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진보정권이 참패한 원인을 경제정책실패로 인한 서민의 불신과 민심이반에서 찾는 이가 많다. 보수세력 또한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깨끗한 무능보다는 차라리 부패한 유능이 낫다는 말로 국민을 선동했다.
과연 그러한지 시계바늘을 1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IMF 외환위기 때 수백만의 근로자들이 강제퇴직을 당했다. 이들의 재취업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기에 이들이 받아 쥔 퇴직금으로 생계유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자영업 외에는 거의 없었다.
그 결과 외환위기 이후 식당, 미장원 및 개인트럭사업자의 숫자가 외환위기 전에 비해 2배 내지는 3배정도 늘었다. 제 살 깎기씩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수익이 날 리가 만무하고 피부로 느끼는 서민경제는 그만큼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한 방편으로 참여정부에서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재벌자본의 대형할인마트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규정을 만든다고 했으나 보수세력은 좌파적 발상이라고 반대를 했다.
그 때 보수세력은 재래시장도 대형마트와 스스로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었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는 돈이 곧 경쟁력이 아닌가. (한나라당 대통령직 인수위는 이제 와서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진보정권의 정책내용은 IMF프로그램의 성실한 이행과정이었고, IMF가 요구하는 프로그램 자체가 거대재벌 자본과 다국적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다 보니 서민경제는 더욱 궁핍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당이 바로 한나라당이다.
나아가 보수세력은 현정부들어 국가채무가 많이 늘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채무 증가 원인”을 따져보면 대부분이 외환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외평채 발행과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공적자금투입이 대부분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불러온 보수세력의 후안무치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IMF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는 한나라당이 언제부턴가 보수족벌언론과 연합하여 자신들의 원죄를 망각한 채 좌파정권이 경제를 망쳤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더니, 이번 선거에서는 거꾸로 ‘잃어버린 10년’을 외치고 다녔다. 국민은 주객이 전도된 보수진영의 구호를 냉철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여기에 무비판적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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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선거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한나라당 대통령 선거연락 사무소 ⓒ 노기홍
이번 대선참패의 원인을 경제문제로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보수세력은 진보정권 10년간 가장 실패한 경제정책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고 있다. 분양권 전매제한조치, 아파트원가공개, 부동산관련 조세정책을 일찍 시행하지 못한 탓에 부동산시장을 일찍 안정시키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컸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부동산가격 폭등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최근 몇 년간 세계부동산시장은 그야말로 미친듯이 요동쳤다. 오죽했으면 미국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사막에까지 투기열풍이 불었을까. 그때 은행들은 너나없이 대출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 결과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부동산에 해주는 담보대출) 부실사태가 발생해 향후 미국과 서유럽경제가 어둡다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담보대출한도를 일찍 규제한 덕에 미국에서와 같은 큰 혼란은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IMF 이후 국민소득 8천불 시대에서 2만불 시대로 올라섰고, 290포인트에 머물던 주가지수는 2000포인트를 넘어서 사상최고치를 갱신하는 등 경제지표가 지난 10년 전에 비해 월등히 좋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므로 진보정권의 실패를 경제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진보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참패했는가. 진보세력이 10년간 집권하면서 실패한 것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해소시키지 못한 점과 ‘포스트 노무현 철학부재’ 때문이 아닐까.
지역주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걸 간과한 게 문제였다
1963년 집권당 민주공화당 이효상 의원은 대선에서 ‘영남이 단합하여 박대통령에게 몰표를 밀어줘야한다’라는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발언을 했고, 1992 민주자유당 김영삼후보는 대구경북 유세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보수세력이 내세우는 ‘서민경제의 몰락’은 권력재창출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표면상의 논리였을 뿐, 저들이 실제로 이용한 것은 지역주의였다.
보수세력은 한나라당을 불임정당으로 부르고, 심지어는 박정희를 무덤에서 부활시켜가면서까지 과거집권당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영남이 호남보다 차별대우를 받아 서민경제가 아사 지경에 이르렀다는 전략을 병행함으로써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주력했다.
영호남 대결구도로 가면 인구수에서 훨씬 열세에 있는 호남은 필패, 인구수가 호남의 2.5배 이상이나 되는 영남은 필승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런 손쉬운 승리가 있는데 어느 바보가 이런 구도를 이용하지 않겠는가.
외관상 비쳐진 진보 대 보수의 대결구도 때문에 지역주의가 가려졌을 뿐, 유권자의 의식은 이미 보수언론의 세례를 받아 지역주의의 틀 안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러면 수도권의 표심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보수세력은 수도권에서는 수도권 표심에 부합하는 수도권발전논리를 펼침으로써,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는 참여정부의 정책에 반감을 갖도록 하는 구도로 몰아가면서 신지역주의에 편승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보수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수도권의 경제발전을 외치며 수도권의 규제를 풀어줄 것을 틈만 있으면 정부에 요구했다. (이번 대선기간 동안 정동영후보가 지방균형발전에 대하여 가장 적극적이었고, 이명박 후보는 가장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참여정부의 행정수도이전과 지역균형발전정책에 대하여 수도권 유권자들이 불안을 느끼게 하는 전략은 잘 먹혀 들어갔다. 수도권 집값하락과 경제침체에 대한 불안감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표심은 자연스레 이명박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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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당선 현수막 2007. 12. 28 비내리는 대구시 동대구로 4거리에 걸려있는 이명박 후보 대통령 당선 축하 현수막 . 이명박 당선자의 부인 김윤옥씨는 대구여고 출신이다. ⓒ 노기홍
이번 선거가 인물위주의 선거가 아니라 지역주의에 편승한 선거였다는 증거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02년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에 맞서 탈당한 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박근혜의 지지율은 고작 3%에 불과했다. 당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60%를 육박할 때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16%도 되지 않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영남지역에 연고를 둔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표심이 결집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물론 박근혜가 탈당하여 독자적으로 출마했다고 하더라도 이회창의 득표율과 별반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과거에 그렇게 열광적으로 지지하던 서문시장을 다시 찾아왔지만 그를 반긴 것은 달걀세례뿐이었다. 그 또한 이 지역에 지역주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결국 보수세력은 음험한 지역주의의 함정을 파놓은 채 외관상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덫을 놓았고, 순진한 진보세력은 항변 한 번 변변하게 하지 못한 채 그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다 내부분열로 진을 다 빼버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보수진영이 쳐놓은 ‘지역주의 함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채 몰락하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포스트 노무현 철학의 부재가 문제였다
노무현은 16대 대선뿐만 아니라 이번대선에서도 이런 지역주의의 구도를 깨뜨리지 않는 한 결코 진보진영이 승리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민주당간판으로 영남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지역구인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서 출마함으로써 지역주의 구도를 깨려고 시도한 최초의 정치인 이었다.
다들 그를 바보 노무현이라 불렀지만, 그는 결코 바보 노무현이 아니었다. 고질적인 지역주의 구도를 깨뜨려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노무현은 탁월한 정치감각을 지닌 승부사였다.
뿐만 아니다. 거대언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대통령이 되기에 불가능한 정치풍토에서 그는 재벌언론사에 수십억원의 세금을 매기고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과감성도 보였다.
민주당 후보가 된 후 50%에 달하던 지지율이 보수언론의 공격과 당내부의 흔들기로 말미암아 지지율이 6%까지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수수방관하는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쓴 소리 한 번 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런 노무현의 정치철학에 매료되어 민중은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당선 후 그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고, 정경분리, 밀실정치 타파, 반대세력에 대한 정치사찰 등의 병폐를 없앰으로써 민주정치의 발전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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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후보 당선축하 현수막 비내리는 대구시 신천동 4거리에 걸려있는 이명박 후보 대통령 당선 축하 현수막(2007. 12. 28). 이명박 당선자의 부인 김윤옥 씨는 대구여자중학교 출신이다 ⓒ 노기홍
그러나 그는 취임 후 ‘대북송금 특검’을 실시함으로써 대통령의 통치권을 법치주의의 틀 안에 가두어 버리는 모순을 범하고, 국가보안법폐지에 큰 힘을 소모하면서도 보수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밀려 그 뜻을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지치기 시작했다.
나아가 당정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열린우리당과의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여 진보세력을 규합 할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또한 경제논리에만 입각하여 새만금개발, 이라크파병, 한미 FTA 체결 등 우파정책을 앞장서서 시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 이상 그는 진보좌파가 아니었고 중도우파성향의 실용주의자였다. 지지세력인 진보진영은 이에 크게 실망하여 등을 돌리고 그를 우파라 부르며 분열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다. ‘한미 FTA 하나만 체결해도 길이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노대통령을 치켜세우던 보수언론은 FTA가 체결되자 이제는 ‘수도권 규제완화, 부동산관련 세금인하, 3불정책폐지, 금산분리 철폐 등’을 거세게 요구하며 이를 수용하지 않는 대통령을 좌파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결국 노대통령은 진보, 보수 양진영으로부터 협공을 받으며 설 자리를 잃고 정치적 피로감에 지치고, 레임덕에 빠지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로 내려앉자(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말 지지율은 10%였음), 집권여당은 보수언론의 편향적인 보도에 대응할 생각은 않고 보수언론의 이간질에 친노, 반노로 나뉘며 적전분열상황까지 보이더니 스스로 집권여당을 깨뜨리고 뛰쳐나가 무늬만 다른 신당을 만들어 선거에 임했다.
그들 또한 지역주의에 편승하여 이번 대선보다는 다음 총선을 의식하는 구도로 선거에 임했고, 결국 호남에서만 몰표를 얻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보수진영의 지역주의 구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우를 범했다.
진보진영이 살길은 지역당에서 전국당으로 새 틀을 짜는 것
결국 열린우리당은 ‘잃어버린 10년’의 덫과 ‘신지역주의’ 구도를 읽지 못한 채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보수세력이 그렇게도 원하던 친노, 반노의 대결구도에 스스로 함몰되어버린 나머지 줄탁동시의 기회를 스스로 팽개쳤다. 이러한 이들의 행태는 서민의 불신과 민심이반을 더욱 깊게 할 뿐이었다.
노대통령이 말했듯이, 열린우리당은 단순히 노무현 정당이 아니라 지역당에서 정책당, 전국당으로 가는 도덕적 가치였고, 정치적 가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은 이러한 전략적 비전, 근거, 가치를 뭉개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노대통령은 지역구도를 깨뜨리는 통합정치의 틀을 만들려했으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내부의 협공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펼치지 못했다. 한국에서 진보진영이 호남에 얽매이는 구도로 가서는 절대로 영남에 기반을 둔 보수진영을 이길 수가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음에도 스스로 진보개혁세력의 구축에 실패함으로써 그 기회를 놓쳤다.
진보진영은 보수세력의 왜곡된 주장을 전혀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더니 선거가 끝나자마자 패배주의에 빠져 선거참패 원인을 놓고 서로 ‘네탓’비난을 하면서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제 진보진영은 이런 소모적인 책임공방에서 벗어나 스스로 지역주의에 안주하는 틀을 깨뜨리고 나와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한다. 아울러 보수진영이 수 십 년 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고 있는 지역주의의 틀을 깨뜨릴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민중들이 더 이상 보수언론의 왜곡된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적절한 대응책을 세우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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