는 관용차가 서있다. 길을 물으니 포장도로가 끊어지고 비포장도로로 간다고 한다. "아들이 무릎이 아파 힘들어 하니 좀 태워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하였으나 그는 "관할구역을 떠날 수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한다. 잠시 후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갈 길은 멀어 아들과 다시 만날 곳을 기약하고 나 먼저 갔다.

산을 돌아가는 비포장 길이 계속 이어졌다. 아들이 성인일지라도 뒤에 두고 온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앞에 보니 트럭이 길을 막고 사람들이 무엇인가 캐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뒤에 오는 아들을 이곳까지 태워다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자 중년의 그는 트럭을 돌려 부리나케 데리러 갔다. 잠시 후 트럭이 되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감사함을 표하고 성의를 표시하려 하자 그 사람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내민 손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통일전망대, 자동차는 되고 자전거는 왜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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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안보공원에서. ⓒ 이규봉


아들을 태워준 주민은 "이 곳은 매우 추우니 어서 가라"며 "계속 내리막이니 가기 편할 것"이라고 한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내려가니 과연 계속 내리막이었다.

배봉리를 지나 고성으로 가는 7번 국도와 만났다. 도로확장 공사 중인 그 곳 인부에게 물으니 전망대에 들어가려면 한 3km 뒤에 있는 통일안보공원에 가서 출입증을 받아와야 한다고 한다.

아들을 먼저 북쪽으로 보내고 나 홀로 남쪽 통일안보공원으로 출입증을 만들러 갔다. 그러나 "통일전망대에 차는 들어갈 수 있어도 자전거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출입증도 만들지 못하고 다시 통일전망대를 향하여 갔다. 분단을 상징하는 통일전망대 입구는 군인이 지키고 있어 사진도 찍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전망대까지 차는 들여보내고 자전거는 못 들어가게 하는 곳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통일전망대를 대신하여 다시 통일안보공원으로 와서 '비무장지대를 평화생태공원으로 하자'는 현수막을 펼치고 촬영하였다. 금강산콘도를 지나 화진포로 들어서니  오후 5시가 되어 어두워졌다.

한국전쟁의 수혜자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철책선

여행의 마지막 날인 11월 19일 9시에 출발하여 화진포를 한 바퀴 돌았다. 육군휴양소 옆에 가칭 김일성 별장이 있고 그 아래에 이기붕 별장, 건너편에 이승만 별장이 화진포를 중심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 한민족 거의 모두가 한국전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했으나, 단 3명만이 전쟁의 엄청난 혜택을 입었다고 한다. 그 중 둘이 이승만과 김일성이라고 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남으로 인해 이승만은 실각의 문턱에서 대통령을 연임할 수 있었고, 김일성 역시 반대파를 숙청할 수 있어 권좌를 오랫동안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한 사람은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군부대에 암약하고 있던 공산주의자이다. 그는 김창룡에게 발각되어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전쟁 탓에 군대에 복귀한 후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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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김일성별장.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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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이승만 별장. ⓒ 이규봉


참으로 아름다운 화진포를 돌아 거진항을 거쳐 동호리 해수욕장 앞으로 지나간다.

백사장이 아름답게 매우 길게 뻗어있지만, 그 긴 구간에 철책망이 나란히 서있는 것이 애처롭게 느껴질 뿐이다. 옛날과 다르다면 민간인이 많은 곳은 철조망이 아닌 좀더 보기 좋은 철책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마치 남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감옥같이 만드는 해안가마다 줄지어 서 있는 철조망은 이제 걷어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언제까지 안보를 핑계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이러한 철조망을 유지해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우리나라 둘레, 드디어 알았나

무릎 부상으로 결국 아들은 속초에서 버스를 타고 강릉에 갔다. 속초 청조호에 들어서니 모범적인 자전거도로가 보였다. 대체로 자전거도로가 부실하지만 몇몇 지방의 자전거도로는 아주 잘 되어 있다.

경포호 쪽으로 가려 했으나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7번 국도를 계속 따라가 결국 강릉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둘레는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으로 시작한 이번 여행으로 나는 우리나라 한 바퀴를 자전거를 이용하여 최초로 완주하였으며, 그 둘레는 약 2910㎞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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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에 줄지어 서 있는 철책망.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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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청조호의 모범적인 자전거 도로.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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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이동한 경로. ⓒ 이규봉


1. 화천-평화의 댐-원통 구간에 4개의 높은 고개가 있다.
2. 고성통일전망대에 들어가려면 사전에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그러나 자전거는 들어갈 수 없다.
3. 여행의 모든 구간에서 GARMIN사의 GPSmap 60CS를 사용하여 길을 찾고 거리를 측정하였다.

거리(280km)

화천-91㎞-원통-82㎞-화진포-107㎞-강릉


#평화의 댐 #진부령 #통일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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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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