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장이로 변신한 이해경 만신에 인사동 들썩

영화 <사이에서> 주인공 이해경 만신 무속지회 최초 전시

등록 2007.12.15 12:14수정 2007.12.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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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최초로 무속지화 전시회 연 이해경 만신

최초로 무속지화 전시회 연 이해경 만신 ⓒ 김기



"팔색조 이해경 만신의 변신은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렵다."


작년 무당의 신내림 과정을 침착하게 그려 인디영화 부문에서 최대 관객을 몬 화제작 <사이에서>의 주인공 이해경 만신의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놓는 말이다. 무당이 굿만 하는 줄 알았더니, 훌륭한 배우로서 또 각종 무대에서 관객을 휘어잡은 훌륭한 광대로서 공연판에 이름을 날리더니 이번에는 또 지화 전시를 열어 또 다시 인사동에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2일 인사동 목인갤러리에서 짧은 굿 퍼포먼스와 함께 전시를 연 이해경 만신의 종이꽃 전시 '세월의 꽃'에 연일 사람이 몰리고 있어 갤러리 관계자는 물론 갤러리가 즐비한 인사동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이해경 만신의 전시 '세월의 꽃'에는 황해도 굿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종이꽃을 진열해놓고 있다.

어떤 것은 진짜 꽃처럼 생생하고 사실적이어서 얼핏 보아서는 종이인지 아닌지 구분이 어려운지 가까이 들여다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꽃 내음을 맡으려는 것과 같아서 전시장 안은 진짜 꽃밭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꽃들은 들판에 피어난 그저 평범한 꽃들이 아니라 굿, 그것도 황해도 굿 중에서 가장 큰 굿이라는 만수대탁에 쓰이는 꽃들이다. 보기에 예쁘지만 따지자면 사연도, 의미도 많은 꽃들이다.

a  인사동 목인갤러리에 전시 중인 무속지화. 모란

인사동 목인갤러리에 전시 중인 무속지화. 모란 ⓒ 김기


굿에서 꽃은 매우 중요하다. 아니 굿에서만 아니라 무언가 특별한 상황에 있어서 꽃은 말없이 그 분위기를 확정시키는 임무를 가장 분명하게 수행한다. 특히 경사로운 일과 비통한 일에 있어서는 꽃은 무엇보다 먼저 그 자리를 꾸민다. 요즘에는 화훼기술이 발달하여 언제 어디서나 어떤 꽃이라도 구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제 철의 꽃이 아니라면, 아니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면 구할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지화를 사용하였다.

또한 죽은 영혼을 대상으로 하는 굿에서는 모든 과정이 끝난 후 사용된 것들을 모두 태우기 때문에 지화는 더욱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황해도굿에서는 과거 화공이 별도로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라도 같은 경우에 굿은 무당이 종이꽃을 만들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미 널리 알려진 진도 씻김굿에서는 주로 백지를 이용해 다양한 종이꽃과 굿에 소용되는 무구를 제작한다. 만드는 이와 형태에 차이는 있더라도 종이꽃과 굿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 분명하다. 


워낙 황해도 굿에 등장하는 무당의 복색이 다양하고 화려하지만 온갖 탱화와 지화가 아니라면 그 형형색색의 무당복색도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굿의 형식도 과거와는 달리 간소해지고, 편리를 쫓으면서 지화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각 지역의 굿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지만 다른 분야와 달리 굿에 필요한 여러 주변 공예 장르에 대해서는 문화재당국도, 무당 자신들도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a  월계화

월계화 ⓒ 김기




그러나 이해경 만신의 경우는 굿에 소용되는 종이꽃에 대해 남다른 경험이 있었고, 그것은 그녀가 굿 외에도 종이꽃 만들기에 오랫동안 골몰하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신을 받아드린 후 이해경 만신은 자신이 평생을 보낼 굿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 다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동해안 별신굿을 보러 가서는 굿청에 그득한 오색찬란한 지화에 넋을 잃고 말았다. 일반인의 눈과 만신의 눈은 달랐는지 그녀는 그 자리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그 아름다음에 매료되었다.

그 충격적 기억이 구체적인 지화 연구의 동기로 발전한 계기는 이해경 만신의 신어머니인 김금화 만신의 만수대탁굿이었다. 굿청의 화려함은 황해도 굿 또한 동해안 굿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경 만신은 틈틈이 시간을 쪼개고, 발품을 팔아서 종이꽃 만들기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속에서의 배움이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직접 가르치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승의 굿을 보고는 자기 것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a  이해경 만신 전시를 찾은 김태연 교수(이 만신 옆)와 전통지화를 연구하는 스님과 장인.

이해경 만신 전시를 찾은 김태연 교수(이 만신 옆)와 전통지화를 연구하는 스님과 장인. ⓒ 김기



그러니 알고자 해도 쉽지 않고, 배우고자 해도 막상 배울 길이 없다면 없는 것이다. 더욱이 공장에서 대량 염색한 종이로 쉽게 접어가는 것이 아니라 쓰임에 따라 일일이 물들이고, 오리고 접어야 하는 일은 단지 보는 것으로 익힐 수 있는 기술은 절대 아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이런저런 궁리에도 풀리지 않던 기법의 숙제는 이 만신이 자신에게 지화의 어머니라는 대구대 김태연 교수를 만나면서 극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게 되었다.

김태연 교수는 궁중상화나 불교지화를 주로 연구해온 분이나 표현의 결과는 달라도 결국 같은 종이꽃이기에 이해경 만신의 고민을 하나 둘 풀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화에 손을 댄 지 10년 만에 무속지화로는 최초로 전시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12일 저녁 갤러리를 가득 채우고도 다 못 들어갈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퍼포먼스에서 이해경 만신은 “내게는 세 분의 어머니가 있다. 낳아주신 어머니, 무당으로 새 삶을 살게 한 신어머니 그리고 종이꽃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지화어머니”라면서 눈가가 젖었다. 이번 무속 사상 처음 공식화된 전시를 자신이 모신 신과 그리고 신어머니인 김금화 만신께 헌정한다고 했다.

황해도 만수대탁에 사용되는 수파련, 일월꽃, 서리화 등 16가지를 전시하는 이해경 만신의 진화전 <세월의 꽃>은 인사동 목인 갤러리(02-722-5055)에서 오는 18일까지 열린다.
#이해경 #전통지화 #만수대탁 #굿 #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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