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을 하시든지 폐교를 비워주시든지..."

폐교 공개 입찰 '사기 사건' 전모를 밝히다 ①

등록 2007.12.25 14:12수정 2007.12.2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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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뉴스 중에 하나는 신출내기 여성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사기당하고 변호사 폐업 신고를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런 억장이 무너지는 사기를 당한 전문 법조인으로서 죽고 싶을 만큼 자존심과 명예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있기에 전문가조차 당하는 세상이 되었는지 선량한 국민들은 그저 통탄할 뿐일 것이다.


그 기사를 보면서 자존심과 금전적인 치명타를 입고 그동안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우리가 당했던 사기 사건의 전말을 이제는 공개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사건은 우리가 사는 폐교와 관련된 것이기에 더 공개하지 않을 수 없다.

<오마이뉴스>에서 폐교를 임대한 것을 계기로 ‘폐교 문화 부흥’을 위해 전국적인 캠페인을 하고 있고 그간의 기사들을 보니 폐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전국 농촌 지역에는 많은 폐교들이 있지만 경치 좋고 교통이 좋은 소위 명당 폐교들은 이미 투기꾼들에게 넘어가 있는 상태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폐교들을 이용해서 농촌 공동체나 귀농운동 본부들이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은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폐교를 이용하겠다는 사람들이나 단체들이 많아질수록 사기꾼, 브로커들도 설치기 마련이니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가족이 폐교에 자리잡은 지 2년쯤 지났을 때였다. 임대로 살았기 때문에 1년에 한번 씩 임대계약을 새로 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1년차 임대 갱신할 때도 별 탈이 없이 갱신이 되었기 때문에 2년차 임대 계약 갱신도 우리는 그렇게 넘어가는 줄 알았다.

“청으로 나오셔야 겠어요? 매각 공고를 냈는데 세 사람이나 입찰을 했으니 현재 살고 있는 분도 나오셔서 입찰을 하시든지 폐교를 비워주시든지 해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입주 하기전 우리 폐교의 전경 ⓒ 오창경


교육청 담당자의 날벼락 같은 전화에 우리는 교육청으로 향했다. 우리는 거기서 경기도와 대구에서 왔다는 두 명의 남자와 조우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가 사는 폐교를 이용해서 사업을 해보겠다며 으시대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자리를 잡았고 우리 폐교는 오지에 있어서 공장용으로 이용하기에는 알맞은 입지 조건이 아님을 설명했지만 그들은 단호했다. 그러면서 함께 입찰에 응해서 가격이 얼마가 됐든 당당하게 사서 살라고 오히려 우리에서 큰소리를 치고 거들먹거리며 말끝마다 ‘그깟 시골 땅’이라면서 경제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껏 풀이 죽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우리 집에는 낯선 차 한 대가 서 있고 중년의 남녀가 마당에 서서 우리 폐교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더니 대뜸 매각 공고를 보고 왔다면서 우리 폐교를 사서 유치원 연수원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교육청에서 만나지 못했던 세 번째 입찰자였던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안으로 들여서 차를 대접하면서 하소연을 섞은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부부의 인상은 교육청에서 만났던 그들에 비하면 좋아 보였다. 특히 남편 쪽이 우리의 처지를 너무 잘 이해해 주는 듯 빈틈을 보였고 나는 그 틈을 이용해 눈물을 흘리며 다가 올 추위에 어린아이들 데리고 나갈 데도 없고 경제력도 없다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통사정을 해댔다.

“그럼, 사모님 우리가 입찰에 빠져 줄테니 그동안 우리가 여기 왔다 갔다하고 서류 만들고 했던 비용이나 챙겨주시죠?”
“그래요? 얼마나 해드리면 되는데요?”
“글세, 한 3백이면 되죠. 우리까지 입찰에 뛰어들면 공시가보다 5천은 올라갈 텐데 그 정도면 다가올 엄동설한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안 그래요? 사모님.”

우리는 그제야 그의 능글능글한 어투에서 어렴풋이 우리가 모종의 사건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느꼈다. 단지 말 한 마디로 기백이 들어오고 손도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는 수법을 우리는 그 유치원 업자에게서 본 것이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서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받거나 몸과 머리를 부지런히 써야만 돈이 들어오는 줄만 알았던 나한테는 그들의 수법은 정말 참신한 것이었다. 그런 수법으로 돈을 버는데 맛을 들이면 피와 땀이 섞인 돈으로 한푼 두푼 저축을 하며 사는 일을 당연히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설경과 어우러진 우리집 항아리들, 이 항아리들 때문에 우리는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 오창경



그날은 마침 토요일이었고 입찰 마감일은 월요일이라서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던 우리에게도 사건을 정리할 시간은 충분했다. 공개 입찰 마감일에 닥쳐서 우리와 접촉을 시도하면서 법률적인 용어들을 자주 입에 올리며 유난히 경제력을 과시하는 그들은 분명 우리가 사는 폐교가 탐이 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폐교는 부동산업자들이나 사업장을 마련할 사람들이 노릴 만한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한 평범한 입지에 있었다. 우리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입주를 했다가 이제는 정도 들었고 나은 조건으로 이사를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짐작이 갔지만 공개 매각 입찰 마감일이 닥쳐왔고 그들이 공개 입찰에 뛰어든 이상 우리가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드디어 공개 입찰일이 되었고 입찰 장 앞에는 우리와 그 유치원 업자, 대구에서 온 노인, 경기도에서 온 중년의 사내가 팽팽한 긴장감을 감춘 채 서 있었다.

“사장님, 생각을 해 보세요. 저들이 대구에서 경기도에서 여기까지 왔다갔다 하고 신경쓰고 한 게 어딘데 쉽게 빠져주겠어요. 5백씩 달라는 게 무리는 아니죠.”

그 유치원 업자는 아예 브로커의 본색을 드러내고 그 자리에서 5백씩 주면 입찰에서 빠져 주기로 나머지 두 입찰자들을 설득해 놓았다면서 당장 입금을 해주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나오는 한, 이제는 우리가 칼자루를 잡아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우리가 입찰 시간까지 시간을 끌면 그들도 초조해질 것이며 막상은 입찰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유치원 업자는 입찰 포기를 한 상태에서 공개 입찰이 시작되었다. 교육청에서 제시한 공시지가보다 많은 가격을 쓰는 사람이 그 가격으로 우리 폐교를 인수하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공시지가보다 높게 써내서 우리 폐교를 인수하게 된다고 해도 우리는 수중에 그 만한 돈이 없었다. 이제 새로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밖에 안 된 우리에게 그 만한 돈을 벌었을 리 만무했고 은행 빚을 끌어 들이기에도 그 이자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자를 물어내다가 감당을 못해서 은행에 넘어가는 사태가 온다면 굳이 그 폐교를 소유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입찰 결과, 경기도 남자는 공시지가에 밑도는 가격을 썼고 그 대구 노인네는 공시지가보다 만 원쯤 올린 가격을 썼다. 남편은 공시지가에서 낱투리 없이 앞자리 두 개만 쓴 가격인 1억5천만원만을 썼다. 그들이 사기꾼임을 알게 된 만큼 남편은 공시지가 이상으로 써서 낙찰을 받는 것보다는 이사 가는 것이 낫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폐교는 단 3일 동안의 해프닝을 통해 단돈 만원 차이로 대구에서 온 노인네에게 낙찰되었다.

덧붙이는 글 | <폐교 이야기> 공모 글

기사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폐교 이야기> 공모 글

기사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폐교 #폐교 사기 #폐교 매각 #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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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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