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쁜 상하이의 야경은 '손님접대용'?

[해외리포트] 관광객 위해 연출된 조명... 많은 뒷골목에는 가로등 조차 없어

등록 2008.01.02 08:48수정 2008.01.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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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세기 초반 지어진 상하이의 옛 조계지 와이탄(外灘)의 서양 건축물은 밤에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 와이탄 건축물은 상하이에서 최초로 야간 조명시설이 갖춰졌다.

20세기 초반 지어진 상하이의 옛 조계지 와이탄(外灘)의 서양 건축물은 밤에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 와이탄 건축물은 상하이에서 최초로 야간 조명시설이 갖춰졌다. ⓒ 모종혁



일본의 유명한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미즈시마 나오키는 중국에서 열리는 자선콘서트의 일을 맡아 상하이를 방문한다. 오랜 연인이자 동료인 여자친구와의 갈등으로 헤어질 위기에 처한 미즈시마. 그는 답답한 마음에 일이 끝난 저녁 홀로 나와 상하이 거리를 거닌다.

여권과 지갑을 모두 호텔에 두고 나온 채 밤거리를 걷던 미즈시마는 여자 기사 린시가 모는 택시에 치일 뻔 한다. 린시는 사과의 뜻으로 미즈시마를 태우고 상하이의 밤거리를 구경시켜 주는데….

일본 배우 모토키 마사히로와 중국 톱스타 자오웨이(趙薇)가 주연한 중·일 합작영화 <상하이의 밤(夜上海)>은 로맨틱 코미디의 정형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다.

<상하이의 밤>은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에 말도 통하지 않는 주인공들이 티격태격 다투다 애틋한 사랑을 키워나가는 남녀의 로맨스를 깔끔하게 그려나갔다. 그 흔한 키스신도 없고 대사도 담백하다.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화려한 상하이 야경을 배경으로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다.

사랑을 이어주는 상하이 야경, 그런데 좀 부담스러워

이 영화에서 상하이의 야경과 밤거리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싹틔워주고 이어주는 공간이다. 하지만 감각적인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야경은 점차 관광 홍보물의 배경처럼 짙어져 보는 관객에게 부담을 준다. 무리수를 두지 않는 일류 배우들의 연기마저 과장스러울 정도로 눈부신 밤거리에 종종 묻혀버린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상하이의 멋진 밤거리와 화려한 야경은 철저히 연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영국 런던 등의 야경은 야근하는 사람들이 사무실에 켜놓은 실내등이나 시민의 안전을 위해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이 어우러진 것. 프랑스 파리 세느강변의 야경은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조명 속에 주변 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에 비해 상하이의 야간 조명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중국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도시 상하이는 21세기 슈퍼파워 중국의 발전상을 과시한다. '아시아의 빛나는 보석(東方明珠·둥팡밍주)'인 상하이를 뽐내기 위해 중심 거리, 주요 고층빌딩, 황푸(黃浦)강 일부 구간은 밤마다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조명이 수를 놓는다.

a  상하이의 번화한 상업지인 쉬자후이는 현대식 건물과 화려한 밤거리가 조화를 이룬다.

상하이의 번화한 상업지인 쉬자후이는 현대식 건물과 화려한 밤거리가 조화를 이룬다. ⓒ 모종혁


상하이 야경, 시작은 치안유지? 

오늘날 세계 대도시들은 야간 조명을 밝게 꾸미는 데 힘쓰고 있다. 도시 조명의 시작은 17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수도 파리의 도로와 인접한 건물에 밤새도록 등불을 켜놓도록 명령했다.

경찰이 밤거리 치안 장악을 가능하도록 취한 이 조치는 결과적으로 파리의 어두운 밤거리를 밝게 했다. 건물에서 스며 나오는 불빛과 더불어 가로등은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하고 화려한 느낌까지 주었다.

치안의 편리성을 위해 도시를 밝혔던 루이 14세의 조치는 뜻하지 않게 파리를 밝고 화려하게 만들어 유럽의 중심 도시로 발전시켰다. '빛나는 파리'는 전 유럽인의 관심마저 불러일으켜 루이 14세의 통치기를 '빛나는 시대'로까지 불리게 했다.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 유럽의 구 사회주의 국가들이었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체코의 프라하는 어둡고 칙칙한 도시 분위기를 가리고 주민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밤거리를 화려하게 밝혔다. 화려한 야경 속의 주민들은 밤에도 사생활의 비밀이란 없었다.

a  난징루 보행거리는 서양식 건물과 현란한 네온사인이 조화를 이루면서 찾는 관광객을 감탄시킨다.

난징루 보행거리는 서양식 건물과 현란한 네온사인이 조화를 이루면서 찾는 관광객을 감탄시킨다. ⓒ 모종혁

상하이가 야간 조명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1989년이었다. 같은 해 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중국 대륙을 뜨겁게 달구었다. 상하이도 시위대의 거대한 대오가 거리에 물결 쳤다.

6월 4일 중국 수도인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는 탱크를 앞세운 인민해방군이 농성 중인 인민을 학살하는 만행이 일어났다. 상하이는 당시 장쩌민(江澤民) 시당 총서기와 주룽지(朱鎔基) 시장이 시내에 농성 중인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피 하나 흘리지 않은 채 정국을 안정시켰다.

장쩌민과 주롱지가 베이징으로 영전되어 가기 전에 내린 조치가 바로 야간 조명시설 설치안이다. 황푸(黃浦)강 와이탄(外灘) 주변 건축물에 조명시설을 갖추고 난징루(南京路) 보행거리에 네온사인을 설치한 것.

장과 주가 상하이 야간 조명에 신경을 쓴 이유는 명확치 않지만, 톈안먼사건에 억눌린 베이징과 달리 상하이는 도시의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 이래 중국 개혁개방정책이 가속도를 내면서 상하이 야간 조명사업도 발전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도심을 중심으로 쉬자후이(徐家匯)·헝산루(衡山路)·신화루(新華路)·후이하이루(淮海路)·상하이역 부근 등 약 40㎞ 구간에 조명이 설치됐다. 2000년까지는 푸둥(浦東)신구를 비롯, 부심 11개 지역으로까지 확대됐다.

"사람없어도 실내등을 켜라"... 왜? 관광객 보기 좋으니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하이 야간 조명은 철저히 시스템화·산업화 되었다. 상하이시는 여러 부서가 야간 조명을 통합관리하고 있다. 상하이 야간 조명은 '3+19'로 크게 나뉘는데, 황푸강, 남징루·후이하이루, 런민(人民)광장 등 3개의 시급 조명라인과 19개의 구급 조명라인을 두고 있다.

도시이미지환경위생관리국이 도심과 부심 20여 개의 야간 조명을 총괄하고, 녹화관리국은 주요 도로 가로등을 관리한다. 가로등 관리소는 구 단위의 가로등을 따로 관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관리 체계 뿐만 아니다. 2005년부터 상하이시는 LED(발광 다이오드), OLED(유기전기 발광 다이오드) 등 고효율 조명시스템을 점차 도입하고 있다. 와이탄 조명은 전자감응 고주파 방전램프(HID Lamp)로 불을 밝히고 있고, 푸둥의 명물인 460m 둥팡밍주탑은 LED 형광으로 교체했다. 상하이시는 총 길이 100㎞, 30여 개의 주요 조명라인을 구축했다.

a  황푸강을 오가는 유람선과 함께 푸둥신구의 고층건물군이 그리는 야경은 상하이가 자랑하는 야경의 백미이다.

황푸강을 오가는 유람선과 함께 푸둥신구의 고층건물군이 그리는 야경은 상하이가 자랑하는 야경의 백미이다. ⓒ 모종혁


상하이를 빛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당국의 노력은 법률로 뒷받침되고 있다.

2001년 9월 상하이시는 새로 짓는 상업용 빌딩에 건물 내부에서 외부로 발광하는 조명 방식을 강제 도입토록 하는 규정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2004년 9월에는 '도시장식조명에 관한 규범'을 공포하여 조명라인 지역의 건물 내부에 사람이 있든 없든 정해진 시간 내에는 실내등을 밝히고 외부 장식등을 설치토록 했다. 목적은 오직 상하이의 국제적 이미지 제고와 관광객 유치라는 대명제를 위해서다.

상하이시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됐다. 상하이를 찾은 관광객은 화려한 야경에 금세 매료된다. 황푸강 와이탄에서 만난 창린은 "상하이는 밤에 더욱 빛난다"고 강조했다. 푸젠(福建)성에서 온 창은 "벌써 3번째 방문인데 상하이 야경이 주는 느낌은 볼 때마다 새롭다"면서 "황푸강을 오가는 유람선과 함께 푸둥신구의 고층건물군이 그리는 야경은 천하제일"이라고 말했다.

한 한국인 여성 관광객은 "앞에는 웅장한 푸둥의 스카이라인이 연출하는 야경이, 뒤로는 1900년대 초반 지워진 고딕·바로크·르네상스식 서양 건축물이 펼쳐져 너무 멋있다"면서 "오직 와이탄에서 볼 수 있는 예술 작품과 같은 야경"이라고 감탄했다.

상하이 야경의 어두운 그림자

상하이 야경은 분명 찾는 이를 감탄시킨다. 시 규정에 따라 각기 달리 설계된 건축물에서 발산되는 불빛과 더불어 상하이의 거리 조명은 서울이나 아시아의 어느 도시보다 화려하다.

그러나 상하이 야경은 철저한 통제를 통해 연출된 것이다. 시민들의 민의와는 전혀 상관없이 통치자의 의지와 결정만이 담겨져 있다. 화려한 상하이 밤거리는 정부 관료의 치적을 보여주는 전시물일 뿐이다. '아시아의 빛나는 보석'을 만들기 위해 고층건물은 화려한 야경의 일개 배우가 되어 밤마다 불빛을 뿜어낸다.

상하이 토박이 우창(28)은 "적지않은 시민들은 전시효과만 노린 야간 조명 때문에 막대한 전력이 낭비된다고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우는 "시정부는 야경이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고 선전하지만 매년 여름이면 전력난에 가동을 중단하는 공장이 속출하는데도 야경은 변함없이 휘황찬란했다"고 비판했다.

덩유에(29·여)도 "상하이 야경이 뉴욕의 밤거리를 능가한다고 하지만 가로등도 없는 뒷골목이 무지기수다"면서 "사람 하나 없는 건물 안에 모두 불을 켜놓는데 낭비하는 돈을 농촌지역에 투자하면 농민자녀의 교육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a  쉬자후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민 주택가의 골목길에는 변변한 가로등조차 없다. 보행자는 허름한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따라 힘들게 오간다.

쉬자후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민 주택가의 골목길에는 변변한 가로등조차 없다. 보행자는 허름한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따라 힘들게 오간다. ⓒ 모종혁


상하이시도 일부 언론의 지적과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조명시설을 친환경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다. 여름 최고 기온이 35℃가 넘는 날에는 고층건물의 실내등과 외부 장식등을 소등하기로 방침을 개정했다. 가로등과 건물 장식등의 전등을 전력이 적게 소요되는 고효율 전등으로 바꾸고 있다.

상하이시 도시이미지환경위생관리국은 "상하이 야간 조명의 전력부하량은 3만㎾로 시 전체 전력소모량의 0.2%에 불과하다"며 고질적인 전력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점을 강조했다.

세계 최대·최고를 향한 중국의 움직임처럼 상하이의 야간 조명 정책도 흔들림이 없을 전망이다. 상하이시는 엑스포까지 야간 조명라인을 총 길이 140㎞로 늘릴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3000여 개인 야간 조명 지정 건물도 확대하려고 한다.

상하이 시정부의 주장처럼 야간 조명이 '전기먹는 하마'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숨길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화려한 야경과 무관하게 소외당한 지역과 사람들이다.

상하이의 많은 골목길은 지금도 변변한 가로등조차 없다. 휘황찬란한 밤거리 속에 무수히 많은 상하이 빈민들은 최저 생계선 이하의 생활을 살고 있다. 도시의 위상과 국제적 이미지 제고보다도 시민들의 편의 증대와 복지 증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a  화려한 황푸강 야경은 쓰레기가 떠다니고 오염된 강물을 가리기 위한 장식품에 불과하다. 밤의 황푸강은 낮보다 더욱 짙고 더러운 황톳물이 흘러간다.

화려한 황푸강 야경은 쓰레기가 떠다니고 오염된 강물을 가리기 위한 장식품에 불과하다. 밤의 황푸강은 낮보다 더욱 짙고 더러운 황톳물이 흘러간다. ⓒ 모종혁


a  서민 주택가가 몰려있는 톈수이루(天水路)의 한 거리. 관광객이 찾지 않는 곳에는 어떠한 조명 시설의 혜택이 없다.

서민 주택가가 몰려있는 톈수이루(天水路)의 한 거리. 관광객이 찾지 않는 곳에는 어떠한 조명 시설의 혜택이 없다. ⓒ 모종혁

#야경 #조명 #상하이 #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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