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사람도 물건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떠돌아다니는 세상. 우리는 그것도 모자라 컴퓨터와 같은 가상공간에서도 세상 만물을 끊임없이 주고받고 부풀립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모자랄 게 없어 보이는 세상, 아니 오히려 날마다 풍요로워지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양극화니 빈곤 악화니 하는 ‘숨은 현실’을 말할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풍요로울 수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불러보는 <가난에 빠진 세계>는 생뚱맞은 짓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정말 생뚱맞은 짓일까요?
마치 ‘구속된 모든 것을 풀어내라’라고 외치는 듯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햇빛에 가린 그늘진 곳 곧 ‘우리 안의 가난’을 애써 감추곤 합니다. 자원 개발과 국제 무역으로 상징되는 20세기는 21세기 들어 그 모양만 바꾸었을 뿐 더더욱 부를 만들어내고 쌓기에 바쁩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부에 가린 가난은 세계 곳곳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부가 거치는 만큼 그림자 같은 가난도 더 커지지는데 가난은 부만큼 쉽사리 찾아내기 힘듭니다. 그만큼 복잡하고 빠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부를 쌓기에도 바쁜 21세기는 가난을 얘기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자본의 세계화'가 불러 온 위험한 경제 구조
세계 경제 구조가 무역경제에서 금융경제로 옮아간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 조짐이 확대되던 1970년에서 1980년대에 걸친 시기였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금융경제 중심 세계는 <가난에 빠진 세계> 지은이에게도 꽤 불편한 세상입니다. 그런 위험한 세상을 바라보는 지은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대안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첫째, 현재 전 세계 가난의 문제는 얼마나 심각하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발전은 가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둘째, 이러한 세계적 빈곤 문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는가? 셋째,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가난 정도는 얼마나 심해졌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가난에 빠진 세계>, 8쪽)
이와 같은 세 가지 순서에 맞춰 지은이는 세 부분으로 책을 구성했습니다. 제1장인 '여전히 가난한 세계'에서는 21세기에서 말하는 가난 혹은 빈곤이란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제2장인 ‘가난의 경제학’에서는 이 시대 가난을 설명하는 경제학적 논의와 그 극복 전략을 다룹니다. 마지막으로 제3장인 ‘우리 안의 가난’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로 한국 사회를 예로 들어 한국 사회 안에 있는 가난과 그 극복 대책을 살펴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충격과 더불어 찾아온 경제 구조조정은 한국 사회에서 경제뿐 아니라 국가 운영 자체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회적 유대감은 이룰 말할 수 없이 사정없이 흔들렸고 사회 구조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틈은 점점 더 벌어져 양극화니 빈곤 악화니 비정규직 사회니 하는 서글픈 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오로지 손익계산에 따라 승패를 가르는 ‘자본의 세계화’는 20세기와 달리 이상하리만큼 경쟁구도를 피하려 애쓰며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장기적 계획도 투자도 철저히 손익계산에 따라 빠르게 돌변하는 구조, 그것이 바로 21세기를 휘어잡은 ‘자본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기술혁신 정체와 치열한 국제경쟁, 그리고 석유위기와 같은 굵직굵직한 문제들을 안게 된 1970년대 세계는 무역경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 돌파구로 전면적인 시장중심 경제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금 유동성을 극대화한 신자유주의적 21세기 세계화는 그 속성상 무척 메마르고 날카로운 위험한 경제구조입니다.
“자본의 세계화는 이러한 세계화는 이러한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경제위기에 따라 이윤율이 낮아지자, 자본은 이윤을 쫓아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특히 산업 부문보다 유동적인 금융 부문으로 이동해 국제적 금융자본이 크게 발전했다. 게다가 상품, 서비스, 자본 이동의 자유화와 시장 개방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세계화를 더욱 촉진했는데, 이 역시 자본의 활동 공간을 전 세계적 차원으로 넓히는 일이었다. 즉 자본에 최대의 자유를 제공하고 국가의 개입이나 노동자의 저항 같은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 세계화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를 강화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합리화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본문 72쪽)
'성장 대 분배'가 아닌 '성장과 분배'를 말한다
지금 세계는 오래전부터 성장과 분배 사이를 한없이 갈라놓았습니다. 복지선진국들조차 분배보다 성장에 무게를 둘만큼 세계 경제 구조는 자본 이동과 유출이 심합니다. 사실상 그 어떤 제약조건도 거부하는 금융 세계화는 대표적인 국가 책무인 복지정책마저 ‘상품’으로 전락시킬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지은이가 말하는 ‘가난에 빠진 세계’란 이처럼 절대적 가난은 물론 상대적 가난 폭을 한없이 늘려버렸고 ‘근로빈곤’과 같은 새로운 가난 형태도 상시화해버렸습니다.
이처럼 사람마저 ‘상품’으로 취급받기 쉬운 ‘자본의 세계화’ 속에서 지은이는 ‘경제성장-소득분배-빈곤’ 삼각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늘 관찰하고 있으며 '평등주의적 발전(egalitarian growth)'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997년을 기점으로 ‘자본의 세계화’에 내몰린 한국은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요?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에는 위기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무역 자유화나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국내의 경제주권조차 무시한 조치로서, 경제위기를 빌미삼아 선진국 경제에 위협적인 동아시아 모델의 요소를 거세하기 위한 수잔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본문 167쪽)
노동 경직성을 탈피하고 경제 활성화를 극대화할 목적으로 추진된 IMF 금융구제는 경제 위기 책임을 대개 낮은 노동 생산성 주범으로 지목받는 경직된 노동 시장에서 찾았습니다. 당시 경제위기 고통과 책임을 고스란히 서민들이 떠안은 셈입니다. 그러나 지은이는 “오히려 위기의 책임은 비효율적인 공격적 투자를 일삼은 재벌이나 제대로 된 감독 체제 없이 부주의하게 금융 개방을 도입한 관료에게서 찾아야 할 것”(본문 169쪽)이라고 말합니다.
더욱 깊어지는 양극화와 빈부 격차를 바라보며, 지은이는 우리 사회에 숨은 21세기형 가난과 사회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대안 다섯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 번째로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제고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위기 이후 시장 지향적으로 변화한 금융 부문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빈곤층과 중소기업의 금융 소외를 극복”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로 “근로빈곤 문제와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의 증대를 억제하고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도입”하는 일입니다. 네 번째는 “공교육을 강화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평등한 교육과 보건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거시경제라는 구조적인 관점에서 자유화와 개방으로 폭주하는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제고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일입니다. (참고. 본문 181-189쪽)
세계화에 대처하는 우리 자세는 “무조건적인 전면적인 개방이 아니라 보다 전략적이고 주체적인 세계화이며 개방을 관리하는 것”(본문 190쪽)입니다. ‘성장 대 분배’ 구도가 아니라 ‘성장과 분배’라는 어렵고도 꼭 필요한 안정적인 사회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서둘러 전 국민이 함께 마주하여 ‘대화’를 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덧붙이는 글 | <가난에 빠진 세계> 이강국 지음. 서울: 책세상, 2007.
2007.12.12 19:18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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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빠진 세계
이강국 지음,
책세상,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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