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불의 심판 - 73회

불의 심판 - 2

등록 2008.01.08 10:31수정 2008.01.0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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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교의 교리는 여느 성경과 다름없었다. 기독교에 여러 분파가 있는 건 성경을 놓고 서로들 해석상에 이견이 있기 때문인데 창세교는 그런 이견으로 태동한 게 아니었다. 성경과는 무관하게 기존교회가 세속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기존교회에선 주님보다는 교회가, 주님의 말씀보다는 목회자의 설교가 우선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객이 전도된 곳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있을 수 없다며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바로 창세교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창세교의 지향점은 종교개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인철이 성령의 발현으로 듣게 된 요한계시록에도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다.

 

요한계시록이란 기독교 박해가 심했던 로마 도미시안 황제 말기에 복음을 전파하다가 체포되어 밧모 섬에 유배를 가게 된 사도 요한이 어느 주일날 성령의 감동으로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고, 그때 본 계시를 주님의 명령에 따라 기록하게 된 것이다. 흔히 말세 편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차 오게 될 주님의 심판과 구원과 천국을 보여주는데 창세교에선 요한계시록을 ‘다시창세’편으로 부르며 성경 가운데 최고로 여기고 있었다.

 

이인철은 새로운 종교에 걸맞은 호칭이라며 스스로를 교주(敎主)가 아닌 교수(敎首)라 부르고 신도들을 성도(聖徒)라고 불렀다. 그리고 루터의 ‘만인 사제설’에 근거하여 자신도 작업복을 입고 울력에 참가했다. 창세교의 성도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점심때까지는 교수와 함께 울력을 하고 오후엔 교수의 설교를 들었다. 또한 저녁엔 기도에 정진함으로서 요한계시록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심판을 적극적으로 기다렸다.

 

“한 마디로 종말론을 내세우는 종교군요?”

 

차운형의 질문에 김성호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는 계속해서 한형우가 왜 부자의 연을 끊게 되었는지 말하려고 했으나 박만규가 큰 소리로 인사하면서 들어오는 바람에 말문을 닫고 말았다.

 

“반갑습니다!”

 

박만규가 들어서자 약속이나 한 듯 요원들과 윤명오 본부장이 거의 동시에 출근했다. 김성호는 요원들에게 차운형을 소개시켜 주었다. 윤명오가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점심 때 단단히 한턱내겠다고 공언했다. 폭탄주를 동원해 화끈하게 상견례를 하자는 것이었다.

 

조회 시간에 차운형은 이미 수사본부 요원들에게 알려져 있는 3138군 중령이라고만 자신을 짧게 소개했다. 그러자 윤명오를 비롯한 요원들이 자못 궁금해 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막상 차운형의 신상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차운형이 좌중의 관심을 돌리려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칠 년 전에 찍은 원용철의 사진입니다. 변장에 능해서 썩 쓸모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눈 여겨 봐두시죠.”

 

윤명오와 요원들이 사진을 돌려가며 유심히 보았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받아든 김성호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각진 얼굴에 더부룩한 구레나룻이 무척 인상적이군요. 꼭 거울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잖아도 김 형사님을 보면서 그 친구 생각을 했습니다, 허허.”

 

차운형의 대꾸에 좌중이 일제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원용철이 범인이라면 창세교와도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박만규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김성호가 거들고 나섰다.

 

“당연히 관련이 있다고 간주해야지.”

 

“그럼 체포영장 청구는 어느 선까지 해야 되는 거죠? 창세교 교주는 물론이고 핵심간부들까지 해야 하나?”

 

서인혁이 물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자고. 원용철도 용의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영장발부가 될까 의문인데 창세교 관련자까지 영창청구를 한다고 하면 과연 법원에서 발부해줄까?”

 

잠자코 있던 윤명오가 부정적으로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발부해 줄 거라고 봅니다. 킬러 출신인 용의자가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이비 종교에 몸담고 있으면서 연쇄살인을 저질렀다면 그게 혼자만의 소행일까요? 법원에서도 종교단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까 일단 창세교 핵심 간부들까지 영장을 청구하는 걸로 하죠?”

 

김성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윤명오는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원용철에 대한 영장이야 발부될 가능성이 있다 해도 교주나 핵심인물들은 증거불충분으로 영장이 기각될 걸, 아마?”

 

“그렇다면 만약을 대비해서 차 중령님이 손을 좀 써 주시죠?”

 

이영국이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요로를 통한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말이었다. 차운형은 갑작스러운 요청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원용철을 보는 즉시 사살하는 임무를 띠고 왔으므로 요원들이 고민하는 체포영장 발부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좋아요. 그럼 영장신청서 빨리 좀 작성해 주시고, 이만 조회를 마치도록 합시다.”

 

윤명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만규와 서인혁이 영장신청서 작성을 서둘렀다. 그들은 법원의 판단을 돕기 위해 별지까지 아주 상세하게 기술했다.

 

체포영장신청서를 검찰에 보내놓고, 수사본부 요원들은 점심시간을 넘겨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맛깔스러운 음식이 교자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윤명오는 자리에 앉자마자 능숙한 솜씨로 폭탄주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요원들에게 손수 한잔씩 돌리고 잔을 높이 들었다.

 

“오늘은 적당히 합시다.”

 

불현듯 김성호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니 개가 똥 앞에서 웬일이야?”

 

살짝 기분을 잡친 윤명오가 비꼬는 투로 대꾸했다.

 

“영장 발부되면 바로 무영산엘 가야 할 거 아닙니까?”

 

“걱정 마. 오늘은 안 나와. 우리나라 검찰과 법원,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

 

윤명오의 선창에 좌중이 건배를 제창하며 단호하게 폭탄주를 들이켰다. 하지만 둘째 잔부터는 다들 은근히 몸을 사렸다. 아마 김성호의 말에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자 윤명오도 요원들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지는 않았다.

 

윤명오의 장담처럼 퇴근 시간을 한참 넘겨서도 영장은 발부되지 않았다. 이튿날 역시 오전이 다가도록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김성호가 박만규와 함께 무영산에 먼저 내려가 있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운형도 조용히 그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알았어. 먼저 내려가. 영장 나오면 우리도 뒤따라갈게.”

 

윤명오가 손을 훠이 저으며 배웅했다.

 

“본부장님, 병력 좀 준비해서 내려오세요. 그 사람들이 순순히 체포에 응하겠어요?”

 

“알았어! 나도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어!”

 

김성호의 말에 윤명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2008.01.08 10:31 ⓒ 2008 OhmyNews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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