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불의 심판 - 70회

조국의 부름 - 5

등록 2008.01.03 12:11수정 2008.01.0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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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인질구출이 목적이었다.

 

중동의 모처에 미국인 여섯 명이 이슬람해방전사 소속원에 의해 인질로 억류되어 있었다. 인질범들은 미국에 수감 중인 전사들을 조속히 석방하라며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당연히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국가의 역할 중에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귀중한 일이 어디 있느냐며 언론은 연일 연방정부에 대고 인질범과의 협상을 촉구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테러조직과는 일체 타협도 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대의명분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인질범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순간 더 많은 미국인들이 위험에 처해진다는 논리였다. 그러자 이슬람해방전사는 인질 한 명을 무참히 살해하여 미 대사관 앞으로 시신을 보냈다. 

 

미국인들의 분노는 팽배해졌다. 여론은 인질범들의 범죄행위보다도 백악관의 공허한 대의명분을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자국민의 고귀한 생명이 인질범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되고 있는 마당에 무슨 얼어 죽을 대의 타령이냐는 것이었다.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자 백악관에선 마지못한 듯 인질범과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천명했다. 그리고 현지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유화적인 제스처를 언론에 보이느라 안간힘을 쏟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은밀히 버뮤다에 작전을 내려 보냈다.

 

대원들은 인질이 억류된 곳과 구조가 흡사한 건물에서 수도 없이 작전을 예행했다. 그리고 작전개시 하루 전에야 비로소 현지로 출발했다. 군용 수송기를 이용한, 야음을 틈탄 비밀리의 이동이었다. 처음으로 작전에 참가하는 차운형과 원용철은 긴장감에 젖어 내내 말문을 닫고 있었다.

 

“작전에 나가고 싶어 안달이더니?”

 

보리에스가 짓궂게 말을 걸어도 둘은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었다. 중대장이 다시 한 번 작전 개요를 설명했다. 대원들이 귀가 따갑도록 들은 내용이었다.

 

“건물 이층에 인질들이 모두 억류되어 있다. 그리고 적들은 일, 이층에 각각 분산되어 있다. 인질은 다섯 명, 적은 열 명. 3소대가 옥상에서 2층 창문으로 침투할 준비를 하는 동안, 1소대는 이층을 공략하고 2소대는 일층을 맡는다. 4소대는 대기할 것. 적이 먼저 총격을 가하지 않는 한 2소대에서 먼저 사격하는 일은 없도록 할 것. 특히 인질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도록.”

 

그리고 중대장은 워싱턴에서 날아온 특사가 측면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슬람해방전사 고위인사와 제3의 장소에서 협상을 벌이는데, 작전 개시까지 시간을 끌며 인질범들의 주의를 흩트려 놓는다는 것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려 사위가 고요해지자 드디어 중대장이 작전 개시 명령을 내렸다. 먼저 3소대가 건물 뒤편으로 이동하여 옥상으로의 잠입을 시도했고, 1소대와 2소대는 서로 간발의 차이를 두고 그 뒤를 따랐다. 건물 안은 알전구가 드문드문 켜진 채 아주 조용했다. 인질극을 벌인 지 한 달이 넘다보니 인질들뿐만 아니라 범인들도 매우 지친 것 같았다.

 

간간이 아랍어로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차운형과 원용철은 보리에스를 따라 이층 계단을 올랐다. 둘은 인기척만 나면 가차 없이 사격을 가하려고 방아쇠에 걸어놓은 검지에 잔뜩 힘을 넣고 있었다.

 

1소대가 막 이층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아래층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2소대가 적과 조우한 모양이었다. 곧바로 2소대의 응사가 이어졌고, 인질을 감시하던 범인 두 명이 아래층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문을 삐걱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보리에스의 총구에서 불이 뿜었다. 차운형과 원용철도 얼떨결에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범인 둘이 총 한번 쏘아보지 못하고 벌집이 된 채 튕겨 나갔다. 소대원들이 복도에 흩어져 엄호하는 가운데 세 사람은 범인들이 나왔던 문을 걷어차고 총구만 들이댄 채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인질들이 여기 있다. 사격을 중지하라! 인질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즉각 사격을 중지하라!”

 

범인들이 안에서 소리쳤다. 아랍 억양이 강하게 섞이긴 했으나 비교적 또렷한 영어발음이었다. 셋은 사격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바리케이드 삼아 엎어놓은 탁자 뒤에서 겁에 질린 인질 두 명의 모습이 천천히 나타났다. 금발의 백인 여성과 중년의 흑인 남성이었다. 그들 뒤에 얼굴을 반쯤 숨긴 인질범 둘이 있었다. 흑인 남성의 목을 팔로 옭아 쥔 범인은 소총의 총구를 인질의 턱 밑에 찔러 놓은 상태였고, 백인 여성을 맡은 범인은 그녀의 치렁한 금발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은 채 권총으로 관자놀이를 겨누고 있었다.

 

“개새끼들, 협상하자고 해 놓고선 기습을 해?”

 

백인 여성을 잡은 범인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녀의 머리를 권총으로 내리쳤다. 그녀가 사색이 되어 떨고 있었다. 보리에스는 인질범을 향해 총을 겨누고 천천히 실내로 걸어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차운형과 원용철도 살그머니 발을 들여놓았다.

 

“그 자리에 서!”

 

권총을 든 인질범이 금발을 확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백인 여성의 고개가 힘없이 꺾였다. 보리에스가 인질범을 쏘아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총 내려!”

 

다시 한 번 인질범이 소리쳤으나 보리에스는 꿈쩍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콱, 총 안 내려?”

 

인질범이 백인 여성의 관자놀이를 총구로 쿡쿡 쑤시며 셋을 위협하는 동안 3소대원 세 명이 레펠을 이용하여 창문을 박차고 날아들었다. 인질범들이 순간 당황한 기색으로 머리를 돌리는 틈을 타서 보리에스가 방아쇠를 당겼다. 동시에 3소대원들도 거침없이 사격을 가했다.

 

작전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비록 인질 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3소대원 하나가 부상을 당했지만 인질범들을 전원 사살한 것은 상당한 전과였다. 중대장이 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했고, 대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중대장이 인질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잖아요?”

 

자축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한 원용철이 볼멘소리로 보리에스에게 항의했다.

 

“그런데?”

 

보리에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되물었다.

 

“인질의 머리에 권총이 겨눠져 있는데도 사격을 해버리면 인질이야 죽든 말든 알 바 아니란 거잖아요!”

 

“그게 최선을 다한 거야. 아닌 말로 인질의 안전까지 의무적으로 책임지라는 건 작전을 하지 말란 소리나 마찬가지야. 인질의 안전을 그렇게 염려한다면 버뮤다에 작전을 걸 게 아니라 차라리 협상 테이블에서 모든 걸 끝내야지.”

 

보리에스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2008.01.03 12:11 ⓒ 2008 OhmyNews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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