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 금지어 지정 코너 좋아요

등록 2007.12.11 16:13수정 2007.12.1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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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 홈페이지 ⓒ imbc

글을 쓰는 이들에게 강렬한 쾌감을 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조회수’이다.

수만 명이 내 글을 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온 몸에 전율이 짜릿하게 전해올 때도 있다. 내 글을 많은 이들에게 보이고 싶고, 읽어주기를 바라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에게 가장 강렬한 쾌감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시청률’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쓰는 이들이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글이 읽히기를 바라는 것처럼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도 많은 이들이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기를 원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TV 프로그램의 경우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때로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철저히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바로 동시간대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경우이다. 최근 <이산>과 <왕과 나> 사이에서 <얼렁뚱땅 흥신소>가 호평을 받으면서도 맥을 못 춘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시청률이 낮은 경우에도 그 프로그램이 높은 완성도나 좋은 모습을 보일 때면 열성적인 시청자들이 제작진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어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기운을 월요일 밤 KBS 예능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  SBS 예능 프로그램<야심만만>과 경쟁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MBC 예능 프로그램<지피지기> 제작진에게 전달해주고 싶다.

얼마 전 <지피지기>는 이영자, 박수홍이라는 카드를 버리고 새로운 승부수를 띄웠다. <무한도전>을 통해 인기가 급상승했으나 여전히 메인 MC로는 다소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 박명수를 앞에 내세운 것이다.


여기에 현영과 정형돈, 그리고 무려 4명이나 되는 미녀 아나운서들을 대거 투입시키면서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박명수가 메인 MC로 나섰다는 점, 미녀 아나운서들이 대거 나섰다는 점에서 초반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듯 했으나, 이내 경쟁사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와 <야심만만>의 견고한 수비벽을 뚫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말이었다. 초대 손님을 불러 놓고도 초대 손님을 중심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지 못한 점, 아나운서들을 대거 내세웠으나 그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점 등은 <지피지기>가 경쟁사 프로그램과 대결에서 더 이상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섣부른 예상을 하게 했다.

실제로 나는 SBS <야심만만>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저녁 SBS에서 정동영 후보에 대한 대선 검증 프로그램을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MBC로 채널을 돌렸다. 정동영 후보에 관한 토론 프로그램은 이미 많이 보았기 때문에 또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본 <지피지기>는 코너 내용이 좀 달라져 있었다. 일단 초대 손님을 중앙에 배치해 초대 손님 중심의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저 ‘예전보다 나아졌구나’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코너를 보면서 <야심만만>이나 <미녀들의 수다>의 기세에 눌려 있을 <지피지기>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한 번쯤은 꼭 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피지기>에서 새롭게 시도한 코너는 ‘금지어’를 정해놓고 금지어를 말하면 뒤로 끌려가 벌칙을 받는 것이었다.

인터넷 세대에게 익숙한 ‘금지어’라는 표현이 공중파 방송에 등장한 것을 보니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재미있다는 생각도 잠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 표정이 웃음과 함께 점점 굳어져 가기 시작했다.

이날 <지피지기>에서 정한 금지어는 외국어, 외래어 등이었다. 처음 출연자들이 금지어가 무엇인지 몰라 뒤로 끌려가 벌칙을 당할 때는 신나게 웃었다. 그런데 출연자들이 금지어가 외국어와 외래어인 것을 알고도 무의식 중에 말이 튀어나와 끌려 가는 것을 보면서 마냥 웃기가 힘들어졌다.

급기야 영어, 외래어 등을 쓰지 않고서는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연예인 뿐 아니라 우리말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아나운서들조차 버거워 하는 모습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느껴졌다. ‘한글’을 그토록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도 정작 영어나 외래어 없이 말할 때 이토록 난감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 싶었다.

그러나 이 보통 일이 아닌 일이 어쩌면 <지피지기>를 통해서 보통 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도 생겼다. 출연자 중 한 명인 조혜련이 프로그램 말미에 이런 얘기를 했다.

“계속 이 추세대로 가면 나 나중에 아나운서 시험 봐도 될 거 같아.”

일부러 그렇게 외국어와 외래어를 피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표현이 떠오를 것이고 외국어와 외래어를 피할 수 있게 되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일 리 있는 말이었다. 또한 <지피지기>를 시청하는 이들 중 출연자들이 대체하기 버거워 하는 외국어나 외래어를 보면서 더 좋은 표현을 찾아내는 이들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지피지기> 프로그램에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포털 사이트에 자주 뜨는 기사들은 <미녀들의 수다>, <야심만만>, <지피지기> 시청률 몇 % 기록했다는 내용이 많다. 때문에 시청률이 부진한 제작진은 속상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억해달라. 시청률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려는 제작진의 노력을 보는 사람들도 있음을 말이다.

정확한 우리나라 말을 구사하는 미녀 아나운서를 4명이나 대거 투입한 <지피지기>이기에 어제 보여준 그 코너는 <지피지기>의 강점을 부각할 수도 있고,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좋은 시도였다.

앞으로도 아나운서들이 입고 있는 짧은 치마 사이로 슬쩍 슬쩍 드러나는 각선미보다 아나운서들이 갖고 있는 특별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시도들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힘차게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쓰는 저도 의식적으로 외래어나 영어, 외국어 등을 피해보려 했으나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지피지기 출연진들 과연 이대로 계속 하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쓰는 저도 의식적으로 외래어나 영어, 외국어 등을 피해보려 했으나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지피지기 출연진들 과연 이대로 계속 하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지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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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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