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몰래 내가 살 집을 산 속으로 옮긴다고?"

김포 석암베데스타요양원 장애인들, 시설 이전 반대 기자회견 열어

등록 2008.01.08 18:52수정 2008.01.0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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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암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11시 양천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포 양촌면에 위치한 석암 베데스타 요양원 이전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석암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8일 오전 11시 양천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포 양촌면에 위치한 석암 베데스타 요양원 이전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이경태


"왜 우리에게 요양원 이전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나? 왜 우리가 이전을 결정할 단계까지 아무 것도 몰라야 하나. 왜 물어보지도 않나? 이것은 우리 장애인들을 무시한 것이다. 장애인도 생각이 있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석암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8일 오전 11시 양천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석암 베데스타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뇌성마비 1급 중증장애인 한규선(48)씨는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또 "요양원이 시설이전에 대한 설명 없이 '시설이전 관련'이라는 제목 아래 생활인들의 서명을 받아내놓고, 내가 시설이전 반대 서명을 받기 시작하자 서명용지를 뺏어다가 폐기처분했다"며 "장애인도 엄연한 국민인데 헌법에 보장한 거주권·이동권 보장받아야 하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설 이전 허가해 준 서울시와 복지부 "구청으로 가봐라"

 석암 베데스타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뇌성마비 1급 중증장애인 한규선(48)씨. 그가보건복지부, 청와대, 국무총리 비서실, 서울시, 양천구청에 보낸 요양원 이전 반대 요청 탄원서는 모두 석암재단법인 주소지인 양천구청으로 위임됐다.
석암 베데스타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뇌성마비 1급 중증장애인 한규선(48)씨. 그가보건복지부, 청와대, 국무총리 비서실, 서울시, 양천구청에 보낸 요양원 이전 반대 요청 탄원서는 모두 석암재단법인 주소지인 양천구청으로 위임됐다. 이경태

현재 김포시 양촌면 양곡리에 위치하고 있는 석암 베데스타 요양원은 김포시 송마리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요양원 측은 양곡리가 택지개발로 인해 시설 앞에 도로확장공사가 예정되어 있어 공사기간 중 소음 및 먼지 발생 등을 근거로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 요양원이 있는 양곡리는 저상버스노선이 있는 데다, 주변에 각종 은행과 상점 같은 생활편의시설도 있지만 송마리에는 저상버스도 없거니와 일반버스를 타려해도 30분을 걸어 나가야 한다. 게다가 반경 2~3㎞ 이내에 민가도 없다.

비대위는 재단이 김포 양촌면이 신도시로 지정되면서 땅값이 오르니깐 시설 이전을 통해 차익을 남기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복만 원장은 "차익을 남기더라도 재단 기본재산으로 당국의 관리 감독을 받기 때문에 허투루 쓸 수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현재 요양원 이전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이미 예정부지에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러나 서울시·보건복지부 등 관계 당국들은 장애인들의 요구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작년 한씨가 보건복지부·청와대·국무총리비서실·서울시·양천구청에 보낸 요양원 이전 반대 요청 탄원서는 모두 석암재단법인 주소지인 양천구청으로 위임됐다. 기본적으로 장애인 시설에 대한 1차적 관리·감독은 해당 구청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이날 비대위는 양천구청으로 모였다. 그리고 양천구청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구청장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전력은 끊겨져 있었고, 10여명의 구청직원들이 단단히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시설, 그런데 장애인들에게 시혜 내리는 줄 알아"

직원들을 등지고 선 비대위의 기자회견은 한국의 장애인 복지 실태에 대한 개탄으로 이어졌다.

"결국 한국의 장애인들은 시설에 가야 살 수 있다. 그러나 시설에서조차 시설장에게 왜 내 삶을 맡겨야 하나. 시설의 생활인들도 시설의 운영주체다. 그들에게도 의견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 이렇게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복이 갈 것이라 생각하니 참 걱정된다."

최용기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정부의 장애인복지정책을 보면 시설만 강화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제 장애인들을 지역사회에서 살게 하는 것도 귀찮다는 뜻인가"라며 현실을 개탄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도 "재단은 시설이 자기들 재산인 줄 아는데, 우리가 낸 세금,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것이다"며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장애인들에게 시혜를 내리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십억의 차액이 남는데, 시설을 옮겨야지 안 옮길 수 있겠냐"며 "재단에서 시설을 산 속 깊이 옮겨놓고 안전하게 살게 해준다는데 참 안락하겠다"고 재단을 비꼬기도 했다.

이어 "직접 본인에게 전달하게 되어있는 장애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데다 직원들에게 인권교육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며 "양천구청은 석암재단에 대한 여러가지 의혹에 대해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설 이전 구청 권한 없어...여러분 의견은 전달할 수 있다"

 양천구청은 "장애수당 및 피복비 직접 지급 문제, 직원들의 인권교육문제에 대해서는 구청에서 책임지고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이전 문제는 사실상 구청이 인지하지 못했고, 그를 막을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며 "적어도 보건복지부나 서울시에 여러분의 의견을 전달할 수는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양천구청은 "장애수당 및 피복비 직접 지급 문제, 직원들의 인권교육문제에 대해서는 구청에서 책임지고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이전 문제는 사실상 구청이 인지하지 못했고, 그를 막을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며 "적어도 보건복지부나 서울시에 여러분의 의견을 전달할 수는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이경태


결국 양천구청은 기자회견 이후 긴급히 종합상황실에서 담당 직원들과 비대위의 면담을 주선했다.

이희 양천구청 주민생활지원국장은 "장애수당 및 피복비 직접 지급 문제, 직원들의 인권교육문제에 대해서는 구청에서 책임지고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이전 문제는 사실상 구청이 인지하지 못했고, 그를 막을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며 "적어도 보건복지부나 서울시에 여러분의 의견을 전달할 수는 있다"고 답했다. 또 "오는 15일 구청장과의 면담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비대위는 장애인 시설을 이전할 때 신고하게 되어있는데도 해당 구청이 인지 못했다는 점, 사실상 이전에 정부 예산이 지원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리 감독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이후 구청장과의 면담에서 이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장애인 #장애인시설이전 #석암베데스타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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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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