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1일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2008년도 시무식에 입장하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나?
"기득권 집단의 이익에 기초한 보수정부다. '신'보수정부도 아니다. '신'자를 붙일 만큼 (올드에 비해) 새로운 내용을 구체화한 게 없다. 그러니 '신보수'라고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스타일과 레토릭만으로 '신'세력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중심세력은 우리 사회의 상층, 기득권집단이다. 좀 달라졌다면 거기에 젊은 신진 엘리트를 결합하고 있다는 정도다. 그런데 인수위 구성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인 것 같다. 세대교체도 아니다.
사실 새롭다고 이야기되는 측면도 잘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96년 선거에서 신한국당은 세대교체, 인물교체를 많이 했다. 언론인, 법률가, 국책연구기관 등의 전문가 등을 꾸준히 영입했다. 해외유학파도 많이 들어갔다. 이렇게 충원을 계속 했다. 2004년에도 교체를 많이 했다. 그런 정도의 변화는 이미 있어왔다."
-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개헌이 가능한 과반 의석 수를 얻을 것이란 전망이 있다. 그 예상이 현실화된다면 한나라당 독재, 이명박 독재시대가 열린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 같은데."그 가능성은 제로라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는 어느 누구도 독점이 안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87년체제를 설명할 때 하는 얘기인데, 보수세력이 기업·학교·대학·언론·관료 등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 반대편도 그에 저항할 수 있는 에너지와 조건은 갖고 있다. 1990년 3당 합당이 이루어지자 곧바로 이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조직되었다. 5월정국, 분신정국은 이때의 양상을 가리키는 용어들이다. 3당 합당으로 집권당이 70% 이상을 독점했지만 사회적 저항을 거치면서 1992년 선거에서는 다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일당우위체제의 가능성은 한국정치의 기본 구조가 변화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기에 다당체제와 양당체제의 순환적 반복 과정에서 일당우위체제의 시도는 늘 좌절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도 나올 수 있었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대선에 뛰어들어 정치를 유동적으로 만들었다.
사실 지금 구도에서도 한나라당이 의석을 독점하게 된다 하다라도 한나라당의 안정적 관리나 유지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등장이 보여준 확실한 지표는 보수가 분당이 되어도 독자생존이 가능한 사회적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세력이든 누구든 그 지표를 확실히 기억할 것이다. 한국 정당체제의 좌-우 어느 측면을 보아도 안정적 일당우위체제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명박 정부가 안정화될 수 없는 이유- 10년 만에 보수파로 정권이 교체됐는데,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민주주의의 첫 번째 단계는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형태는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야당이 집권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등장으로 첫 번째 단계는 형성됐다. 권위주의 대체세력이 집권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두 번째 단계는 구권위주의세력이 민주적 방법으로 권력을 복원하는 것이다. 이번 결과는 바로 이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전환적 모멘트였다. 영국이나 미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들에서 이 과정은 파시즘을 동반하면서 폭력적으로 진행되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좋은 조건 아래에서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한국정치는 두 번의 거시적 충격 위에 서 있다. 하나는 20년 전의 민주화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충격이다. 지금 20~40대의 유권자는 이런 거시 변화가 만들어낸 유권자들이다. 이들은 매우 강한 변화지향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로 시작되게 될 향후 보수정부는 안정적으로 체제를 관리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유권자의 조건도 그렇지만, 그들은 무능력하고, 이념적으로 개방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보수정부의 기반이 될 두 세력 즉, 국가 안 경제관료들과 국가 밖 재벌 등 기득집단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은 많은 사람들이 유능하다고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무능력을 그 기본 특징으로 한다. 그들은 정치변화로부터 자율적인 경제관리 능력을 보여준 바가 없다. 70년대 말 한국을 마이너스 성장으로 이끌었고, IMF 위기가 오고 있는 것을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던 존재들이다. 그들은 군부권위주의에 기생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스스로의 직업정신을 조직하려 하기보다 재벌과 외국자본, 거대 로펌의 이익을 실현해주면서 자기이익을 챙겼다.
국가 밖 보수세력들도 마찬가지다. 재벌 역시 무능력하다. 최근 삼성의 사례가 보여주듯 그들은 공정한 시장경쟁에서 성공했다기보다 불법로비와 부정한 방법으로 일관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합리화의 전망조차 세울 수 없다. 거대 사학집단이나 거대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는 힘의 원천은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인 억지들이다. 유능함과 무능함의 기준은 외부 영향력의 개입없이 공정한 게임에서 스스로의 에너지만으로 성공하는 것일텐데 한국의 보수세력에겐 그런 실력이 없다.
이들에게 실력이 있다면 이념적으로 개방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안 되니 사회를 폭넓게 통할할 수 있는 의식적 계기는 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안팎의 빠른 사회변화에 대응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이념적 개방성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들의 언어에는 새로운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한국 유권자의 보수화와 정당체제의 보수안정화를 말하는 예측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정치는 보수정부 아래에서도 여전히 불안정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기회는 많다고 본다.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요구를 어떻게 재조직하느냐에 따라 한국정치의 변화 가능성은 열려 있다. 유권자는 충분히 준비돼 있다. 정치세력이 거기에 반응할 만한 조직이 안돼 있어 문제다."
- 이명박 정부의 안정화에 부정적인데 그 반대의견도 있다. 즉,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것이라는 의견이다. "지도자와 정치세력이 유능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유권자의 조건이나 정치세력의 차원에서 볼 때 한국정치를 그들의 생각대로 재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념적으로 개방적일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이념적 내용이라곤 '오로지 경제'라는 것 정도다. 경제가 모든 체제의 운영원리를 압도할 때, 그것은 일종의 경제제국주의이고 경제전체주의로 퇴락하기 쉽다. 당연히 다양한 사회갈등은 표출되기 어렵다. 갈등이 표출되고 드러나고 경쟁하는 조건 위에서만 안정적 사회통합은 가능하다.
이것은 민주주의에서의 일종의 물리학적 법칙과 같은 것이다. 사회구성원의 열망을 경제바로세우기라는 하나의 목표로 응집해낼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를 거부하지 않는 한 현실적이지 않다. 다시 말하건대, 이념적으로 개방적이지 못하면 자율적 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그러면 어떤 체제도 안정화될 수 없다. 지금 한국사회 보수세력 어디를 둘러봐도 그럴 실력을 느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