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빈이 학교' 이야기

초등학교 5학년인 은빈이는 주일 아침이면 아이들을 돌봐줍니다

등록 2007.12.28 19:13수정 2007.12.2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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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은빈이가 6살 때쯤이었을까? 교동에서 살 때였다. 한여름 너무 더워서 아이들을 데리고 고구리저수지로 바람을 쏘이러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아이들도 시원해서 좋은지 쉬지 않고 떠들어 댄다. 아내도 새색시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고 행복하게 웃는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저녁노을이 온 하늘과 저수지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내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여보, 저기 좀 봐! 와 진짜 예쁘다!”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초등학교 4학년인 의빈이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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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고구리 저수지. 은빈이와 두 아들 얼굴까지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었다. ⓒ 박철

문제의 고구리 저수지. 은빈이와 두 아들 얼굴까지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었다. ⓒ 박철

“아빠, 나는 우리 은빈이가 저녁노을보다 더 예뻐요.”

 

그 말을 들으며 우리집 식구 모두는 감동했다. 자기 동생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으면 저녁노을보다 더 예쁘다고 했을까? 세월이 강물처럼 흘렀다. 은빈이가 이제 5학년, 겨울방학만 지나면 6학년이 된다. 많이 의젓해졌다.

 

어제(26일)는 2007년 마지막 수요일 저녁예배를 맞아 교우들과 함께 2층 교육관에 모여 원을 그리고 앉아 지난 한해를 반성했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며 칭찬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맨 마지막에 대학교 1학년인 호빈이 차례였는데 호빈이가 자기 동생 은빈이를 칭찬하면서 막 우는 것이었다. 조금 의외이기도 했지만 옆에 있던 나까지 코끝이 찡해졌다. 맨날 동생에게 야단만 치는 오빠인줄 알았는데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속에는 그렇게 살가운 데가 있었나보다.

 

호빈이가 은빈이를 칭찬하려다 울음보가 터진 대목은 이런 내용이다. 자칫 과장이 될까봐 조심스럽게 이 글을 적는다. 주일아침이면 우리집 전체가 분주하다. 저마다 자기 할 일이 정해져 있다. 나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교회청소를 하고 서재에 올라와 그날 주일아침 설교를 소리 내어 몇 번이고 정독한다. 어느 때는 아내 앞에서 읽을 때도 있다.

 

아내는 주일아침 교회청소를 하고, 주방봉사자 일을 돕다가 조금 늦게 올라와서 이번에는 집안청소를 한다. 아내는 주일엔 꼭 대청소를 한다. 호빈이는 교회학교 아동부 교사로, 의빈이는 전날 할머니 집에서 자고 할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온다. 이어서 아내와 두 아들은 성가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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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빈이가 7살 때. 고구리 저수지 앞에서 ⓒ 박철

은빈이가 7살 때. 고구리 저수지 앞에서 ⓒ 박철

 

주일아침 성가대 연습을 시작할 때쯤이면 은빈이가 귀여운 천사들을 데리고 사택으로 올라온다. 혜원, 혜민, 예지, 신아, 은혜, 다솜…. 하나하나 배꼽인사를 한다. 드디어 ‘은빈이 학교’가 시작된다(아이들이 그렇게 부른다). 단연 은빈이가 선생님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노는 것은 아니다. 그날그날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다. 찰흙으로 만들기, 색종이 접기나 붙이기, 도화지에 그림 그리기, 동화책 읽어주기 등등….

 

내가 잠시 모르는 척 하고 예배시간 전까지 지켜본다. 아이들이 모두 은빈이를 잘 따른다. 오줌이 마렵다고하면 얼른 스타킹과 팬티를 벗기고 오줌을 누이고, 물로 손을 닦아준다. 칭얼거리는 아이가 있으면 잘 달래준다. 아무도 왕따를 시키지 않고 골고루 관심을 갖는다. 자기 용돈으로 과자를 사서 똑같이 나누어 준다.

 

한 번도 자기가 하는 일을 귀찮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 일을 좋아한다. 늘 아내에게 “엄마, 신아 너무 예쁘지요. 예뻐 죽겠어요”, “엄마, 혜원이 볼수록 귀여워요. 말을 얼마나 또박또박 잘 하는데요”, “엄마, 예지 참 똑똑하지. 마음도 얼마나 착한데요” 그렇게 늘 노래하듯이 아이들을 칭찬한다.

 

지난 가을 어느 주일오후였다. 성가대가 다음 주 곡을 연습하던 시간이었는데, 혜원이가 소리를 내며 우는 것이었다. 나는 혜원이 엄마가 안 보여서 우는 줄 알고 ‘엄마 금방 온다’고 혜원이를 달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1층 로비에서 은빈이가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은빈이가 혜원이를 울린 줄 알고 은빈이를 야단쳤다. 애를 잘 봐주어야지, 애를 울린다고 다 큰 게 왜 우냐고? 은빈이를 나무랐다. 그랬더니 다른 애들이 손사례를 치면서 목사님 그게 아니라고 한다. 영문을 물으니 혜원이가 대답한다.


“은빈이 언니가요, 돈이 2천원밖에 없었어요. 그걸로 5백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야 모든 아이들이 다 먹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신아와 혜원이가 8백원짜리 사달라고 막 떼를 쓰고 울었어요. 그래서 은빈이 언니가 속상해서 울었던 거예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은빈이를 야단쳤는데 미안했다. 그래서 은빈이를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사과했다.
“야, 우리 은빈이가 많이 컸구나. 은빈이가 벌써 엄마 마음을 가졌구나. 아빠가 모르고 야단쳐서 미안하다.”

 

우리 은빈이가 많이 정말 컸다. 주일아침, 은빈이가 아이들을 잘 봐주어서 엄마들이 예배에 집중할 수 있다. 새해에는 은빈이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성가대를 하기로 한 엄마들도 있다. 그리고 새해엔 아이들이 더 늘어날 것 같다.

 

이쯤되면 대학생 호빈이가 은빈이를 칭찬하면서 울음보가 터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모두 더욱 사랑하렴. 더욱 넉넉해지고 깊어지렴. 새해엔 우리 ‘은빈이 학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2007.12.28 19:13 ⓒ 2007 OhmyNews
#은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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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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