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미스타에서산 마르틴 성당 내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JH
식사를 마치고 동네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성당으로 갔다. '산 마르틴 성당(Iglesia San Martin)'은 건축 백치인 내 눈에도 건물의 조형미가 빼어났다. 지금쯤 바르셀로나, 혹은 내 앞길 어딘가를 걷고 있을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를 돌아봤을 때 카스티야 레온 지역에 산재한 많은 로마네스크 형식의 성당 중 하나일 것이다. 버거운 짐을 풀고 숨을 돌린 후 고요히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말 버스를 탈거야? 이제 다시 올 수 있는지 알 수도 없는데. 800km의 여정 가운데 100km, 그것도 가장 황량하고 거친 벌판을 걷지 않고 지나치는 거야. 어쩌면 아직도 나는… 마주대할 수 없는지 모르지. 아무것도 없는 길 한 가운데서 마주칠 날 것의 나를, 숨김없는 나 자신을.’버스를 타자, 두 발로 걷자,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에서도 시간은 잘도 지나간다. 어느새 1시가 넘었다. 짐을 들고 숙소로 향했다. 손에 든 동네 지도를 보니 마을 외곽에 수영장이 있다. 가방 속에 넣어둔 수영복이 떠올랐다. 기분전환 겸 한 번 수영을 해 볼까? 샤워도 않고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수영장으로 갔다.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가 보는 수영장이었다.
마치 동네 외곽 운동공원 같은 그곳은 낡긴 했지만 샤워실이며 탈의실이 잘 갖춰진 곳이었다. 게다가 평일 오후의 한산함은 매력적이었다. 풀장에는 나이 지긋하신 몇 분뿐, 거의 나 혼자서 풀장을 독점하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산뜻한 비키니로 몸매(!)를 뽐내고 있었고, 나 홀로 선수용 스타일의 새카만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마저도 쑥쓰러워 물에 나오자마자 긴팔을 걸치고 수건으로 몸을 감쌌다.
몇 년만의 수영인지, 겨우 자유형이며 배영을 해 보며 물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했다. 그러나 눈앞의 2미터 깊이에는 차마 갈 엄두가 안 나 꽃게처럼 풀장을 옆으로 왔다갔다하기만 했다. 문득 우스워서 에이, 한 번 가 보자는 마음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느낌이 들라치면 쪼르르 옆의 발치를 붙잡고 죽을 뻔 했다는 듯 숨을 돌렸다. 한 시간여를 그렇게 수영보다는 몸 식히기에 열중하다 숙소로 돌아왔다.
내 침대 근처에서 어제 같은 방을 썼던 브리기테가 짐을 풀고 있었다. “너 아침에 엄청 빨리 출발했더구나”하며 인사를 건넨다. “잠이 잘 안 왔어요. 전 방금 동네 수영장 다녀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참 좋았어요. 시간되면 가 보세요”하고 정보를 건네고 침대로 돌아왔다. 샤워 하고 빨래를 하고 시에스타 시간을 넘긴 후 지도 하나만 달랑 들고 마을을 이리저리 다녔다. 도서관에서는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있어 오래간만에 이곳 소식을 적어 보냈다.
문득 허기가 져 동네 상점에 마실 갔다가 오븐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빵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땡!’하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향기가 작은 상점에 가득했다. 비닐봉지 가득 빵과 리오하 산 비노 한 병 등을 가득 채워서 걷는 길이 벌써부터 뿌듯했다. 그때 눈앞에 걸어오는 순례자의 모습이 왠지 반가웠다. 검은색 긴 생머리를 가진 순례자는 멀리서 보기에도 아시아인, 아니, 한국인이었다.
숙소 바깥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간단한 저녁을 하는 동안 그녀가 장을 보고 돌아왔다. 소라씨는 스물 한 살의 학생으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와 전공이 같았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갓 구운 빵에 꿀을 발라 먹는 맛, 그리고 며칠 만에 만난 한국친구와 한국어로 수다떠는 맛, 두 발로 걸어왔던 리오하의 씁쓸한 비노에 취하는 맛은 달콤했다. 내일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버스를 타고 레온으로 향하려고 했는데, 멋진 동료를 만났으니 하루 함께 묵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일 숙소에서 함께 식사를 해 먹자고 약속을 하고 침대로 돌아왔다.
'바게트를 한 개 사고 엔살라다로 참치, 양파, 콩 같은 걸 마요네즈와 함께 버무릴까, 아님 인스턴트 감자 으깬 것에 옥수수와 콩을 넣고 버무릴까, 단호박 하나를 구하면 좋은데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파스타에 디저트로는 수박 조각을 사서 나눠먹어야겠다. 걷다가는 보카디요 아니면 커피만 마셔도 좋고….'
마음은 이미 내일 숙소에서 차릴 한 상의 점심에 푹 빠져 있었다. 문득 1년 동안 넣었던 정기적금 만기일이 엊그제였음이 떠올랐다. 부모님에게 드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되면 가족들과 함께 이 길을 걷고 싶다. 나의 욕심일까? 집에 가고 싶다. 정말… 비행기 도착하면 모두 안아줄 거야. 그리고 정말 보고 싶었고, 사랑한다고 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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