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오마이뉴스 권우성
[# 사례④] "강남? 내 집? 그냥 형편에 맞춰서 살래요"
대기업에 다니는 박홍래(48세, 가명)씨는 현재 수도권에서 시가 4억원이 조금 안 되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도 언제든 강남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 내 형편으로 강남에 집을 마련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박씨 자신과 부인의 소득을 합치면 월 1000만 원이 넘는다. 그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강남과 분당에 살고, 자신보다 소득이 적은 동료나 후배들도 많이들 강남에 살고 있다. 그래서 전에는 언제든 맘만 먹으면 자신도 얼마든지 강남에 가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가파르게 오른 아파트 값을 자세히 따져본 뒤, 박씨는 현재 자신의 재무형편으로는 강남 이전이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인정했다고 한다.
물론 남들처럼 대출을 좀 무리하게 받으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무리하게 신경쓰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부동산을 통해 시세차익을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식도 있고, 돈을 많이 모으지 않고도 풍요롭게 사는 길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박씨가 주택에 대한 욕심(?)만 버리면 재무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노후까지 여유롭게 살고도 남는다.
외국인 업체에 다니는 김원미(40세, 가명)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김씨는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데, 3년 내로 수도권에 4억원 정도 되는 아파트를 갖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김씨 직장은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곳이고 서울시내 중심가에 있다. 수도권에 집을 마련하면 오히려 출퇴근이 어려워진다.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집을 갖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전세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굳이 투자목적이 아닌 주거목적이라면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전세로 살 수도 있다. 금융자산이 넉넉하기 때문에 자가주택이 없다고 해서 불안하거나 사회적 품위유지에 문제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반드시 내 집을 가져야 한다는 관성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심리의 밑바탕에는 사두면 오른다는 재산증식 심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면도 있다. 일단 김씨는 나의 제안을 수용했지만 언제 바뀔지는 모를 일이다.
박씨와 김씨처럼, 집을 살 여유가 되더라도 전세로 살거나 자기 재무수준에 맞는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에 있어서도 재무상 무리하지 않아 좋은 것이고, 사회 전체로도 건전성을 높이는 길이다.
그러나 남들이 다 부동산을 통해 시세차익을 높이는 일이 계속 많아진다면, 그런 생각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그러기에 국가의 부동산정책이 제대로 서야 한다.
그런데 후보들은 대부분 이런 거시적인 방향보다는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양도세 규정에 대한 개선책에 머문 느낌이다.
이회창 후보는 재산세가 물가상승 이상으로 오르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이인제 후보와 이명박 후보는 1가구 1주택에 대한 보유기간을 감안해 양도세와 재산세를 폐지하거나 낮추는 공약을 내세웠다. 정동영 후보는 기간별로 나누긴 했지만 그 기조는 이인제·이명박 후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권영길·문국현 후부는 이런 세금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재산세나 시세차익에 대한 양도세를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더 강화하려는 의견일 것이다.
역시 이명박은 시장 중시... 그러나 주거는 상품이 아니다부동산 공약을 보면서 크게 느낀 점 하나는 역시 이명박 후보는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구나 하는 점이다. '연간 50만호 공급과 감세'가 이후보의 주장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주택 역시 공급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거 문제는 상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서민을 위한 주택정책은 시장원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물론 '기본'이 갖춰지면, 고급주택을 거래하던 분양가를 자유화하던 것들은 시장원리에 맡기면 될 것이다.
이제는 시민이 직접 실천해야 한다. 남이 아니라 내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때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도 직접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수동적인 관점에서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정책을 비평만 하는 자세로는 진정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부동산정책이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값내리기 모임이나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주택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큰 세력으로 시민의 생활 요구를 담아 실천적으로 요구하는 운동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