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상담사가 권한다 "이런 후보에 투자하라"

[내가 본 대선] 주택관련 상담 사례로 바라본 대선후보 공약

등록 2007.12.14 15:38수정 2007.12.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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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이 사라진 선거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대로라면 후보의 대표 공약조차 모르는 상태로 투표장에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 하나하나는 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 중 교육, 보육, 주거, 노후 등 생활공약들이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내 삶에 이들 생활공약들을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여기에 자기 처지에서 대선 공약들을 짚어본 글들을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나는 가정의 재무를 상담해 주는 일을 한다. 금융을 포함한 가정사를 소상하게 파악한다.

일을 하면서 가정마다 부딪치는 공통 문제를 겪게 되는데, 이것은 사회문제다. 교육문제, 주택문제, 노후문제 등…. 이 글은 그 가운데서도 주택문제에만 국한해서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따져본 것이다.

 분당 일대 아파트촌.
분당 일대 아파트촌.오마이뉴스 남소연

[# 사례 ① ] "또 이사해야 하나요?

초등학생 둘을 키우는 박화영(39세, 가명)씨는 서울 외곽에서 1억2000만원짜리 전세를 사는 교사다.

박씨의 남편은 10년 가까이 사업에 발이 묶여 집안 살림에 거의 보탬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전세금을 남편 사업에 쏟아붓지 않고 지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또 2년 전부터는 남편 사업이 조금씩 나아져 아이들 교육비와 가끔 드는 큰 지출을 해결해 주고 있다고 한다.

그런 박씨에게 최근 큰 걱정이 하나 생겼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4000만 원이나 올린 것이다.

그 동안 이사를 자주 했던 박씨는 이 참에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할까 고민하고 있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다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전세금이 자꾸 오르고 있는데다 번번히 이사 다녀야 하는 불편을 생각하면 무리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집을 사두면 시세차익이 생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최근 부동산 값이 안정된 탓인지도 모른다.


결국 박씨의 선택지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현재 전세금 수준에 맞는 곳으로 이사한다. 둘째, 4000만원을 대출받아 전세금을 낸다. 셋째,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산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은 선택이다. 대선후보들은 이런 박씨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 줄까?


권영길 후보의 '1가구 1주택 반값주택'은 박씨에게 가장 눈에 띄는 정책이다. 부동산으로 돈벌 생각이 없고, 직장에서 나오는 급여로 살아가려는 박씨로서는 오르는 전셋값 걱정 없는 안정된 집 한 채면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문국현 후보는 한 발 더 나아가 '반의반값 아파트(평당 400만원 내외 분양)' 정책을 내세운다. 되기면 한다면 더 없이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최근 이른바 '반값 아파트'라는 것이 시행되었지만, 전혀 실효성이 없었다. 결국 '반값'이든 '반의반값'이든 구체적인 시행지침이 없이 구호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는 정동영 후보 공약에서 '주공과 토공의 과다 이윤을 제한하겠다'는 문구도 눈에 띈다. '택지개발의 거품을 빼 저렴한 주택공급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사실 주택문제의 핵심은 땅값이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된 현대에는 전체 주거환경을 위해 일정한 토지 규제가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공익적 가치에 따른 토지 규제가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면도 없지 않다.

여기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린벨트 문제다. 과거 선거에서는 늘 그린벨트 해제가 가장 큰 선심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주거환경을 보호하면서도 택지를 대량으로 값싸게 공급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의무다. 토지공사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한 대목이다.

꼭 정동영 후보만의 정책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중산층 전세 수요가 집중되는 도심과 역세권에 택지를 대량 확보하겠다는 정책은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일이기에 눈에 확 띄었다.

택지만 안정되게 많이 공급되면 그 땅에 건설비용을 얼마나 많이 들일 것인가는 고객이 선택할 문제다. 물론 여기서도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값싼 주택을 공급하는 과제는 별도 문제다.

 과천 정부종합청사 인근 주공아파트 단지. 이 지역은 공시가격이 전년 대비 평균 30% 가까이 올랐다.
과천 정부종합청사 인근 주공아파트 단지. 이 지역은 공시가격이 전년 대비 평균 30% 가까이 올랐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례②] "가진 돈은 200만원... 결혼 못해요"

김수길(32세, 가명)씨는 성과급을 받는 영업직 사원이다. 오래 전부터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지만 몇년째 결혼을 미루고 있다. 3년 전에는 여자친구 부모가 결혼자금을 지원해 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스스로 벌어서 결혼비용을 마련하겠다는 뜻에서였다. 물론 자존심도 조금 작용했다.

"3년이 지났는데 지금 갖고 있는 돈은 겨우 200만 원 뿐입니다."

이 상태로는 영영 결혼도 못 할 것 같아 재무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사정을 살펴보니 김씨는 부모로부터 목돈을 지원받을 형편도 아니었다.

젊은이들의 결혼을 주저하게 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주거 문제란 점은 주목해야 한다. 한 결혼정보 업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자의 결혼비용은 7000만원, 여자는 3000만 원이라고 한다. 남자가 여자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주거비용 때문이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사회적 과제란 점을 감안하면, 신혼부부들에게 자가이든 전세이든 간에 주택을 값싸게 공급하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이명박 후보 정책 가운데 '신혼부부 주택 12만호 공급'이란 대목이 그래서인지 눈에 띈다.

정동영 후보 정책은 자금지원으로 나타나 있다. 신혼부부의 주택구입 자금 가운데 90%를 저리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5년 동안 52만 가구에 20년 만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금리의 2%는 국가가 부담하겠다고 밝혔는데 정작 금리는 몇 %라고 밝히지는 않았다. 아직 구체적으로 따져보지 못한, 의지 수준의 공약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정책이 정말 이뤄진다면 김씨 같은 젊은이들의 결혼비용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또한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큰 비용의 고정지출 부담을 덜 수 있다면, 소비자들의 소비활동이나 여가생활이 더 풍요로워지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주공이 서울 등촌동에 건설한 국민임대아파트 전경.
주공이 서울 등촌동에 건설한 국민임대아파트 전경.대한주택공사 제공

[# 사례③] 4인 가족 월세 38만원짜리 주택


남편 사무실에서 일하는 홍지숙(38세, 가명)씨는 "남편 수입은 걱정스럽고 지출은 줄지 않는다"며 걱정이 많다.

재무현황을 살펴보니 수입은 일정하지 않은데 지출은 월 430만원으로 적지 않다. 가계수지 균형이 가장 시급한 상태인데, 수입은 당장 늘릴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지출 가운데 큰 것을 보면 중학생인 두 아들의 학원비가 월 60만원이다. 그 다음 큰 것이 월세 38만원이다. 물론 홍씨의 가정재무에서 월세만이 문제는 아니지만, 월세 38만원은 현금흐름상의 부담을 넘어 주거불안이라는 심리적 위축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임대료에 관한 후보들의 정책을 찾아보았다. 권영길 후보는 "전월세 인상률을 연 5%로 제한하겠다"고 했다. 이회창 후보는 "전월세에 대한 세금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전월세 금액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이 아닐까 싶다.

문국현 후보는 "월세형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공급하겠다"고 주장한다. 공공임대주택이 총 주택의 20%가 될 때까지 월세형 임대아파트를 계속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택지와 주택 공급의 거품을 빼고 이런 월세형 공공임대아파트가 대량 공급된다면 중산층과 서민들이 굳이 주택을 소유하려고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가계수지의 부담은 획기적으로 덜어질 것이다.

이인제 후보의 공약은 조금 색다르다. "임대아파트를 230만호 공급하겠다"는 것인데, 입주자의 재정상황에 맞춰 지분을 0%에서 100%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갖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분을 갖지 않으면 그만큼 입주금액이 적어질 테니 값싼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정동영 후보는 "최저생계비의 120% 미만인 저소득층(약 400만 명)에게 부담 가능한 금액으로 입주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공공임대주택을 확대 공급하겠다"고 한다.

주택이 재산을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최소한의 기본요건이다. 그런 면에서 공공임대주택이 값싸게 대량 공급되어야 하는 원칙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현할 의지와 계획이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서울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서울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오마이뉴스 권우성

[# 사례④] "강남? 내 집? 그냥 형편에 맞춰서 살래요"

대기업에 다니는 박홍래(48세, 가명)씨는 현재 수도권에서 시가 4억원이 조금 안 되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도 언제든 강남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 내 형편으로 강남에 집을 마련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박씨 자신과 부인의 소득을 합치면 월 1000만 원이 넘는다. 그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강남과 분당에 살고, 자신보다 소득이 적은 동료나 후배들도 많이들 강남에 살고 있다. 그래서 전에는 언제든 맘만 먹으면 자신도 얼마든지 강남에 가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가파르게 오른 아파트 값을 자세히 따져본 뒤, 박씨는 현재 자신의 재무형편으로는 강남 이전이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인정했다고 한다.

물론 남들처럼 대출을 좀 무리하게 받으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무리하게 신경쓰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부동산을 통해 시세차익을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식도 있고, 돈을 많이 모으지 않고도 풍요롭게 사는 길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박씨가 주택에 대한 욕심(?)만 버리면 재무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노후까지 여유롭게 살고도 남는다.

외국인 업체에 다니는 김원미(40세, 가명)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김씨는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데, 3년 내로 수도권에 4억원 정도 되는 아파트를 갖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김씨 직장은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곳이고 서울시내 중심가에 있다. 수도권에 집을 마련하면 오히려 출퇴근이 어려워진다.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집을 갖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전세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굳이 투자목적이 아닌 주거목적이라면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전세로 살 수도 있다. 금융자산이 넉넉하기 때문에 자가주택이 없다고 해서 불안하거나 사회적 품위유지에 문제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반드시 내 집을 가져야 한다는 관성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심리의 밑바탕에는 사두면 오른다는 재산증식 심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면도 있다. 일단 김씨는 나의 제안을 수용했지만 언제 바뀔지는 모를 일이다.

박씨와 김씨처럼, 집을 살 여유가 되더라도 전세로 살거나 자기 재무수준에 맞는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에 있어서도 재무상 무리하지 않아 좋은 것이고, 사회 전체로도 건전성을 높이는 길이다.

그러나 남들이 다 부동산을 통해 시세차익을 높이는 일이 계속 많아진다면, 그런 생각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그러기에 국가의 부동산정책이 제대로 서야 한다.

그런데 후보들은 대부분 이런 거시적인 방향보다는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양도세 규정에 대한 개선책에 머문 느낌이다.

이회창 후보는 재산세가 물가상승 이상으로 오르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이인제 후보와 이명박 후보는 1가구 1주택에 대한 보유기간을 감안해 양도세와 재산세를 폐지하거나 낮추는 공약을 내세웠다. 정동영 후보는 기간별로 나누긴 했지만 그 기조는 이인제·이명박 후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권영길·문국현 후부는 이런 세금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재산세나 시세차익에 대한 양도세를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더 강화하려는 의견일 것이다.

역시 이명박은 시장 중시... 그러나 주거는 상품이 아니다

부동산 공약을 보면서 크게 느낀 점 하나는 역시 이명박 후보는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구나 하는 점이다. '연간 50만호 공급과 감세'가 이후보의 주장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주택 역시 공급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거 문제는 상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서민을 위한 주택정책은 시장원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물론 '기본'이 갖춰지면, 고급주택을 거래하던 분양가를 자유화하던 것들은 시장원리에 맡기면 될 것이다.

이제는 시민이 직접 실천해야 한다. 남이 아니라 내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때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도 직접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수동적인 관점에서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정책을 비평만 하는 자세로는 진정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부동산정책이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값내리기 모임이나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주택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큰 세력으로 시민의 생활 요구를 담아 실천적으로 요구하는 운동이 요구된다.

 아파트값 거품빼기 국민행동을 벌이는 경실련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네거리 동화빌딩앞에 텐트를 설치한 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며 시민들에게 캠페인 동참을 호소했다.
아파트값 거품빼기 국민행동을 벌이는 경실련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네거리 동화빌딩앞에 텐트를 설치한 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며 시민들에게 캠페인 동참을 호소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주택공약 #재무상담 #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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