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비로봉에 올라 일출을 보자

[충북과 경북의 도계는 백두대간을 따라 있다 ①] 소백산 비로봉

등록 2007.12.25 11:46수정 2007.12.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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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사 하늘의 별들이 어찌나 선명하던지

 

이번 도계 탐사구간은 도상거리가 길어 16.7㎞나 된다. 그런데 탐사하는 날이 12월 22일 동지이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다. 이 거리를 15명 정도의 대원이 주파하려면 10시간 정도는 예상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그런데 집행부에서 기왕 일찍 출발할 거면 좀 더 일찍 출발, 일출을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나는 새벽 3시에 집을 나서게 되었다. 어제 일기예보에 아침 기온이 그렇게 낮지는 않을 거라고 했으니 다행이다. 어둠을 뚫고 차는 풍기로 향한다. 4시 반쯤해서 풍기읍사무소 앞 해장국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풍기읍 삼가리 비로사(毘盧寺)로 향한다. 오늘 산행의 출발점은 비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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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덮여있는 비로사 일주문 ⓒ 이상기

어둠에 덮여있는 비로사 일주문 ⓒ 이상기


비로사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5시 15분이다. 주변은 아직 어둠이 지배하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정말 선명하다. 겨울의 찬공기 때문인지 별빛이 더욱 영롱하다. 북쪽으로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별보기는 역시 추운 겨울밤이 제격이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로사 일주문을 볼 수 있다. 플래시를 터뜨려 비로사 일주문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안쪽에 보니 법당에 불이 커져 있다. 그렇지만 이 밤중에 절집과 유물들을 관찰할 수도 없고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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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사 중흥조 진공대사 보법탑비 ⓒ 문화재청

비로사 중흥조 진공대사 보법탑비 ⓒ 문화재청


비로사는 680년(문무왕 20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라말 고려초의 명승 진공대사(855-937)가 다시 지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진공대사 보법탑비(경북 유형문화재 제4호)이다. 최언위가 찬하고 이환추가 구양순체로 썼다고 하는데 볼 수 없어 유감이다. 원문과 해석문은 국립 문화재연구소에서 만든 '한국 금석문 종합 영상정보 시스템(http://gsm.nricp.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이 절에서 유명한 것이 당간지주(경북 유형문화재 제7호)와 석불이다. 당간지주는 신라시대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4.8m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두 분의 석불좌상이다.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로 원래는 석불인데 개금을 해서 금동불처럼 보인다.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된 9세기 후반 불상으로 화엄종과 관련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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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사의 보물인 석불좌상 2기 ⓒ 문화재청

비로사의 보물인 석불좌상 2기 ⓒ 문화재청

 

비로봉 오르는 길의 단상

 

우리는 준비운동을 하고 신발끈을 다시 한 번 조인 다음 비로봉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시간은 5시 20분이고 해발은 525m이다. 해발이 1439.5m인 비로봉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헤드랜턴을 해서인지 길 찾기가 별로 어렵지 않다. 또 에베레스트까지 갔다 온 박연수 대장이 앞에서 길을 인도하니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간다.


이 코스가 비로봉에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이고 또 경사가 심하지 않은 능선코스여서 오르기가 가장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둡기 때문에 올라가면서 주변을 조망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또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나가는 길을 잘 보아야 하니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하늘을 보니 완전히 동그랗게 되지 못한 열사흘 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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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 가는 길에 만난 서낭당 ⓒ 이상기

비로봉 가는 길에 만난 서낭당 ⓒ 이상기


조금 더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풍기와 순흥의 불빛이 반짝인다. 풍기가 조금 더 커서인지 불빛의 영역이 더 넓다. 가다 보니 등산객들이 돌을 던지며 안산을 기원한 서낭당도 있다. 1시간 20분쯤 오르니 해발 1150m에 양반바위가 있다. 비로봉까지는 1.3㎞가 남았다고 쓰여 있다. 아침 7시쯤 되니 동쪽 하늘로 여명이 보인다. 검은 대지와 푸르스름한 하늘 사이로 붉은 색이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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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하늘에 아침의 여명이 보인다. ⓒ 이상기

동쪽 하늘에 아침의 여명이 보인다. ⓒ 이상기


비로봉이 저 위로 올려다 보이는 마지막 능선에 도착하니 경사가 만만치 않다.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 대지는 이미 희미한 빛이 장악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앞에 보니 조광래 조난지점 표석이 서 있다. 이곳에 조난을 당할 정도면 그날은 굉장히 춥고 바람이 심했을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곳에서 나무 계단만 올라가면 비로봉이다. 두 시간 정도 고생해서 일 년 중 해가 가장 남쪽에서 떠오르는 동짓날 비로봉에 오르는 것이다.

    

비로봉 정상에서 느끼는 일출의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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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전의 비로봉 표석 ⓒ 이상기

일출 전의 비로봉 표석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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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후의 비로봉 표석 ⓒ 이상기

일출 후의 비로봉 표석 ⓒ 이상기

 

계단을 밟아 오르는 길에 상고대가 하얗다. 정상에 오르니 사방으로의 조망이 정말 시원하다. 먼저 서남쪽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을 바라본다. 이런 걸 바로 일망무제라고 하는 모양이다. 연화봉 너머로 도솔봉은 확실하고, 더 멀리 황장산까지 보이는 것 같다. 눈을 동북쪽으로 돌리니 국망봉과 그 너머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이 보인다. 동쪽 영주 쪽으로는 해가 떠오르기 위해 붉은 빛이 조금씩 더 짙어지고 서쪽 단양 쪽으로는 대피소 건물 너머로 몇 겹의 산줄기가 보인다.

 

7시33분 동이 트기 시작한다. 황금빛 줄기가 저 대지 위로 퍼져 나온다. 바다의 일출처럼 해가 동그랗게 올라오는 것을 보기는 어렵다. 해무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비로봉 표지석마저 약한 붉은 빛을 띤다. 이곳에 오른 우리 대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해를 향하고 있다. 처음에는 우리 대원을 포함 20여명에 불과하더니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난다. 천동리 쪽에서 올라온 사람, 연화봉 쪽에서 올라온 사람, 우리처럼 비로사 쪽에서 올라온 사람 합해서 30여명이 일출의 장관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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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의 시작 ⓒ 이상기

일출의 시작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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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절규 ⓒ 이상기

빛의 절규 ⓒ 이상기
 

비로봉 정상에는 바람이 굉장히 세다. 일출과 함께 공기가 바뀌어서 일 수도 있고, 이곳이 가장 높은 능선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 뿐 아니라 볼과 귀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나는 그제서 모자를 뒤집어쓴다. 우리는 비로봉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그런데 이 높은 봉우리에도 새가 보인다. 갈색바탕에 붉은 깃털이 섞여있는 처음 보는 새가 맑은 소리를 내면서 난간과 표석 주변을 서성인다. 녀석도 사람들이 그리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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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에서 만난 새 ⓒ 이상기

비로봉에서 만난 새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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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시 ⓒ 이상기

'소백산' 시 ⓒ 이상기

비로봉 표석 뒤에 보니 서거정(徐居正)이 쓴 소백산(小白山)이라는 시가 우리말 번역과 함께 적혀 있다. 이 시는 서거정의 시집인 <사가시집(四佳詩集)> 보유 3 여지승람(輿地勝覽) 편에 실려 있다. 제목은 ‘풍기 소백산’이다. 마지막 문구를 ‘하늘땅에 귀신도 인색하지 않았구나’ 정도로 번역하면 어떨까?
 
小白山連太白山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逶迤百里挿雲間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分明劃盡東南界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地設天成鬼破慳  하늘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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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 ⓒ 이상기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 ⓒ 이상기

덧붙이는 글 | 도계탐사를 하면서 백두대간 길을 걸었다. 풍기읍 삼가리 비로사에서 출발 비로봉을 오른 다음, 국망봉 상월봉으로 해서 마당치 방향으로 탐사를 했다. 조사 내용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 중 첫번째 글이다.  

2007.12.25 11:4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도계탐사를 하면서 백두대간 길을 걸었다. 풍기읍 삼가리 비로사에서 출발 비로봉을 오른 다음, 국망봉 상월봉으로 해서 마당치 방향으로 탐사를 했다. 조사 내용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 중 첫번째 글이다.  
#비로봉 #비로사 #풍기읍 #백두대간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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