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부침개 부치며 새해 소원 빌었어요

가족들의 조촐한 송년파티를 위한 음식

등록 2007.12.31 10:21수정 2007.12.3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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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물러나 있던 동장군이 다시 찾아와 그 위세를 떨치는 오늘(30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화천은 수은주가 영하 12도를 가리킨다. 세상이 온통 꽁꽁 얼어 붙어 있는 듯한 추운 날씨에 난로가에 앉아 적막한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남편과 내일이면 올해가 저무는데 가족들끼리 조촐한 송년파티를 열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했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가족들이래야 대학생 딸아이는 지방에 있어서 올 수도 없고 아들과 세 식구이지만, 그래도 가는해를 보내며 아쉬움도 달래고 새해를 맞는 새로운 각오도 서로 다지는 시간을 마련하는데 맛있는 음식은 저절로 따라 주어야 할 것 같아 메뉴를 궁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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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부침과 전병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준비한다 ⓒ 안부섭

메밀부침과 전병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준비한다 ⓒ 안부섭
 
추운 날씨에 시장 보러 나가는 것도 망설여져서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무얼 만들까 궁리하다가, 체중때문에 고민하는 대학생 아들의 부담도 덜어줄 겸 메밀모듬 부침을 부치기로 결정했다.
 
마침 냉장고엔 국거리로 준비해 놓았던 얼가리 배추와 계절의 시계를 봄으로 돌려놓을 듯 봄내음이 물씬 나는 미나리가 있어서 재료 준비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당근과 양파는 채썰어서 센불에 빨리 볶아내고 미나리는 깨끗이 씻어 잎부분은 잘라낸다. 얼가리 배추는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빨리 데쳐내 참기름과 소금으로 조물조물 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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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반죽은 부치기 30분전에 미리 풀어 놓는다 ⓒ 안부섭

메밀반죽은 부치기 30분전에 미리 풀어 놓는다 ⓒ 안부섭
 
메밀가루 5컵에 물 7컵을 부어 부치기 30분 전에 거품기를 이용해 덩어리지지 않게 미리 풀어 놓는다. 메밀부침은 주로 명절때 부쳐 먹었는데 오늘은 미리 명절 분위기 느끼며 부쳐 보기로 했다. 메밀은 비타민D와 비타민B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고 당뇨병 환자에게 특히 효능이 좋다고 한다. 나도 건강을 생각해서 메밀음식을 자주 먹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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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우를 깍아 기름칠 도구로 쓴다 ⓒ 안부섭

무우를 깍아 기름칠 도구로 쓴다 ⓒ 안부섭
 
메밀부침은 들기름으로 부쳐야 더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돌아가신 시어머님께서 명절 때 부침개 종류를 부칠 땐 으레 무를 깎아 기름칠 도구로 쓰셨다. 기름을 적당하게 둘러 쓸 수 있고 낭비도 막을 수 있는 무를 쓰며 옛날 어른들의 지혜에 존경심을 드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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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와 배추를 나란히 늘어놓는다 ⓒ 안부섭

미나리와 배추를 나란히 늘어놓는다 ⓒ 안부섭
 
추운 겨울이지만 시각적으로 봄내음을 느낄 수 있는 미나리와 배추를 나란히 메밀반죽 위에 얹어 예쁘게 장식한다. 반죽의 농도가 잘 맞아야 뒤집을 때 깨질 염려가 없다. 앞면이 익으면 조심스럽게 뒤집는다. 초록으로 신선함을 느끼며 한 장 두장 부치다 보면 손끝으로 즐거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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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의 화려함과 미나리의 산뜻함이 어우러지는 전병 ⓒ 안부섭

당근의 화려함과 미나리의 산뜻함이 어우러지는 전병 ⓒ 안부섭
 
이번엔 전병을 부쳐본다. 당근과 양파, 미나리를 김밥 싸듯이 가지런히 늘어 놓으며 앞면이 익으면 돌돌 말아가며 익힌다. 전병에 들어가는 재료는 다른 야채들을 이용해서도 부치면 다양한 맛을 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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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처럼 돌돌 말아가며 부친다 ⓒ 안부섭

김밥처럼 돌돌 말아가며 부친다 ⓒ 안부섭
 
뒤집개를 이용해 뒤집지만 그래도 손이 가야만 하는데 부침이 뜨거워서 조심스럽게 돌돌 말아가며 익힌다. 마치 김밥 싸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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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색깔이 더 돋보이는 전병 ⓒ 안부섭

당근색깔이 더 돋보이는 전병 ⓒ 안부섭
 
미나리, 양파도 함께 넣었는데 유난히 당근색깔이 도드라져 보인다. 메밀가루일 때는 색깔이 하얗지만 부침으로 해놓으면 예쁜 색깔은 아니다. 하지만 야채와 어우러진 전병은 식욕을 불러 일으켜 젓가락이 부지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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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같은 부침개 ⓒ 안부섭

보름달 같은 부침개 ⓒ 안부섭
 
부침개를 오래 부치다 보면 기름냄새 때문에 머리가 띵하게 아파 올 수도 있다. 그럴 땐 가족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부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금방 부쳐낼 수 있다. 부침개가 마치 보름달 같이 예쁘다고 했더니 지켜보던 남편이 정말 그런 것 같다고 맞장구 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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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개 부치느라 고생했으니 기념촬영 하라고 남편이 한장 찍어준다 ⓒ 안부섭

부침개 부치느라 고생했으니 기념촬영 하라고 남편이 한장 찍어준다 ⓒ 안부섭
가족들끼리 먹을 부침개라 양이 많지 않았는데 다 부치고 나니까 애썼다고 남편이 "부침개 사진만 찍지 말고 당신도 한 장 찍어봐요"라고 하면서 굳이 식탁에 앉힌다. 나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봉숭아 물들인 손톱을 내보이며 웃어 보였다.
 
메밀부침을 앞에 놓고 세 식구가 둘러앉아 내년엔 둥근 부침개 같이 모든 일이 둥글둥글 잘 풀리길 바라고, 속이 꽉찬 전병같이 알차고 보람 있게 서로의 생활을 해나가면 좋을 것 같다고 덕담을 주고 받으며 바깥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한 가지 음식이라도 따뜻이 마련해 의미를 부여하며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힘을 붇돋워 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오늘이 아닌가 생각한다.
#메밀부침과 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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