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여동생 "오빠는 여자친구도 없이 죽어"

[해외리포트]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윤동주 90세 생일잔치'

등록 2007.12.30 17:44수정 2008.01.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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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90세 생일잔치. 시드니 우리교회 신자들이 참석했다. ⓒ 윤여문

윤동주 시인 90세 생일잔치. 시드니 우리교회 신자들이 참석했다. ⓒ 윤여문
 

윤동주 시인 ⓒ 오형범 제공

윤동주 시인 ⓒ 오형범 제공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윤동주, 생일 축하합니다."

 

12월 30일 오전 9시, 시드니 서부에 위치한 '시드니우리교회'에서 울려 퍼진 윤동주 시인 생일축하노래다. 교인들은 90년을 상징하는 촛불 9개를 밝혀놓고 생일축하 시루떡도 함께 나누었다.

 

(우리의 옛 땅이었지만) 남의 나라 땅 북간도에서 태어나서, 남의 나라 땅 후쿠오카에서 타계한 윤동주 시인. 그는 27년 8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을 뿐이다. 그런 윤동주 시인의 90세 생일잔치가 하필이면 또 하나의 이국땅인 시드니에서 열렸을까?

 

그 까닭은 윤동주 시인의 유일한 피붙이인 누이동생 윤혜원(84)이 20년 넘게 시드니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윤혜원은 남편 오형범(84)과 함께 윤동주 문학을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 헌신하면서 온 생애를 바쳤다.

 

윤동주 문학에 바친 80대 노부부의 생애

 

2007년은 한국 현대시 100주년에 해당되는 해다. 그를 기념하여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다. 한국인의 애송시 또한 윤동주의 '서시(序詩)'가 1위로 뽑혔다. 이런 결과는 지난 20여 년 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살아 생전 시인으로 등단한 적도 없고 시집 한 권 내지 못한 윤동주 시인이 이렇듯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여동생 윤혜원의 덕이 크다. 룽징(龍井)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했던 윤혜원이 1948년 12월,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내려오면서 고향집에 남아있던 윤동주의 원고와 사진을 가져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발간된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31편의 작품만 게재됐을 뿐이다. 현재 116편이 게재되어있는 증보판의 시편들 중 85편이 윤혜원에 의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인데, 그 85편은 윤동주의 초기와 중기의 주요작품들이다.

 

'윤동주 문학상' 대상을 받은 옌볜 소녀 한국화양. 연세대 4년 장학생으로 뽑혔다. ⓒ 오형범 제공

'윤동주 문학상' 대상을 받은 옌볜 소녀 한국화양. 연세대 4년 장학생으로 뽑혔다. ⓒ 오형범 제공

이들 부부는 두 차례의 심장병 수술(윤혜원)과 뇌수술(오형범)을 받은 상태에서 지난 5월에 옌볜에서 열린 제8회 중국조선족중학생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들 80대 노부부는 8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특히 올해는 '윤동주 문학상' 대상을 받은 옌볜 소녀 한국화(19)양이 연세대학교 인문학부에 합격(수시 2학기 재외국민과 외국인 전형)해 더욱 뜻깊은 한 해였다. 4년 장학생으로 공부하게 된 한국화는 중국교포 4세로 '윤동주 문학상' 대상 수상자에게 연세대가 부여하는 특전의 첫번째 수혜자다.

 

마침 윤동주 90세 생일인 12월 30일에 발표된 한국화양의 소식을 접한 윤혜원·오형범 부부는 "이제 우리 부부가 소망했던 일을 거의 다 이룬 것 같다"면서 "약속을 지켜준 연세대에 감사하며, 한국화양이 윤동주 시인의 모교에서 훌륭한 시인으로 태어나기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혜원·오형범 부부와의 일문일답이다.

 

"살아있다면? 가난한 대학교수였을 가능성이 99%"

 

- 오빠의 90세 생신을 맞은 소감은?
"(윤혜원) 음, 오빠는 여태도 20대 청년인데 동생인 나만 이렇게 '함뿍' 늙었어요.(웃음) 요즘 몸이 아파서 잊고 지냈는데 시드니 우리교회에서 이렇게 큰 생일잔치를 마련해주어 너무 행복합니다. 오빠도 참 좋아할 겁니다."

 

"(오형범) 윤동주 시인 90세 생신을 맞아 두 가지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어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첫째로 국가보훈처가 광복회·독립기념관과 함께 윤동주 시인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것이고, 둘째는 오늘 접한 한국화양의 연세대 4년 장학생 선발 소식입니다. 이보다 좋은 생일선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 윤동주 시인은 참 애석하게도 27년 8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가 갔습니다. 그 분이 아직도 생존해 계신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윤) 우리 3남1녀 중에서 바로 밑에 동생인 나만 살아남았으니까 지금의 내 모습이겠지 뭐(웃음). 그건 농담이고, 곁에서 지켜보았던 오빠의 성격상 20대의 성품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했을 겁니다."

 

"(오) 나도 동감인데요, 그 이유는 윤동주 시인의 사진에서도 나타납니다. 더 없이 선한 인상과 굳게 다문 입술, 다시 말해서 아무 흠결이 없는 90세 노인이면서도 문학적 업적을 크게 이룬 시인 말입니다."

 

- 윤동주 시인이 살아 계시다면 어떤 직업을 가졌을지도 궁금한데요.
"(윤) 오빠가 문학(연희전문)과 영문학(일본 릿교대·도시샤대)를 전공했기 때문에 교수가 됐을 겁니다. 그것도 가난뱅이 교수였을 가능성이 99%(웃음). 실제로 오빠는 돈 버는 일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의대에 가라는 아버지의 강권을 뿌리치고 문학을 전공한 겁니다. 그것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는데…."

 

"(오) 가난할 것이라는 예상은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시만 쓰면서 살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은진중학교 선배들(오형범씨는 윤동주 시인의 은진중학교 후배이다)의 증언에 의하면 윤동주 소년과 윤동주 청년은 오직 시를 쓰고 문학을 연구하는 일에만 골몰했기 때문입니다."

 

중국방문을 앞두고 시드니우리교회 뜰에 나란히 앉은 윤혜원씨와 오형범씨. ⓒ 윤여문

중국방문을 앞두고 시드니우리교회 뜰에 나란히 앉은 윤혜원씨와 오형범씨. ⓒ 윤여문

 

"여자친구도 없던 오빠... 박춘애씨는 마음 속으로만"

 

- 어떤 스타일의 여성과 결혼했을까요?
"(윤) 오빠는 여자친구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타계했어요. 다만 일본 유학 중에 만난 박춘애라는 이름의 여학생 사진을 가져와서 할아버지께 보여드린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좋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여성과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 말고는 어른들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거든요."

 

"(오) 우리가 해방 이후에,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 사후에 박춘애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옌볜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에 청진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성가대에 서있는 박춘애를 보았고, 나중에 함께 식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윤동주 시인이 마음 속으로만 좋아했을 뿐 프로포즈도 못 했답니다."

 

- 지금 두 분의 건강이 아주 안 좋은데 내년에도 옌볜에 다녀올 계획이신가요?

"(윤) 마음이야 굴뚝같지요. 그런데 나는 심장병 수술을 두 번이나 한 상태이고 치매 치료까지 받고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오 장로(남편 오형범씨)님께서도 뇌수술을 받으셨고 암 치료까지 받고 계셔서 올해가 마지막 참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 그 말이 맞습니다. 윤혜원 권사는 지금 여덟 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에 열린 제8회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장에서 2007년이 마지막 참석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어찌됐건 우리 부부가 간여하지 않아도 '윤동주문학상'은 잘 진행될 겁니다."

 

오빠에게 '한점 부끄럼이 없도록', 호주까지 남하한 누이 

 

윤혜원은 젊은 나이에 순절한 오빠의 고결한 이미지에 단 한 점이라도 흠이 될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살았다. 특히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무진 애를 썼다. 윤혜원 부부가 서울-부산-필리핀-호주로 계속 남하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은둔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지난 2005년에 시드니에서 열린 '윤동주 시인 60주기 추모문학제' 이후로 윤혜원은 은둔 대신 오빠의 생애를 증언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특히 사진 속에 담겨있는 과묵한 이미지가 윤동주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많은 에피소드와 함께 증언하여 윤동주 연구가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공했다.

 

윤동주 시인 묘소를 방문한 윤혜원씨와 오형범씨 ⓒ 오형범 제공

윤동주 시인 묘소를 방문한 윤혜원씨와 오형범씨 ⓒ 오형범 제공

'윤동주문학상'은 어떤 상?

중국조선족중학생 '윤동주문학상'은 최근에 작고한 재미동포 현봉학 박사가 설립한 '미중한인우호협회'가 주축이 되어 1999년에 출범했다.

 

1947년부터 미국에 정착한 현봉학 박사는 1984년에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옌볜으로 달려가서 윤동주 시인의 묘소를 단장하는 등 그 이후의 생애를 거의 윤동주 추모사업에 바치다시피 했다.

 

한편 매년 8000여편의 응모작품이 답지하는 '윤동주문학상'은 그 후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사업회, 한국민족교육문화원(전남 광주 소재), 국제라이온스 포항지부 등이 후원단체로 참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단체들은 '윤동주문학상' 비용을 부담하는가 하면 해마다 수상자를 한국으로 초청하여 모국방문의 기회를 부여한다. 특히 연세대학교는 올해부터 대상 수상자를 4년 장학생으로 선발하기로 결정하여 중국동포 청소년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그래서일까. 윤혜원이 20여 년 동안 살고 있는 시드니는 윤동주 연구가들의 순례지가 되다시피 했다. 또한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윤동주 관련 행사들의 소식이 빠짐없이 호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윤동주 시인 63주기를 맞는 2008년에는 시드니에서 '윤동주문학 국제심포지엄'이 열릴 예정이다. 또한 한국·중국·일본·독일(미확인)에 이어서 호주 시드니에도 윤동주 시비가 건립될 예정이다. 윤혜원이 20여 년 동안 살았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윤동주 90세 생일을 맞아 각계에서 보내온 생일축하 메시지다.

 

 

홍길복(시드니 우리교회 목사) "우리가 기일이든, 생일이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윤동주 관련 행사를 갖는 이유는 그를 우리 곁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다. 윤동주의 육신이 아니라 그의 아름다운 생각, 맑은 영혼, 하늘을 향한 거룩함, 진리를 향한 열정, 인간을 향한 순수함, 그리고 민족이나 나라를 뛰어넘는 우주적, 보편적 양심이 지금도 우리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해마다 윤동주 생일잔치를 열고 추모행사를 갖는 것이다."

 

김오(시인, 호주한인문인협회 회장) "윤동주 시인 50주기와 60주기 시드니추모제를 호주한인문인협회에서 주관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 특히 윤동주의 시편들을 낭송하면서, 그처럼 시와 삶이 일치하는 시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하기도 했다. 시대가 어두워질수록 윤동주의 맑은 영혼이 더욱 그리워진다."

 

안나 비숍(Anna Bishop. 호주에 거주하는 크로아티아 출신 시인) "1997년 '시드니 봄 작가축제(Sydney Spring Writers' Festival)'에서 윤동주 시편들을 접하고 나서 크게 감동받았다. 그 시들을 번역해서 크로아티아에 보냈더니 거기 시인들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특히 '서시'와 '자화상'에 담긴 영혼은 너무 고와서 슬프기까지 했다. 2008년에 시드니에서 열릴 윤동주문학 국제심포지엄이 기다려진다는 말로 90세 생일 축하메시지를 가름한다."

 

호주한인문인협회 회원들이 주관한 윤동주 시인 60주기 시드니 행사. ⓒ 윤여문

호주한인문인협회 회원들이 주관한 윤동주 시인 60주기 시드니 행사. ⓒ 윤여문

 

 
#윤동주 #윤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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