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의 첫 글자인 '유(惟)'자광개토태왕비문의 첫자인 '생각할 유(惟)'자를 시각했다.
송영한
태왕비에 미쳐 산 전홍규 전각가가 비문 새겨 태왕비에 새겨진 글자는 총 1804자, 이중 판독이 가능한 1775자를 새길 한국 금석문 각자예술 연구원의 향석(香石) 전홍규(59) 원장은 "이번 태왕비 복원의 고비마다 태왕의 영령이 도와주셨음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30여 년 전까지 붓을 들고 서예의 길을 가던 서예가였던 그는 70년대 중반 태왕비의 위조 문제로 동양 삼국이 들끓자 붓 대신 정을 잡고 초정 권창윤 선생께 사사 받아 금석학의 외길을 걸어왔다.
전 원장은 20여 년 전부터 실물크기의 태왕비를 복원하기로 작정하고 백방으로 돌을 구해봤지만 마땅한 돌을 구하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돌 구하기에 골몰했던지, 한 번은 자다가 현몽해 남한강가에서 태왕비와 똑같은 모양의 한자 남짓한 청오석을 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100여개의 태왕비를 복원한 전 원장은 돌가루와 시멘트를 섞어 실물크기의 태왕비를 만들기도 했다. MBC <태왕사신기> 마지막 회에 나온 태왕비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전 원장은 전국 각 청오석 채석장마다 태왕비의 실물크기만 한 돌을 찾아 헤매 인 지 20여 년 만에 올해 초 보령의 한 채석장에서 100여 톤의 청오석이 발견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돌을 인수하자마자 구리시에서 "태왕비를 복원하겠다"는 부탁이 왔다니, 태왕의 영령이 도와주셨다는 말도 무리는 아닌 듯싶다.
이윽고 자문위원회의 고증을 거쳐 100여 톤의 원석을 이 고장에 사는 중요무형문화재 이재순 석장(石匠)이 다듬고 다듬어 50여 톤의 비신(碑身)을 완성했다. 집안시에 있는 원 비석의 재질은 응회암으로 같은 화강암 계통이지만 밀도가 청오석보다 낮아 10여 톤의 무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