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18일 새벽 12시50분]
"한번 따져볼까요?"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이명박 후보 측은 작년 경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물류혁명' 운운하면서 4만불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런데 물류 개선 효과가 없다는 것이 판명나자 말을 바꿨어요. 물류 효과는 20%정도 밖에 안 되고, 관광 효과가 80%라는 겁니다. 그럼 투자비 16조 중 10조원은 관광 수익으로 회수한다고 칩시다. 이 후보 측은 경제성 평가를 하는 기간이 30년이라고 말합니다. 그 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야 투자비를 뽑아낼 수 있을까요?"
인터뷰 도중 계산기 두드려보니
박 부소장은 검은색 매직펜을 들고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써내려 갔다. 장지영 연구원은 옆에 서서 능숙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10분 뒤에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500명이 탈 수 있는 유람선 20대를 경부운하 구간에 띄운다고 가정해보자. 유람선 승선 비용은 3만원, 이들이 유람선을 타면서 인근 음식점 등에서 소비하는 비용은 7만원. 즉 1명이 1회 유람선을 탈 때 총 10만원을 소비한다고 가정하면 30년동안 총 1억명(편집자주 : 당초 기사에서는 100억명으로 잘못 계산해 이를 수정했습니다.)이 타야 10조를 회수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운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유람선이 적자에 허덕인다고 하는데,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이런 정도의 엄청난 '관광 특수'를 누릴 수 있을까?
명쾌했다. 그는 즉석에서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관광효과'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증명해 보였다. 사실 유람선 운영비 등을 제외하면 유람선 승선자가 1억명을 훨씬 넘어야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후보측이 지난해 말 경부운하를 제1공약으로 발표하면서 내건 '4만불 시대를 여는 물류 혁명'이라는 허황된 깃발을 내린 것은 박 부소장의 허를 찌르는 일격 때문이었다. 단순했다. 산수를 할 줄 알면 되는 일이었다.
"경부운하 찬성론자인 이상호 세종대 교수가 주장하는 '경부운하로 흡수될 2011년 전체물동량'을 톤 단위로 환산하면 1020만9000톤. 곽승준 고려대 교수(한나라당 정책기획팀장)의 경우는 1039만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020만9000톤(전체 물동량)÷2500(선박 1척의 물동량)÷350(연간 운행일수)=11.7척.
하루에 고작 12척의 선박이 다니는데 무슨 물류혁명입니까? 5000톤급 선박이 운행한다면 하루 6척의 배가 다니는 셈이에요. 하루 상행선 3척, 하행선 3척의 배가 다니는 거죠. 더 이상의 검증이 필요합니까?"
경부운하=이명박이 아닙니다
박 부소장이 '산수' 결과를 발표한 뒤부터 이 후보 측은 뒷걸음치면서 경부운하를 통한 기대효과로 '관광'을 흘리기 시작하다가 급기야는 '물류효과 20%, 관광효과 80%'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박 부소장은 "이명박 후보측의 대표적인 '황당논리'는 관광효과"라고 꼬집었다.
박 부소장은 지난 2월 경부운하를 검증하기 위해 보름간 <오마이뉴스> 기자와 함께 독일과 네덜란드를 다녀왔다. 장지영 연구원도 함께 했다. 5~6차례에 걸쳐 경부운하 예정지도 답사했다. 운하는 물론, 하천의 상황에 대한 통계조차 제대로 나와있지 않은 상황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경부운하의 A부터 Z까지 퍼즐을 맞추듯 통계수치를 종합해갔다. 그리고, 지난 7월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오마이뉴스 출판)>란 책을 펴냈다. 경부운하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분석한 '안티 경부운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수십차례에 걸친 토론회, 세미나에 참석했고 강연 차 전국을 누볐다. 국감장의 증인으로 출석했다. 지난 1년간 삽을 들고 경부운하만을 메우고 다닌 것이다. 지난 6일 오후,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마포에 위치한 생태지평 사무실에 들렀더니, 러닝 상의에 허름한 운동복 바지 차림으로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하루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고 전날 밤도 샜단다.
경부운하 공약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선이 유력시되는 이명박 후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경부운하=이명박이 아닙니다. 이 후보는 경부운하를 '얼굴'로 내밀었지만, 정책을 보고 뽑는 선거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 후보의 지지도는 한나라당의 지지도와 거의 일치합니다. 그가 무슨 정책을 내걸어도 마찬가지지요. 같은 당 사람들조차 경부운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분위기임에도 '이 사람이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는 현실, 골방에 처박지도 못하고 주요 얼굴로 내밀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
이런 비합리적인 분위기가 '이명박과 경부운하'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후보의 정책인데 국민 사이에서도 없고, 당내에서도 없는 공중에 뜬 실체. 왜 이런 실체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왜 이런 혼돈의 상태가 지속되는지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질 때입니다."
박 부소장은 이어 "일반인들도 스스로 황당해하면서도 '혹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파헤쳐서라도 나만 잘 살 수 있으면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시대적 반영이고, 정치인들이 이를 부추기면서 악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부소장은 또 시민운동과 관련해서도 "후보와 정책을 분리한 것은 정치인과 일반 시민들만이 아니다, 시민운동 역시 정치적 객관성을 내세워 인물과 정책을 분리했다"면서 "오히려 뉴라이트는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세력의 유산을 물려받아 정치적으로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로 따졌다, 필요성을 검토했다, 그다음에 환경을 살폈다"
대부분의 싸움은 '가치'의 충돌이다. 경부운하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에 반기를 든 가치와의 투쟁. 대개는 이런 쟁점의 경우 '개발의 가치'와 '환경의 가치'가 충돌한다.
하지만 이번 싸움의 경우에는 그간 흔히 보아왔던 원시적인 이분법적인 가치가 충돌하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개발을 통한 경제적 이익과 환경보전을 통한 경제적 이익이 서로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한 싸움이었다. 개발론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싸움의 방식, 즉 경제적 성감대를 자극하는 고리타분한 '전선' 만들기를 사전에 차단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70년대식 구태의연한 개발사업과 지구온난화-환경재앙 시대에 추구해야할 미래적 가치의 싸움이었습니다. 과거 향수에 젖어 무조건 파헤치는 시절로의 환원적 사고방식과 미래지향적 보전, 삶의 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가치의 싸움입니다. 그간 환경을 둘러싼 싸움도 사실은 이런 내용이었지만, '개발'과 '환경'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인 양 사람들을 몰아부쳤습니다. 본질이 왜곡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물동량과 교통체계 등 경제영역에 대한 분석에 집중했습니다. 경부운하가 4만달러 시대로 향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실증적으로 검증하려 했고, 다음으로는 기존 인프라를 거부한 채 운하를 도입할만큼 우리의 교통체계가 심각한 상황인지에 대해 검토했습니다. 그 다음이 환경이었습니다. 환경문제도 사실은 우리의 식수원에 대한 검토였지요. 환경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전략에 말리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 겁니다."
이 싸움에서 박 부소장이 절감했던 벽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의 허구성과 황당함"을 꼽으며 "막무가내식 주장을 뒤엎기 위해 장비를 갖고 시뮬레이션 등을 하고 싶었지만 돈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정부의 공식통계조차 부처별로 다르고, 물류통계 등은 부처 또는 자치단체의 정치적 입맛에 따라 과도하게 잡는다거나 식수원의 수질·수심·골재량도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있는 등 국가통계의 수준이 심각하다고 느꼈다"면서 "민간연구소인 생태지평에서 이를 정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의 싸움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박 부소장은 "공사가 들어간 뒤에 벌어지는 현장싸움은 극단화 경향을 띠는데, 사전에 과학적 근거에 따라 사업 타당성 논쟁을 벌임으로써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덜 주고 국민의 알권리를 제공했다는 점, 운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독일과 네덜란드 운하 등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현장과 밀접한 운동을 벌여나갔다는 점 등의 의미가 있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이어 "잃은 것은 아직 분명치 않다"면서 "경부운하 사업의 진행 여부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BBK 사건, 인터넷과 금융사업 '둔재' 드러나"
공약은 정치인의 철학과 자질을 드러내는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경부운하의 예처럼 현실 정치에서는 큰 힘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박 부소장은 경부운하 공약 속에서 이 후보의 어떤 면을 보았을까?
그는 "이 후보는 전형적인 60~70년대식 인물로 한강종합개발을 하면서 골재를 팔아 건설산업을 부흥시킨 상징화된 사람"이라며 "문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BBK 사건을 보더라도 비리의혹과는 무관하게 인터넷과 금융사업에 '둔재'임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미래지향적 가치를 지향하기보다는 금산분리정책 등 개발독재식 재벌의 입장을 취하는 인물"이라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되면 자신의 철학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의 전기를 읽어보니 허구헌날 '난 이렇게 해서 돈을 벌었다' 식의 경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고, 현재 그렇게 확보한 이 후보의 부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경부운하를 알고 싶다는 교사들의 요청으로 4차례에 걸쳐 초·중·고 학교에서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는 "정치적 이해와 상관없이 진지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성찰하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또하나의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경부운하 진행하면 레임덕 빨리 올 것"
인터뷰가 끝난 뒤 잠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한옥집 사무실의 쪽문을 열고 바깥에 나갔다. 나가면서 그에게 물었다.
'만약 이 후보가 당선되면 경부운하를 포기할까요? 만약 추진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는 이 후보가 추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대신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들이마신 뒤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그만큼 정치적 대가를 지불해야할 겁니다. 레임덕이 빨리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할텐데…."
그는 언제든 새롭게 '싸움'을 시작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왜 그를 공격하지 않죠?... "무서우니까" |
찬성론자들은 경부운하 검증을 특집 보도하는 <오마이뉴스>에 여러차례에 걸쳐 반론 글을 보내온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글을 접하면서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게 있다. 왜, 그들은 책까지 내면서 '안티 경부운하'에 매진해 온 박진섭 부소장을 직접 언급하면서 비판하지 않지? 그런데 마침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2달여 지났을까? 기자는 경부운하 찬성론자와 함께 자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왜 한나라당은 박 부소장에게 직격탄을 날리지 않죠?"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진심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자는 지난 1년여동안 생태지평과 함께 공동기획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운하에 대해 사실상 문외한이었던 그가 답사 등을 통해 끊임없이 '현장'을 강화하고, 한편으로는 서류더미에 묻혀 거의 매일 밤을 새워가면서 논리적으로 무장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
2007.12.17 08:40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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