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세 살배기에게 쇠 신발을 신겼나

[바라나시 통신 ⑧] 암베드카르의 땅에서마저 차별받는 달리트의 후예들

등록 2007.12.12 11:50수정 2007.12.1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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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부터 두 달여 동안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의 인턴 자격으로 인도 바라나시에서 빈민 지역(달리트 공동체가 있는 도시 외곽이나 시골 지역, 도시 내 달리트 슬럼가) 현장조사를 한 진주 기자가 11월에 다시 바라나시를 찾았습니다. 아시아인권위 연구원으로서 내년 2월까지 머물며 기아, 빈곤, 아동노동 현황을 살피고 가장 차별이 극심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을 조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상은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쯤 될까요. '국민학교' 시절 교정에는 이순신, 세종대왕, 신사임당, 그리고 공산당이 싫었는지 콩사탕이 싫었는지 논란을 불러왔던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조형물이 많이 들어서는 탓에 대중적인 영웅상은 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근대적 질서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인도 사회에서는 길거리 교착지점의 한가운데에 세워진 영웅상이 많습니다. 대부분 정치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마을에서는 민족영웅 간디보다는 달리트의 영웅인 암베드카르의 상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민중의 지도자 암베드카르, 그러나 말라죽어가는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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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헌법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달리트들을 가리키고 있는 암베드카르 상. ⓒ 진주


모든 암베드카르 동상은 한 손에 헌법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달리트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가 헌법 초안 작성자이자, 달리트 출신으로서 달리트 해방 운동을 이끈 훌륭한 지도자였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암베드카르 나가르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정부에서 관할하는 지역입니다. 현재 우타르프라데시 주지사이자 달리트 출신 여성 지도자인 마야와티(Mayawati)가 암베드카르 나가르를 하나의 지역(District)으로 분리형성하여 그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암베드카르 나가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교나 공공병원시설 및 기본 기반시설들이 나은 편입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배고픔은 있고, 영양부족 때문에 생긴 각종 질병들로 인해 무감각, 무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각종 혜택과 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시골 지역은 물론, 도시 바로 근교에도 영양부족과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 어쩌면 암베드카르 이름의 첫 알파벳 'A'를 배우기도 전에 생명을 박탈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지타, 란지타, 시타람. 여섯 살, 다섯 살, 세 살인 이 아이들은 암베드카르 나가르의 친트와라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산지타와 란지타는 영양부족으로 말라 죽어가고 있고, 시타람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찾아온 소아마비로 인해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배고픔과 영양부족은 산지타와 란지타의 두 눈마저 빼앗아갔고, 시타람도 마비증상에 영양실조까지 있어서 아이들은 이렇게 어딘가에 걸쳐 앉지 않으면 앉을 수도 없습니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야 하고 시타람은 쇠로 고정된 신발을 신지 않으면 서지도 걷지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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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부족과 소아마비 증상으로 인해 혼자서는 움직일 수도 없는 아이들. 왼쪽부터 란지타, 산지타, 시타람. ⓒ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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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지타와 란지타. ⓒ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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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타람의 온몸을 지탱해주는 쇠 신발. ⓒ 진주


쇠 신발 없이는 서지도 못하는 아이... 부패는 아동을 잠식한다

에이즈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아프리카가 꼽히지만, 인도는 기아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힙니다. 그리고 인도에서 많이 나타나는 질병 중 대표적인 것이 결핵과 바로 소아마비(Polio)입니다.

그동안 유엔이나 유니세프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지원했고 인도 정부도 이러한 질병 퇴치를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얼마 전에도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총재 마거릿 챈은 우타르프라데시 주지사인 마야와티에게 주 내의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유엔이 더 많이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야와티 주지사는 주정부가 무엇보다 소아마비 퇴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70개의 지역권(district) 가운데 37개 지역에서 소아마비가 완전히 퇴치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우타르프라데시 서부지역에서는 4개 사례만이 소아마비로 발견되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들이 마을 곳곳으로 침투해 들어갈 만큼 인도 사회의 행정과 민주주의가 체계화되어 있지 않으며, 질병의 뿌리만큼이나 부패의 뿌리가 깊다는 점에서는 이곳 암베드카르 나가르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간이 '될' 권리도 빼앗긴 아이들

감염으로 인한 이 소아마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결핵과 마찬가지로 영양 상태입니다. 모든 질병은 영양 상태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기본적인 영양을 충분히 공급해 주지 않는다면 소아마비와 결핵 모두 훨씬 악화되며 사망에 이를 확률이 높아집니다.

산지타, 란지타, 시타람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말라죽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될 권리가 이미 박탈된 상태입니다.

인도 정부든 국제기구든 나름대로 열심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인도 사회는 물론 세계 모든 지역의 식량 공급량이 모든 지구인을 먹여 살리고도 남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나 소비와 분배가 문제가 되는 것도 불변의 법칙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왜 굶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부모는 뭘 하고 있으며, 이웃은 뭘 하고 있고, 지역정부와 중앙정부, 국제사회는 왜 이런 곳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아이들의 아버지인 부레랄 라지브하르씨는 하루에 겨우 70루피(약 1640원)를 벌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수공 직조공들이 짠 옷감을 염색하고 세탁하는 일입니다. 수공업이 쇠퇴하면서 그의 일도 점점 줄어들어갔고, 일을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경제상태의 급락은 온 가족에게 굶주림을 한꺼번에 몰아왔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 전체가 이런 경제적인 상황에 몰려있으니, 이웃끼리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입에 풀칠도 못하고 있으니까요.

정부와 국제기구의 지원은 라지브하르 가족처럼 가장 낮은 곳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발급하는 식량배급카드도 없고, 소아마비 치료를 위한 백신도 현재 맞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정말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걸까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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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으로 짠 직물들을 염색하고 세탁해 놓은 옷감들. ⓒ 진주


오늘은 우유 한 병, 내일은 굳은 약속... 그러나 남은 건 비난과 또 다른 죽음

지난 4월 또 다른 마을인 알라하다푸르에서 5살 된 줄리라는 여자아이가 굶주림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마을은 도시에서 매우 가까운 곳입니다. 2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언론은 암베드카르 나가르에서 발생한 이 사건을 보도했고, 정부 관료들은 바로 줄리네 집을 방문했습니다. 마을의 식량보장을 확신시켜주고 남편이 이미 사망한 줄리 엄마는 얼마 후 정부로부터 일자리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11월 25일, 같은 마을에서 세 살 된 프리탐이 사망했습니다. 지난 여름 암베르카르 나가르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 아이를 유심히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작고 마른 이 아이의 건강상태가 너무나도 염려스러웠습니다. 젖을 먹이던 엄마는 내게 뭔가 이야기하려 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아이의 가느다란 손발을 만져주고만 말았습니다.

거의 5개월 만에 이 아이는 사망했습니다. 사실, 아이가 어떤 상태일 때 사망 가능성이 있는지를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 판단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처음 아이들을 볼 때 상태가 심각한 정도는 가시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과학적인 판단과 수많은 경험을 통해 가능한 것들입니다. 프리탐을 두 번째 만났을 때, 아이는 좀 자란 듯 했지만 상태가 악화되었는지 개선되었는지 저로선 알 수 없었습니다.

프리탐을 두 번째 만나던 날은 11월 3일이었습니다. 그날 프리탐의 엄마는 마을 이장으로부터 우유와 함께 100루피를 받았습니다. 한 번의 우유와 100루피로 생색내고 싶었던 것일까요? 입막음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나중에 "그래도 도와주었다"는 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정말 순진하게도 우유와 100루피면 회복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프리탐이 마지막 가느다란 숨을 쉬고 난 뒤, 다시 언론은 이를 보도했습니다. 똑같은 사람들이 다시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언론에 보도하는 것이지? 먹이지도 못할 애는 왜 낳은 것이야?"

많은 사람들은 인도의 가난한 이들이 아이만 많이 낳는다고 비난합니다. 프리탐의 아버지에게도 아이들이 7명이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사실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아이들만이 유일한 재산이며, 이 아이들을 낳더라도 별 문제없이 잘 살아나갈 수 있을지는 어느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프리탐네 가족은 암베드카르처럼 차마르(신발을 만드는 계층) 출신입니다. 암베드카르 동상이 우뚝 서 있어도, 이 지역의 이름이 암베드카르여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암베드카르의 후손들은 카스트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가난의 질곡 속에서 말라가고 있습니다.

처음 줄리가 사망했을 때, 이 마을에 또 다른 줄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리탐은 또 다른 줄리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 가운데 이번에는 누가 또 다른 프리탐이 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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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프리탐과 그 아버지. ⓒ 진주

덧붙이는 글 | 이 사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upiasiaonline.com/Human_Rights/2007/12/04/commentary_indias_blighted_children/3109/


덧붙이는 글 이 사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upiasiaonline.com/Human_Rights/2007/12/04/commentary_indias_blighted_children/3109/
#암베드카르 #달리트 #소아마비 #영양부족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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