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칭찬 첨삭 원리⑦] 유려하고 화려한 문장으로 칭찬하라

등록 2007.12.19 08:11수정 2007.12.1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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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어른에게 받은 그대로 행동한다. 자녀는 부모를 보고 배운다. 그래서 자녀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부모가 문제라는 뜻이다. 학생은 선생님을 보고 배운다. 그래서 학생들이 문제라는 건 곧 교육자가 문제라는 뜻이다.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하기에 본보기를 준 사람이 결국 문제의 원인인 셈이다.

 

책을 많이 안 읽거나, 많이 읽어도 제대로 읽지 않은 아이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본보기가 될 만한 문장이나 표현, 구성을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바른 표현이 무엇인지, 감동을 주는 구성이 무엇인지, 설득력을 높이는 논리가 무엇인지 접해보지 못했기에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그래서 좋은 글을 자주 봐야 한다. 좋은 글을 보고 배워야 한다.

 

글쓰기 연습을 할 때 좋은 글을 베껴 쓰는 연습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같은 원리다. 좋은 시를 쓰려면 좋은 시를 숱하게 읽고 옮겨 적어 봐야 한다. 좋은 신문 기사를 쓰려면 좋은 기사를 읽고 연구하고, 분석하면서 씨름해 봐야 한다. 톡톡 튀는 문장, 가슴에 남는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머릿속에서 톡톡 튀고,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문장을 자꾸 음미해 봐야 한다.

 

글쓰기 기본은 문장

 

흔히들 글과 말을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는 단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글과 말을 이루는 기본 단위는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다. 같은 발음이 나는 단어라도 다른 단어와 어떻게 어울리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의미는 단어 단위가 아니라 문장 단위로 전달된다. 말과 글은 문장과 문장이 결합되어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체계다.

 

그래서 글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문장력이 뒷받침 되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 문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글쓰기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장력이 수준 이하인 아이들이 아주 많다. 문장 속에 사용되는 단어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문장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니 글쓰기가 버거워진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글쓰기를 피하려고 한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어려운 표현과 단어가 나오면 독해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쉬운 문장만 나열된 만화책만 읽으려고 한다. 만화책도 어려운 문장이나 단어가 나오면 덮어 버린다. 논술 문제에 나오는 제시문도 조금만 말이 어려우면 독해를 적극적으로 하려 하지 않고 선생님 입만 쳐다보게 된다.

 

시험을 보면 아는 문제도 틀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면 부모님은 “왜 알면서도 틀렸어? 문제를 똑바로 읽어야지”라고 하고, 문제 의도를 설명해준다. 그때서야 아이는 아는 문제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아쉬워한다. 그런데 나중에 비슷한 경우가 또 생긴다. 분명 내용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틀린다. 이처럼 아는 문제를 자꾸 틀리는 이유는 바로 문제를 읽어내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문제는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를 제대로 읽지 못해서 틀렸다는 건, 한 문장을 제대로 독해할 힘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문장력을 길러야 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책을 잘 읽기 위해서, 다른 과목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도 문장력을 길러야 한다.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며 소통하기 위해서도 문장력을 길러야 한다.

 

문장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주 어릴 때부터 수준 높은 문장을 자꾸 접해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그림책은 문장을 가르쳐주는 훌륭한 선생님이다. 그림책에는 정갈하고 맛깔스러우며 가슴을 울리는 훌륭한 문장이 살아 있다. 그림책에는 시적이며 압축적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표현들로 가득하다. 우리말이 지닌 훌륭한 맛과 멋을 마음껏 뽐내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은 생각도 크고, 마음도 크며, 문장력도 기른다.

 

초등학생이 읽는 동화책을 고를 때도 좋은 문장이 가득한 걸 골라야 한다.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세상에 이런 표현도 있었네!” 하는 감탄사가 대여섯 개는 나오는 책을 읽어야 한다. 단순히 인기 있는 책, 지식이 넘쳐나는 책, 이야기가 재미있는 책만 읽으면 문장력을 기르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말을 맛깔스럽게 표현해내는 작가가 쓴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정말 멋진 표현은 몇 번씩 곱씹으며 되새김질도 해봐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도 종종 일상어에서 벗어나는 문장이나 내용을 사용해야 한다. 부모나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어리다고 생각하지 말고, 수준 있는 표현을 구사하면서 아이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다. 수준 높은 대화 속에서 아이는 어려운 표현이나 문장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물론 사고력도 길러진다.

 

칭찬 문장과 문장력

 

첨삭하는 선생님들은 습관적으로 칭찬은 말로 하고, 지적은 빨간 펜으로 남기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칭찬한 흔적은 남지 않고, 지적한 흔적만 남는다. 말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지만 글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남아 있다. 칭찬은 사라지고 지적만 살아남는다. 첨삭에서는 말보다 글이 훨씬 힘이 세다.

 

칭찬은 글로 남겨야 한다. 칭찬할 때는 말과 함께 반드시 칭찬하는 글을 짧은 문장으로라도 써주어야 한다. 글로 남겨 칭찬에 힘을 가득 실어 주어야 한다. 힘을 실어 줄 때는 대충 싣는 게 아니라 확고하게 실어야 한다. 그래서 칭찬 문장은 유려하고 화려해야 하다. 그 어떤 문학적 표현보다도 현란하고 눈부셔야 한다.

 

유려하고 화려한 문장을 써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칭찬하는 문장을 통해서 좋은 문장을 배우기 때문이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아주 탄탄하게 표현했다. 주제에서 벗어나 샛길로 빠질 가능성이 상당한데도 실수하지 않고 주제를 오롯이 살려낸 꿋꿋함에 박수를 보낸다.”

 

위 칭찬 문장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에게 해 준 것이다. 사실 ‘관통하다’, '상당하다', ‘오롯이’라는 단어가 약간 어렵고 낯설기는 하다. 하지만 이 글은 칭찬을 담고 있다. 그것도 정말 잘했다는 칭찬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이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설명해 주지 않아도 문맥 속에서 단어가 지닌 뜻을 파악해낸다. 칭찬이기에 어려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유려하고 화려한 칭찬 문장을 써야 하는 두 번재 이유는 정말로 자신이 잘 썼다는 확신이 들게 하기 위해서다. 단어가 반복되면 칭찬을 받는 사람도 신선한 느낌이 떨어져 칭찬이 주는 효력이 감소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지겹기 마련이다. ‘돋보인다’는 말이 처음에는 뿌듯하게 다가오지만 늘 ‘돋보인다’고 하면 그게 정말 돋보이는 건지, 그냥 건성으로 ‘잘 썼다’는 말 대신 습관적으로 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단어가 자꾸 바뀌어야 하다. 표현이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단어가 바뀌고 문장이 바뀌면 생색내기용 칭찬이 아니라 진짜 칭찬으로 여기게 된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진실로 자신이 쓴 글을 인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래서 칭찬 첨삭을 하려는 사람은 칭찬 문장을 자꾸 연습해야 한다. 일상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문학적이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표현을 하려고 자꾸 시도해야 한다. 칭찬할 때 쓰는 문장이나 단어를 자꾸 새롭게 바꿔 나가야 한다. 상큼하고 세련된 단어나 문장을 볼 때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단어나 문장이 나타날 때마다, 아이들은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배운다.

 

아이들만 글쓰기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나 선생님도 열심히 연습해서 멋진 문장으로 칭찬하는 훈련을 자주해야 한다. 아래에 소개하는 칭찬 문장은 내가 실제 쓰거나, 새롭게 연습한 것이다.

 

“네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구나. 사용된 논리는 체계적이고, 제시된 예는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치밀해. 마무리는 깔끔해서 정갈한 음식을 먹고 난 후에 느끼는 만족감 같았어. 탁월한 짜임새에 감탄사가 절로 나는구나.”

 

“네 글을 읽고 뿌듯했어. 네가 소수 의견인데도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아서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 넌 이제 예전에 자기주장 약하던 소영이가 아니구나. 성장을 축하해.”

 

“근거와 주장은 연결고리가 튼튼해야 해. 근거는 주장을 든든하게 후원하고, 주장은 근거를 바탕으로 힘차게 뻗어 올라야 해. 네 글 속에 근거와 주장은 강철 고리가 하나로 연결된 듯 튼튼했어.”

 

“예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제시한 대안이 신선했어. 특히 두 번째 대안을 읽으니 네가 나보다 훨씬 지혜롭게 여겨지는구나. 솔직히 선생님이 네가 지적한 걸 제대로 못해서 갈등을 겪고 있거든. 내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준 네게 큰 고마움을 전한다.”

 

아이들이 자기 글을 스스로 칭찬할 때도 마찬가지다.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최대한 찬사를 보내는 문장을 쓰도록 독려해야 한다. 직접적인 표현보다 상큼하고 발랄한 표현, 비유가 뛰어난 표현을 쓰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진짜 잘 썼다고 믿게 되고, 자부심을 지니게 된다. 더불어 문장 훈련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아래는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를 칭찬하며 쓴 칭찬 문장인데 읽고 감탄한 것들이다. 본문 글보다 칭찬한 글이 훨씬 뛰어났다.

 

“내 글은 하이디가 쓴 놀람 교향곡처럼 처음에는 잔잔하고 평화롭다가 결정적인 순간 읽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울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특히 내가 쓴 시를 읽고 울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내 글은 내가 읽어도 탁월하다. 마지막 순간에 그려낸 장면은 주위가 온통 한 겨울인데도 마음 속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따스하다.”

 

칭찬 첨삭에서 사용하는 멋진 문장은 그 자체로 크나큰 선물이다. 마음을 살찌우고, 글에 힘을 불어넣는 마법이다. 부모나 선생님은 아이에게 좋은 문장을 선물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칭찬 문장을 써야 한다.

2007.12.19 08:11 ⓒ 2007 OhmyNews
#글쓰기 #칭찬 #첨삭 #논술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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