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 고민 끝에 마침내 선택하다

이제부터는 국민들에게 예의를 지켜주세요

등록 2007.12.19 12:02수정 2007.12.1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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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17대 대통령선거일인 19일 오전 서울 창천동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제17대 대통령선거일인 19일 오전 서울 창천동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 남소연

제17대 대통령선거일인 19일 오전 서울 창천동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 남소연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 이후 이번 17대 대선만큼 유권자들을 힘들게 했던 선거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대선후보들의 난립과 공방 속에 대선후보들의 공약은 무엇인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을 꼼꼼히 따져볼 겨를도 없이 갖가지 공방에 시달리며 몇몇 사람들의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대선정국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우리 한국의 정치수준과 국민들의 정치의식, 윤리의식이 그대로 표출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여과없이 보여주는 우리 현실의 자화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본 것은 이렇습니다.

 

물신주의(경제제일주의)가 점령한 대선 

 

각 후보들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을 하며 다양한 방법들을 내놓았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약도 있었지만 어떤 공약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경제성장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밑바닥에 경제만 성장시킬 수 있다면 최소한의 윤리의식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는 식의 생각들이 깔려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생각은 후보들의 생각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각도 같았다는 데 더 심각성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점차 심화되고 있습니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도를 넘어섰습니다. 거리마다 고급승용차가 넘쳐나고 백화점에는 발디딜 틈도 없고, 음식점마다 모텔마다 호황을 누립니다. 물론 백화점이라고 음식점이라고 모텔이라고 다 호황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업종 중에서도 상류 혹은 대형 또는 고급스러운 것들만 호황을 누립니다. 소시민들의 상실감과 소외감이 점점 커지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미 다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은 매력적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실직자, 박봉에 시달리고 있는 직장인, 사교육비에 시달리는 학부모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구호로 다가오겠지요. 그런데 정작 경제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 혜택이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상대적인 박탈감만 더 커지게 되고 이미 충분히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분노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물신주의는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듭니다. 지금 가진 것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멍청이로 만들어버리고, 실패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물신(物神)은 먹고또 먹어도 배고픈 아귀처럼 갖고 또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만듭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물신의 노예가 되어 살자고 외치는 듯 하여 안타까웠습니다.

 

오로지 권력만을 지향하고 있는 정치 

 

교과서의 정의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은 '정권획득'입니다. 그런데 더 생각해야 할 점은 정권을 획득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정책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한 국가에서 정당은 결국 국민에게 봉사하는 즉 국민의 시녀가 될 때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정당,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정당이 존재하는 나라가 건강한 나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선거철만 되면 국민들에게 굽신굽신 거리던 이들도 당선만 되고 나면 국민들 위에 군림을 하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자신들만을 위한 온갖 권력을 행사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득을 얻을까에만 골몰합니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진실인지 거짓인지 상관없이 자신이 속해 있는 정당에만 맹종을 합니다. 제법 똑똑하고 반듯하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도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말도 안되는 논리로 치장을 하고 나팔수로 자청을 하는 것을 봅니다.

 

정치인으로 입문하는 순간 공약을 다 까먹고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재창출만을 위해서 뛰어가게 만드는 현실은 우리의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오로지 권력만을 지향하는 하류정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민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

 

설문조사가 맞는다면 잘못되었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지지하면 안 될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잘잘못을 떠나 선택은 별개라는 것이지요. 정치현실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 가장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의 한 표임에도 불구하고 선거일만 되면 정작 자신의 의사를 표로 보여주질 않습니다.

 

정치인들은 이미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다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표만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다 할 수 있고, 표만 얻으면 무슨 짓이라도 탕감되는 현실을 너무 빤히 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분노하다가도 몇 달 지나지 않아 다 잊어버리는 망각병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쁜 짓을 해서라도 자꾸만 자신의 이름을 알리면 그 이름이 각인되어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다는 소리가 우스개소리가 아니라 현실은 아닌지 답답합니다.

 

이것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국민들이 그리 만든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해도 제동을 걸지 않고, 으레 정치인들은 저러려니 하고 은근히 그들의 권력의 그림자를 탐하는 마음이 그들을 그리 만든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한 표를 행사하다

 

출근에서 해방되는 날, 늦잠을 자도 좋은 날이건만 이른 새벽에 깨었습니다. 선거 전날까지도 마땅한 후보를 정하지 못해서 잠을 설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지난 밤에 무슨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뉴스를 봅니다만 지난 밤과 달라진 상황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느긋하게 투표장으로 향했습니다. 투표를 하고 나오는 길, 선택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선택한 후보가 당선이 된다고 해도 그렇지요. 내 삶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놓고 보니 대선도 별 것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나라의 대표를 뽑는 일을 다른 사람들의 손에만 맡기는 것은 직무유기인 것 같습니다. 투표에 참여하지도 않고  잘했다, 못했다 가타부타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투표장으로 향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게 주어진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 갔습니다.

 

17대 대선 후보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

 

후보자 모두는 대선 후보로 등록을 하기까지 스스로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졌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이 나라의 국민들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당신들을 보고 희망을 보게 해 주십시오. 당신들의 말 한 마디, 행동을 보면서 웃음지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당리당략으로 일관하는 구태정치에서 벗어나 제발 국민들의 입장에 서서 국민들에게 한 표를 구했던 그 마음으로 이 나라의 정치판을 일궈주십시오. 이 나라가 제대로 가는데 당신들과 당신들이 속해있는 정당이 걸림돌이 되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정치인들이 이 나라가 바로 서는데 걸림돌이 되면 안되는 것 아닙니까?

 

땀흘려 일하면서도 자신의 몫을 찾지 못하고 빼앗겨 억울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이 이땅 방방곡곡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국민들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17대 대선전 선거운동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망각병이라도 걸려 잊어줄 터이니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당선되었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높은 득표율로 당선이 되었더라도 전체 유권자의 과반수도 안 되는 득표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007.12.19 12:02ⓒ 2007 OhmyNews
#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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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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