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아(Joshua Pilzer)는 시카고대학에서 '한국 음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일본군 성노예 생존 한국 할머니들이 평소에 즐겨 부르는 노래에 담긴 의미를 연구해 논문을 썼다.
김종희
'야스쿠니 신사 합사' 문제를 다루는 국제 컨퍼런스가 지난달 뉴욕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렸다.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몇 분들이 왔기에 참석해서 저녁식사까지 함께 했다.
그런데, 저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서 한국과 미국의 청년들이 어울려 신나게 얘기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나와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미국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내 귀에 너무나 쏙 들렸다. 영어가 이제 들리기 시작하나? 아니다. 그가 한국말을 한 것이다.
발음뿐만 아니라 표현까지 유려하게 쓰는 것이 희한했지만, 백인이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 음악을 가르친다고 하니, 그저 인사만 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거의 한 달 뒤에 컬럼비아대학 근처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내가 자기보다 어린 줄 알았고, 나는 그가 나보다 한참 어린 줄 알았다. 그래서 청년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막상 주민등록증을 까보니(실제로는 없지만) 나보다 약간 어린 36살이었다. 그는 작년에 시카고대학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컬럼비아대학에서 포스트닥터 자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음악 공부하던 학생이 일본국 성노예 생존자 연구하기까지 이렇게 만난 조수아(Joshua Pilzer)는 워싱턴주립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나, 대학을 졸업하고는 음악 활동을 하다가 대학원에서 음악인류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좇아 세계 각국의 토속 음악을 찾아서 듣던 중, 한국인 친구가 자기한테는 너무 어렵다면서 '시나위'를 들려주었단다. 기자가 "그룹 시나위 말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약간 기가 막히다는 듯 "아니 서태지 뭐 그런 거 말고, 굿할 때 하는 무속 음악 있잖아요"한다.
아무튼 조수아는 시나위를 듣고 한국 음악에 빠져들었고, 특히 남도와 서도 음악에 '뿅 갔다'. 하와이에 한국 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를 찾아간 하와이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시카고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석사 과정 중이던 1997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의 전래 음악에 빠져서 지냈다. 개인에게 있어서 일상의 삶에서 음악이 어떤 의미가 있고, 삶과 음악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다 보니 감각이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발달될 수밖에 없는가 보다.
99년 텔레비전에서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들(그는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을 안 쓴다고 했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거기서 할머니들이 흥얼거리는 소리에 귀가 열렸다. 할머니의 목구멍 너머 그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 아픔, 흥겨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환청처럼 들렸다. 그는 일본으로도 건너갔다. 할머니들이 유독 일본 노래를 많이 불렀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한국과 일본과 미국을 오가면서 공부했다.
연구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2년 여름. 경기도 이천에 있는 나눔의 집에 아예 둥지를 틀었다. 3년을 이 곳에서 지내면서 할머니들이 젊었을 때 자주 불러서 지금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는 노래들과 최근 즐겨 부르는 가요들을 일일이 녹음했다.
이렇게 전국을 돌면서 녹음한 구전가요나 민요가 500곡이 넘는다. 조수아는 틈틈이 할머니들이랑 텃밭도 가꾸고, 이 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통역도 해주었다. 가끔 할머니들한테 배운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가 있을 때도 빠질 리가 없었다.
그는 나눔의 집에서 함께 자원봉사를 했던 일본인 사진작가 야지마 쓰카사와 함께 한국에서 몇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쓰카사가 찍은 할머니들 사진에 조수아가 녹음한 증언과 노래를 붙이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