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과 '부도덕'의 대결... 승자는 없었다

[강인규 칼럼] 과거로의 회귀, 어렵지만 새로운 기회

등록 2007.12.20 09:17수정 2007.12.2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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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부인 김윤옥씨가 19일 저녁 여의도 당사를 찾아 선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대선이 끝났다. 늘 그렇듯, 후보 가운데 한 명이 가장 많은 표를 얻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당선자'는 있었으나 '승자'는 없었다.

'찍을 사람이 없다'며 기권하는 유권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올 대선은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도덕성의 논쟁 속에서 정책토론은 오래 전에 실종된 상태였다. 선거를 막 끝낸 당선자에게는 경제사범 의혹을 가릴 특검수사가 기다리고 있다.

당선자 본인과 소속정당 한나라당은 결백을 주장하고 있고, 검찰도 이미 '무혐의'와 '증거불충분' 결정을 내린 상태다. 그러나 국민 절반 이상이 여전히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런 후보가 무사히 대선을 치를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압도적 표 차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가 말해주는 바가 있다면, 현 집권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중대범죄 혐의자에 대한 혐오보다 컸다는 사실일 것이다. 무능과 부도덕 가운데 고를 것을 요구했던 선거였던 셈이다. 이런 경합에 '승자'가 있을 수 있는가? 

이명박 후보의 당선, 병든 한국사회의 징후

다른 후보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은 적잖이 낙심해 있을 것이다. 한층 더 보수색채를 띤 정부가 한국사회에 가져 올 변화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나, 이들에게 줄 아무런 위로의 말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더 우울한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하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아니다. 그의 당선은 수년에 걸쳐 한국사회에 일어난 광범위한 변화의 한 징후일 뿐이다. 관공서 앞에 '부자 되라'는 현수막이 걸리고, 청소년들에게 '재테크에 미칠' 것을 요구하며,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군인지를 말해 주는' 사회에서 도덕보다 돈을 앞세운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동기를 '경제'에서 찾는다. 이 당선자야말로 노무현 '좌파정부'가 왜곡시킨 '자유시장경제'를 활성화할 적임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기조로 삼았다. 미국 및 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FTA) 강행, 의료기관과 보험의 민영화 유도,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를 낳은 고용유연화 정책, 삼성과 '유착설'을 낳을 정도의 친재벌 정책은 그중 일부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정책을 넘어 국민들의 삶 구석구석까지 퍼뜨렸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어색하게 들렸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카피는 '안녕하세요'만큼 익숙한 인사말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마저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이렇게 노무현 정부가 시장으로 넘긴 권력은 다시 시장(전 서울시장)에게 넘어갔다.


노무현이 싫어 노무현을 다시 뽑은 역설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가 경제적으로 무능했기에 국민들이 이명박으로 돌아섰다고 말한다. 사실은 정반대다.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성공적으로 확산시킴으로써 한층 강화된 신자유주의 정부가 집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보적인 것은 대체로 말뿐이었다. 말은 진보적으로 하면서 행동은 보수로 일관했던 노무현 정부는 국민들로 하여금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발생한 양극화와 고용불안의 문제가 '진보정책'의 산물이라는 착시현상을 갖게 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가 제공하고, 욕은 '진보'가 먹었던 셈이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노무현 정부의 발명품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가 포용한 신자유주의적개방정책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극적으로 확산되었고, 이것이 노무현 정부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그러나 '서민'을 표방하고 출범했던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의 파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이를 적극적으로 껴안는 정책을 썼다는 점은 지지자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현 상황을 5년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노무현이 싫어' 이명박을 선택한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노무현'을 뽑은 역설적인 상황인 셈이다. 신자유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후보로 '정권교체'를 한 것이다. 

앞으로의 5년...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려면

향후 5년은 현재의 어려움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깨닫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여기에 바로 이명박 정부의 고뇌가 있고, 같은 지점에 (미약하나마) 진보진영의 기회가 있다.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가져 온 문제가 진보정책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과정은 이명박 정부에게는 대단히 당혹스러운 경험이지만, 진보세력에게는 어느 정도 누명을 벗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이 던진 표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국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렸던 현재의 (아니, 과거의) 집권세력은 야당으로서 자신들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를 반성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들이 현명하다면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와 닮은꼴을 역이용하면 된다. 말은 보수적으로 하더라도 정책은 진보적으로 하는 것이다. 40퍼센트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비율과 25퍼센트에 이르는 빈곤아동 비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은 경제 성장이 충분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 부재로 인한 결과다.

<파이낸셜타임즈>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은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놓았다'. 부정적으로 보면 퇴행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다시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돈이 최고'라는 가치는 80년대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을 낳았고, 5년 후 이들의 도전은 더욱 거세어 질 것이다. 두 번째 기회가 쉽게 찾아오는 법은 없다.

그러나 힘을 내자. 5년만 살고 말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명박 #노무현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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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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