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여배우가 한 말을 해석하라니...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 구경] 이란편 ②

등록 2008.01.12 10:50수정 2008.01.31 11:22
0
원고료로 응원
a

이란내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 김성국


여기는 어딜까? 세상에 태어난 후 이렇게 넓은 광경은 처음 본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넓다, 광범위하다. 끝이 없다. 엄청난 스케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넓다'라는 형용사구를 망라한다 해도, 이 광경을 표현하긴 어려울 것 같다.

영아의 표현을 빌리면, "지구상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 수 있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다. 이 넓은 광활함 속으로 수십 킬로미터에 걸치는 평평한 내리막이 뻗어 있다. 손이 시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고, 뱃속으로 바람이 술술 들어와 춥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이정도 쯤이야. 40km를 지나고 나서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리막 때문에 속도가 엄청났다. 자전거로 시속 65km/h를 기록한 구간이다.


a

사막도로 이란, 카비르 사막으로 이어지는 도로 ⓒ 김성국


도대체 이 땅의 끝은 어디일까?

"어쩜 이렇게 광활할 수가 있지?"

참 좋은 곳도 많이 다녀보고, 여기저기 다른 나라에서 자전거도 많이 타 봤지만, 우리가 자전거를 타본 구간 중에선 단연 이곳이 최고다. 광활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산꼭대기에서나 내려다 볼 수 있는 저 광활한 장면을 마치 평평한 땅 위에서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인생은 짧고 세상은 이렇듯 넓은데, 굳이 자신의 영역을 좁게 잡고, 그 한정된 공간에서만 골라 먹으려 하니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더불어 인생이 복잡해진 것이 아닐까? 넓게 보고, 삶의 영역을 넓게 잡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엔 죽기 전에 다 보지도 못할 만큼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 널려있는데! 내 마음의 넓이를 넓히고, 내 삶의 무대를 넓히면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란의 국토는 중앙의 고원지대와 이를 둘러싼 북쪽의 엘부르즈산맥, 남쪽에서 서쪽으로 뻗어 있는 자그로스산맥, 그리고 이들 산맥의 바깥쪽을 가로지른 카스피 해(海) 연안의 저지대와 페르시아 만(灣), 오만만(灣) 연안의 평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곳은 북서쪽의 고원 지대다. 고도는 해발 2000m. 하지만 이곳은 고원의 평지이기 때문에, 산위에 올라와 있다는 그런 느낌은 없다. 고원지대가 만들어 내는 신비한 느낌. 그냥 빨간 구형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 뿐인데도,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장면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 아름다움에 마음이 뺏겨,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그 어느 각도로 봐도 시선이 끝닿아 묶이는 곳이 없다. 도대체 이 땅의 끝은 어디일까?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망망대해에서 받는 느낌보다 열배는 더 넓어 보인다.


왜 이런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일까. 고원지대만이 내뿜는 묘한 마력일까? 하긴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예전 중국에서 라오스로 넘어올 때 운남의 고원지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가히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최고의 코스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a

광활함 이란의 경치는 한마디로 “광활함”이다. 인도의 복잡함과 네팔 히말라야의 장엄함, 파키스탄의 황량함과 비교되는 이란의 광활함. ⓒ 김성국


a

사진 -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 하니와 아니자. "아니자"는 인도 말 인데, 우리말로 풀이하면 "영원한 것은 없다" 는 무상(無常) 정도로 해석이 되겠네요. 그리고 영아의 자전거의 이름인 "하니(Honey)"는 달려라 하니가 아니고, 바로 그 하~~니랍니다. ⓒ 김성국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문고리가 다르다

드디어  오후 3시30분 경 오늘의 목적지인 나인 시내로 들어왔다.  바람이 불고 있는 텅 빈 거리. 시내로 들어오기 전 보았던 그 광활함과 기분 나쁜 검은 산들 때문일까? 국경일을 맞아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가 버린 나인 시내는, 단지 쓸쓸하다는 느낌을 넘어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잘 곳을 찾지 못해 추위에 떨며 헤매고 있을 무렵, 우연히 만난 박물관 가이드 아저씨의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사막도시 '나인'의 첫인상은 결정났다. 이후 우리는 숙소 때문에 경찰서를 오가다 만난, '이스파한(Isfahan)'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한 선생님의 집에서 하루 신세 지기로 했다.

젠장! 이란 사람들은 좋은데 이란의 공권력에 대해서만큼은 욕이 절로 나온다. "외국인이 저렴한 여관에 투숙할 경우엔 관할 경찰서에서 허가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이후 그들의 요구대로 허가증을 받기 위해 경찰서와 규모가 작은 여관들 사이를 헤매길 두 시간, 결국 그 허가증은 받을 수 없는 것임이 밝혀졌다.

"허가증은 경찰서에서 받아야 하지만, 내가 알기론 안 내주는 걸로 알고 있지요!"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 하룻밤 묶게 해주기로 한 아저씨가 한 말이다. 결론은 외국인은 무조건 정부가 지정한 아주 비싼 호텔에서만 자라는 얘기 아닌가? 

어쨌든, 흙집으로 지어진 골목골목을 따라 들어가는데, 이건 미로가 따로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걱정이 되기는 영아도 마찬가지인지, 슬며시 나와 눈을 마주치는 영아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곳 '나인'은 '이스파한' 보다 더 보수적인 느낌이 든다. 그 차이는 문고리 하나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대문에는 문고리가 두개 달려 있는데 하나는 남자용이고 하나는 여자용이다.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문고리 자체가 다르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 또한 고음 저음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 소리에 따라 집안에서 남자가 문을 열 것인지, 여자가 문을 열 것인지 결정된다고 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한국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적지 않게 들었던 얘기다. 유교에서건, 이슬람교에서건 왜 이렇게 남녀를 구별하고, 떼어 놓지 못해 안달일까?

a

문고리 이란의 시골에선 문에 달린 손잡이도 남자용, 여자용이 따로 있답니다. 왼쪽이 여자용, 오른쪽이 남자용. ⓒ 김성국


갑자기 화면을 가득 매우는, 벌거벗은 남녀의 몸뚱아리

우리는 이미 미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는 불안한 예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지은 지 몇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흙집들 사이로 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우리는 끝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이왕 도와주겠다는 현지인을 따라 나선 길.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하늘에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골목골목을 열두 번도 더 꺾었을까. 드디어 아저씨 집에 도착했다. 흙으로 지은 오래된 옛날 집, 왠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대문이다. 실제로 150년이나  된 집이라고 했다. 하지만 집안 내부는 지금까지 우리가 방문해 본 여타 다른 이란인의 집과 다르진 않았다.

막상 집안으로 들어선 후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골목골목을 꺾었던 기억을 다 잊을 만큼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잠시 후 좀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아저씨는 이란 음악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놓고 함께 보자고 했는데, 문제는 그 테이프가 음악 관련 필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테이프를 걸고 난 후 아저씨는 내게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느냐고 또 물어왔는데, 당시엔 중국어 해석을 도울 일이 있나보다는 생각에 별 뜻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저씨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갑자기 화면을 가득 메우는, 벌거벗은 남녀의 몸뚱아리, 그리고 신음소리… 세상에나! 이걸 설마 내가 해독해 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난 그 아저씨가 다른 걸 찾던 중 몰래보던 장면이 우연히 나온 거겠지 하는 생각에, 짐짓 못 본 척 했는데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아저씨는 차례차례 장면을 넘긴 후, 중국 포르노 여자 배우가 나오는 장면(Scene)을 찾아서, 그 여자가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하는지 묻는 것이었다. 별것 아닌 내용이라 해석을 해주긴 했는데, 영아랑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문화 차이로 해석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남자끼리 있던 것도 아닌 데다, 그것도 원리주의의 나라라는 이란에서 일어난 일이니 말이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우리가 딱 잘라서 거절하지 않았다면 빈방이 있는데도 우리와 한 방에서 자려고 한 분위기다. 가족도 집에는 어머니 한 분밖에 없다고 하는데, 게다가 우리는 아직 어머님을 뵙지도 못한 상태가 아닌가. 

고마운 초대와 환대 덕분에 비싼 호텔에서 머물지 않아도 되어 너무 고맙기는 했지만 빨리 아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칼 가는 소리 나나 잘 들어봐."

오늘 하루는 길에서 너무너무 근사한 경험을 했고 밤에는 또한, 이러한 특별한 경험까지 하게 되는구나. 자전거 여행을 할 때면, 늘 하루에 한두 가지 해프닝은 있게 마련이다. 마음은 불안했지만, 피곤에 지친 몸은 우리를 그냥 그대로 깊은 잠 속으로 빠지게 해 주었다.

이튿날, 무사히 아침이 밝았다. 새벽 명상을 마치고, 새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왔다. 아침, 태양의 광명이 모든 불안함을 떨쳐내게 했다. 아저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짱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마을로 안내했다. 1000년도 넘었다는 마을 '나인'을.

그리곤 또 다시 짧은 인연도 안녕이다. 우리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사막으로 들어가려 한다. 사막에는 지금 모래바람이 심하다는 얘기가 들리는데도 영아는 용기 있게 "노프라블럼(No problem!)"을 외쳐댄다. 역시 대단한 여자다.

이제 곧 사막루트가 시작될 것이다.

a

사진 - 천년도 넘었다는 마을, 나인 전경 ⓒ 김성국

덧붙이는 글 |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덧붙이는 글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자전거 여행 #이란 여행 #사막 여행 #국이랑 영아 #자전거 세계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봉 천만원 올려도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산단의 그림자
  2. 2 은퇴 후 돈 걱정 없는 사람, 고작 이 정도입니다
  3. 3 구강성교 처벌하던 나라의 대반전
  4. 4 왜 여자가 '집게 손'만 하면 잘리고 사과해야 할까
  5. 5 [단독]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엮으려는 시도 있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