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비자금 특검에 이어 '이명박 특검' 법안까지 국회에서 통과됐다. 참여정부 들어 도합 여섯번째 특검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이중에서 한번만 노무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고, 나머지 다섯번은 실제 특검이 실시됐거나 실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평균적으로 1년에 한차례씩 실시된 셈이다. 이 정도면 특검 공화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횟수만 많은 게 아니라 사안 하나하나가 참여정부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정권이 출범한 바로 다음날인 2003년 2월 26일 국회에서 통과 시킨 대북송금특검법은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의 절대적 지지 기반을 흔들어 버렸다. 이어진 측근 비리 의혹이나 철도공사의 유전 개발 의혹에 관한 특검은 정권의 도덕성에 국민적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에 대선 이후까지 논란이 될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안'이 통과되면서, 참여정부는 시작과 마지막이 특검으로 점철된 흔치 않은 사례로 기록됐다.
정권 실세 구속에 대통령 맞짱까지... 참여정부 검찰의 거침없는 행보
특검은 검찰권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 비정상적(?)인 제도지만, 사실 현 정부에서 검찰은 이전 정권과는 비교할 수 없게 나름대로 자랑할 만한 공적을 세웠다. 검찰은 청와대 핵심들을 수사하는 데에도 거침없었고,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대선자금을 파헤쳤다.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수사해 정권 초기에 실세들을 줄줄이 구속 시킨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전례가 없었다. 이전까지 검찰이 정권의 실세를 구속 시킨 것은 모두 정권 말기에 레임덕에 걸려 힘이 빠진 실세들에게 마지막 확인 사살을 한 것에 불과했다.
검찰이 정권과 '코드'를 맞추지 않는 일도 많았다. 대통령 취임 초에 평검사들이 TV 생중계로 대통령과 맞장 뜨는 모습까지 보여준 것은 권위주의가 사라진 시대의 진풍경이었다. 개개의 사건에서도 청와대와 검찰의 코드는 계속해서 불일치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 10월 검찰이 강정구 교수를 구속 기소하려했던 일이다.
결국 천정배 당시 법무장관은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지휘권을 발동, 검찰총장에게 불구속 수사를 명했다. 정권의 코드나 비위에 맞춤형 수사를 해오던 이전의 검찰이었다면, 지휘권 발동이라는 사태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 아예 그런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법대로' 이를 수용했고, 이에 대한 항의로 사표를 제출하는 것으로 검찰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진실의 칼'로 승부하는 검찰, 왜 국민은 불신할까?
사실 이 정도라면 국민들 사이에 검찰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법도 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삼성비자금특검이야 검찰 자신도 피의자 신분이 됐으니 특검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BBK 수사 결과마저 국민들은 믿지 않고 있다. 그것도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대통령 후보에 대해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특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찬성한 것이다. 자신들이 지지는 하지만, 그로 인해 현직 권력보다 더 힘이 센 차기 권력에 대하여 검찰이 줄을 섰다는 의구심을 국민들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퇴임하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은 후배 검사들에게 "진실의 칼로 승부를 걸라"는 명언을 남겼다. 아마도 BBK사건과 삼성비자금특검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BBK 관련 동영상이 공개된 지금도 검찰은 수사 결과에 영향을 줄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오직 진실의 칼로 이번 조사에 승부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재수사 검토를 지시한 대통령의 전언도 이와 비슷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검찰이 열심히 수사했지만, 국민적 의혹 해소와 검찰의 신뢰회복을 위해 재수사를 위한 지휘권 발동을 검토하라"
검찰은 열심히 했지만 국민들이 믿지 못하니 수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논지다.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에게도 대들고,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으며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마저 수사한 현 정부의 검찰에 대해 국민들은 '총체'적인 불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국민들은 눈에 보이는 대통령이라는 권력보다 보이지 않는 은근한 권력에 검찰권이 더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삼성이 가지고 있는 은근한 권력의 냄새는 보이는 권력의 힘보다 강하고 구조적이다. 대통령에게는 임기로 인한 레임덕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은 그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은근하고 끈질기며 생명력이 영원하다.
참여정부 하에서 가장 길게 장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도 이명박 지지를 선언했고,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국방부 장관이나 경찰청장 등이 반대편의 자리에 섰다. 눈에 보이는 권력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구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 힘 앞에서 검찰은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검찰 자체가 이러한 구조적 권력의 하나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 앞에서 자유로운 검찰 권력이 오히려 민주세력에게 독이 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에서 검찰이 삼성이나 이명박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일개 노학자였던 강정구 교수에게는 추상같은 법집행을 명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은 이런 구조적인 요인이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현 정부에서 있었던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가 존재했다면, 그것은 '쟁취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에 불과했다. 현 정부가 약한 마이너 세력이 아니었다면 검찰이 권력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댔을지는 미지수다.
검찰, 보이지 않는 권력에서 자유로워져라
참여정부 마지막이 될 두 특검 법안은 영원한 권력 삼성과 차기 권력이 될 것이라 예상이 되는 메이저 세력의 대표주자인 이명박 후보에 관련된 것이다. 구조적 권력에 대해 태생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검찰 권력의 한계를 간파한 국민들의 압력에 의해 특검이 실시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특검까지 불어오게 된 사태를 보면서 검찰이 아직도 법 논리를 찾아가며 자신들의 잘못이 없다고 강변한다면, 설사 특검이 검찰의 논리가 맞는다고 손을 들어주어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는 힘들 것이다. 여기에 강한 메이저 세력에게 정권마저 넘어간다면, 그나마 대선자금 수사로 명예를 얻었던 부분까지 역사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특검을 받아들이기로 방침을 정한 법무부는 "비록 특검법 자체가 갖는 헌법정신과의 충돌, 실효성과 비용 등 문제점이 있지만 이를 국민의 뜻으로 알고 겸허히 수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법치주의의 정착과 국민의 권익 보호를 사명으로 하는 검찰기능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정치적인 이유로 검찰의 신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검찰 기능의 원활한 수행이 정치적인 이유로 훼손되는 일은 검찰 밖으로부터 불어오는 문제가 아니라 검찰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원인을 밖에서만 찾는다면, 밖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검찰은 제자리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검찰은 눈에 보이는 권력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은근한 권력의 힘마저 뿌리칠 자신이 있는가?"
BBK특검과 삼성 비자금특검의 실시를 앞에 두고 만신창이가 된 검찰 권력에게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2007.12.18 12:13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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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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