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이 필요한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세요"

[사형 미집행 10년 그 후] 사형제 존속 주장하는 김상겸 동국대 교수

등록 2007.12.27 10:24수정 2007.12.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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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30일이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된다. 국네 엠네스티가 만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국가에게 주는 명예 훈장이다. 여러 시민단체가 오는 28, 30일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 중이다. 허나 아직 축배를 들긴 이르다. 국민 60-70%는 여전히 사형제 폐지를 반대한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사형제 존속을 내걸었다.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되 사형제는 남아있는 나라 대한민국. 미집행 10년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말]
"생명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가치는 가치고 현실은 현실입니다. 우리는 생명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의 장기를 이식합니다. 생명이 절대 가치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산모의 생명을 위협할 때 낙태를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이 또한 생명이 절대 가치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생명이 절대 가치'라는 것 때문에 사형제를 반대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즘,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학자는 많지 않다. 자칫 '반인권'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국대 김상겸 교수(헌법학)는 독특하다. 그는 1999년 이후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이다. 보는 눈이 많은 시민단체의 고급 간부이면서도 거침이 없다.

김 교수는 "좀 솔직해지자"고 말한다.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자고 말한다. 사람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사형제 폐지'는 이상만을 쫓는 행위다. '보기에만 좋은 떡'이다. 오히려 사형제 폐지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인권 문제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동국대 교수실에서 김상겸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 전문이다.

"인간의 복수심이 그리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다"

a  김상겸 동국대 헌법학 교수. 경실련 정책위원장도 맡고 있다.

김상겸 동국대 헌법학 교수. 경실련 정책위원장도 맡고 있다. ⓒ 김대홍


- 어떤 계기로 '사형제 존속'을 주장하게 됐나.
"1999년 사형제 존폐를 주제로 100분 토론이 열렸다. 그 때 존치를 주장하는 변호사 선배가 나가기로 돼 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내게 대타를 부탁했다. 그 때까지 사형제에 대해서 크게 생각 못했는데, 자료를 조사하면서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됐다. 남용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제도라고 본다."


- 인간이 생명을 함부로 거둘 수 있나.
"생명은 존엄한 것이다. 하지만 법을 집행할 때는 생명을 상대적 가치로 볼 수밖에 없다. 생명을 만약 절대 가치로 본다면 뇌사자 장기이식은 불가능하며, 산모가 위험하더라도 낙태를 허락할 순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한 생명을 죽일 수도 있다. 또한 연쇄 흉악살인범은 스스로 인간 생명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생명을 무조건 보호한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융통성있게 대처해야 한다."

- '사형제가 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2004년 3월 인권위 조사에서 피해자 유족의 90%가 사형을 통해서도 원한이 풀리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사형제가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데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100%는 없다. 100%를 갖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인간의 복수심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누그러지는 게 아니다.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생기는 게 인간 아닌가. 하물며 잔혹한 일을 당했는데, 그 마음이 어떻겠나. 사형제는 사회 방어 차원에서 필요하다. 사형제도가 물론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자기가 치른 잘못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책임의식을 심어준다는 차원에서도 사형제는 필요하다. 한 마디 덧붙이지만, 당시 인권위 조사에 내가 참여했다. 90%가 원한이 풀리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대다수는 사형제를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 처벌이 사형제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종신형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예를 하나 들겠다. 2004년 미국에서 1360년형을 받은 죄수가 있었다. 35년 동안 모범수 생활을 했다. 덕분에 500년 감형을 받았다. 20대에 들어온 그 사람은 이미 60대가 돼 있었다. 그 때 밖에 나간다 해도 이미 사회가 많이 달라져 적응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는 결국 연방대법원에 사형시켜 달라고 요청해 사형이 집행됐다. 종신형이 있다고 해서 사형제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살아있는 것과 죽는 것은 차이가 다르지 않나.
"그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종신형을 사는 사람들 처지를 과연 아는지 묻고 싶다. 게다가 사람들은 종신형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범죄자를 평생 먹여 살리기 위해 내 세금을 낸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교도소가 과연 교화 역할 제대로 하고 있나?"

a  김상겸 교수

김상겸 교수 ⓒ 김대홍


- 교도소는 교화를 하는 곳이다. 교화를 할 수 없어 사형을 한다는 것은 결국 국가 역할을 포기한 것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한테 과연 지금 교도소가 교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얘기해봐라. 사람들이 솔직하지 못하다. 아직 우리나라 교도소가 제대로 교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 사람이 교화될 가능성도 부정하는 것인가.
"교화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을 보면 아주 치밀하게 계획하고 죽인 사람들이다. 우발적 살인이 아니다. 우발적 살인의 경우 법원에서 정상 참작해서 사형 선고를 하지 않는다. 법원에서도 고심을 많이 한다.

사형 선고를 할 정도라면 정말 악랄한 경우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교화가 어렵다. 우리 학교 교수가 피해자가 된 적 있다. 20년 모범수 생활을 하다 석방된 사람이 있다. 교수의 고향 후배였는데, 어느 날 장기를 온통 헤집어놓고 살해한 적이 있다. 교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 잔혹한 일을 당한 뒤에도 가해자를 용서하는 피해자가 있다.
"그 경우를 일반화시킬 순 없지 않나. 사람을 완전히 용서하는 것은 신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세계에선 처벌이 필요하다."

- 교화 가능성을 그렇게 부정하는 것은 직접 사형수들을 만나보고 느낀 것인가.
"교도관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느꼈다. 자료에서 확인한 것이기도 하고. 인간 심성이 쉽게 변하긴 힘들다. 특히 성장하면서 오랫동안 다듬어진 심성일 경우 더욱 그렇다."

사형제 폐지보다 중요한 것은 인권사각지대 개선

- 전 세계 202개국 가운데 사형제를 완전 폐지한 나라가 102개국이다.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안한 국가도 29개국이다. 게다가 사형을 폐지하는 국가가 점점 늘고 있다. 세계 흐름은 '사형 폐지' 쪽으로 기울고 있다.

"어떤 배경에서 사형제를 폐지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독일은 1·2차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다. 범죄국가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사형제를 폐지했다. 게다가 유럽에선 육체 가치만 갖고 생명을 따진다. 생명을 육체와 정신의 합이라고 생각하는 동양과 다르다. 유럽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문화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또한 유럽에선 사형제 폐지가 유럽연방 가입 조건이다. 사형제를 부활하면 유럽연합에서 탈퇴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프랑스의 경우 2005년 프랑스 의회가 사형제 부활을 논의한 적이 있다."

- 언제까지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 국민 60~70%가 사형제를 지지한다는 것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본다. 만날 '사형제 폐지'를 외치는 것보다 사형제가 없어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빠르면 10년 뒤에도 사형제가 폐지될 수 있다. 사형제 폐지는 어차피 시대 흐름이다. 우리나라도 따라갈 것이다. 하지만 더 필요한 게 있다. 인권 사각지대를 찾아 힘을 쏟아붓는 일이다. 스포츠계 구타와 폭행, 이주노동자·장애인 인권 등 사회 소수자와 약자에 대해 적극 활동해야 한다. 그렇게 공을 들이면 사형제는 자연스레 폐지될 것이다. 사형제 폐지는 그렇게 가야 맞다고 생각한다."

- '사형제 폐지' 운동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다.
"너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게 문제다. '가해자도 인권이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교화된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감성적 접근은 한계가 있다. 언제든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잔혹 사건 한 번 일어나봐라. 대번에 여론 바뀐다. 감성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면 감성적으로 뒤집힌다. 좀 합리적으로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지금 상태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미 사형제 존속과 폐지에 대한 근거는 다 나와 있다. 내가 지금 한 말도 다 나온 말이다. 이제 내년부터는 입을 다물 생각이다. 계속 반복하는 것도 지겹다. 사형제는 존치하되 남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형 형벌 규정을 당장 정리해야 한다. 모두 '사형제 폐지'에만 관심을 가지니 그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금 당장 진지하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사형제 #김상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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