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동안 동행이었던 차와의 이별

헌차에서 누리던 여우가 더더욱 그리워진다

등록 2007.12.10 14:18수정 2007.12.1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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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거반 12년 가까이 먼 거리나 가까운 거리를 움직일 때 마다 동행이 되었던 차와 지난 11월 이별을 하였다.

거반 12년 가까이 먼 거리나 가까운 거리를 움직일 때 마다 동행이 되었던 차와 지난 11월 이별을 하였다. ⓒ 임윤수

거반 12년 가까이 먼 거리나 가까운 거리를 움직일 때 마다 동행이 되었던 차와 지난 11월 이별을 하였다. ⓒ 임윤수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과는 정(情)이 든다. 생명이 있는 생물이건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건, 값이 나가는 비싼 것이든 가치가 없는 싼 것이든지에 상관없이 오래 함께 하다 보면 ‘미운 정’이라는 말이 있음에서 알 수 있듯 알게 모르게 정이라는 게 든다.

 

12년 가까이 타던 차와 이별을 하다

 

10여 년이 넘게 발이 되었던 자동차와 이별을 하였다. 1996년 6월에 출고된 차니 거반 12년이 가까운 차령이다. 자가용과 주인으로 연이 이어진 후, 먼 거리든 가까운 거리든 함께 달려온 거리가 삼천리금수강산을 266바퀴쯤 돌고도 남을 80만 리, 32만1975Km의 거리를 함께 다녔으니 동고동락의 순간들도 참말 많았다.

 

몇 년 전부터 주변사람들로부터 차 좀 바꾸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꿋꿋하게 몰고 다녔다. 점점 커지는 엔진소리, 가속을 하려면 시커멓게 내뿜는 매연, 광택을 잃어 희뿌연 해지는 차체가 차 좀 바꾸라는 말들을 하게 하였지만 바꿀 생각도 없었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거창한 변명이 될 것 같아 쉽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차에 예속됨 없이 내 맘대로 부리는, 주인으로서의 자유를 만끽하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가 새것이었을 때는 차 때문에 마음 상하고, 차 때문에 불편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접촉사고로 약간의 흠집만 생겨도 마음이 불편해지고, 조금 험한 곳을 가려 해도 차에 흠집이 생길까 봐 주저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일이 있었으니 차를 타고 다니는 게 아니라 모시고 다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새 차는 주인을 편안하게 하는 게 아니라 불편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a  주행거리가 32만 Km를 넘었으니 삼천리금수강산을 260바퀴 이상이나 도는 먼 거리, 80만 리를 함께 한 차다.

주행거리가 32만 Km를 넘었으니 삼천리금수강산을 260바퀴 이상이나 도는 먼 거리, 80만 리를 함께 한 차다. ⓒ 임윤수

주행거리가 32만 Km를 넘었으니 삼천리금수강산을 260바퀴 이상이나 도는 먼 거리, 80만 리를 함께 한 차다. ⓒ 임윤수

눈에 보이지 않게 차에 얽매여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차가 헌것이 되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 누군가가 부주의로 접촉사고를 내도, 운전미숙으로 슬쩍 긁고는 어쩔 줄 몰라 미안해할 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헌차가 되면서 여유가 생기는 것은 물론 새 차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울퉁불퉁한 산길도 망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전천후의 교통수단이 되었다.


헌차, 차를 부릴 수 있는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어서 좋았다

 

길이 나있어 경운기 정도가 갈 수 있는 길이라면 산길이건 들길이건 거침없이 들어갈 수 있으니 4륜의 진가는 물론 차를 부리는 쾌감이 있었다. 차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니 효도를 할 기회도 갖게 되었다. 마음엔 있어도 나이를 먹어 불편해진 다리 탓에 가보지 못하는 아버지 산소에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교통편이 될 수 있었으니 헌차였지만 유일하게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효도의 차가 되어 몸도 마음도 편하게 하는 좋은 차였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적지 않은 주행거리를 쌓아가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비포장 산길을 내려오다 두 바퀴가 펑크 난 채 낭떠러지에서 매달려 있기도 하고, 인사사고를 내 저주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험한 길을 오르다 양쪽 바퀴가 다 빠지면서 차체가 들려 오도 가도 못해 트랙터나 굴착기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니 정말 마음 편하게 부릴 수 있는 차였으니 차 좀 바꾸라는 건성의 말쯤은 무시할 수 있었다.

 

흐르는 세월은 차도 어쩌지 못하는지 차령이 10년을 넘으면서 겨울에 시동을 걸 때면 감기라도 걸린 듯 쿨룩쿨룩 기침소리를 내고, 동네가 뿌옇게 되도록 매연을 내뿜는다. 남들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털털거리는 차였지만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연장해 보려 정비를 해가며 계속 탔지만 쏟아지는 매연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a  자동차가 수명을 다했음을 확인하는 말소등록사실증명서를 받아드니 그 차와 함께 하였던 순간들이 일순간에 그리워진다.

자동차가 수명을 다했음을 확인하는 말소등록사실증명서를 받아드니 그 차와 함께 하였던 순간들이 일순간에 그리워진다. ⓒ 임윤수

자동차가 수명을 다했음을 확인하는 말소등록사실증명서를 받아드니 그 차와 함께 하였던 순간들이 일순간에 그리워진다. ⓒ 임윤수

정기 검사를 맡으며 매연이 문제가 되어 이미 정비를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정비에 따른 부담이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될 만큼 늘어만 간다. 에어컨 콘덴서는 물론 냉각수를 식혀주는 방열판, 배터리, 타이어 등이 릴레이를 하듯 계속 문제를 일으켜 한 달여 전 어쩔 수 없이 차를 처분하니 10년 벗과의 이별이다.

 

매연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새 차에서 느낄 수 있는 외양적 체면보다 헌차에서 얻을 수 있는 편한 마음과 경운기가 가는 곳이면 다 갈 수 있다는 여유로움을 기꺼이 선택하고 싶지만 아침마다 벌어지는 매연전쟁에 포기를 했다.

사람으로 치자면 사망확인서에 해당하는 ‘자동차말소등록사실증명서’를 건네받는 순간 그 차와 함께 하였던 시시 때 때, 방방곡곡이 눈앞에 아롱거린다.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먼 거리를 함께한 동반자,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설악산, 지리산은 물론 바다 건너 울릉까지 동행을 하였던 자동차기에 그리울 만큼의 정도 들었지만 새로 구입한 차에서 다시금 불편함이 느껴지니 그 차에서 누리던 여유가 자꾸만 그리워진다.

 

나만의 좀스러움 때문인지 모르지만 긁히기라도 할까 봐 알게 모르게 새 차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얼마쯤의 시간은 지나야 찾을 수 있을 그 자유, 차를 모시는 게 아니고 부릴 수 있는 여유와 자유가 언제쯤 다시 찾아올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2007.12.10 14:18 ⓒ 2007 OhmyNews
#자동차 #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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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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