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한겨레>-<조선>, 이구동성 '신문법 폐지', 왜?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시장규제 조항 전면 삭제" <조선>의 속내

등록 2008.01.09 14:28수정 2008.01.1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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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자 조선일보 기사. ⓒ 조선일보PDF

 

"인수위원회 언론대책은 수박 겉핥기다."

 

누가 한 말일까? <조선일보>가 1월 9일 두 면에 걸쳐 신문법 개정 문제를 집중 조명한 기사의 제목이다. "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현행 신문법을 전면 개정하겠다며 몇 가지 방향을 제시했"지만 "인수위안은 '수박겉핥기'로 구체성이 없을 뿐 아니라, 현행 신문법의 독소 제거에도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라고 비판했다. "문제의식이 없다"고도 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8일과 9일, 그리고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9일 찬반으로 갈리는 확연하게 엇갈리는 시각으로 인수위원회의 '신문법 폐지' 방침을 다룬 것과는 사뭇 다른 기조다.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 8일 문화관광부의 인수위 보고나, 인수위원들의 '준비된 발표내용'에 그다지 새로운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포장은 요란했다. 문화부는 기존의 신문법(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새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수위 '준비된 발표내용'에 그다지 새로운 내용 없어

 

주요 내용으로는 신문·방송의 겸영 규제를 완화하고, 위헌 결정이 난 시장지배적 사업자 조항의 정비, 신문발전위원회와 언론재단 등 신문 지원기관의 통합, 공동배달사업의 참여 확대 방안 등이다.

 

이들 내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추진해오던 일들이다. 신문법 위헌 조항에 대해서는 당장 법률을 고쳐야 하지만, 정치권의 직무유기로 그동안 법안 손질을 미뤄오던 것이다. 신문발전위원회와 언론재단,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 등 신문 관련 기관의 통폐합 문제는 이미 묵은 숙제가 돼 있다. 그동안 이들 기관과 단체의 이해관계와 역할 조정의 어려움 등으로 논의 진전이 힘들었다. 문화부로서는 정권 교체를 계기로 이를 밀어붙일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문화부는 논란이 됐던 신문유통원도 그동안 신문법에 대한 반감으로 참여를 주저해왔던 조·중·동 등 보수신문의 참여까지 유도해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대신 운영 측면에서는 신문사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조·중·동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공동배달지역에 '대도시지역'을 우선 배려한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물론 자율적 운영을 강조하는 만큼 신문사들이 일정한 비용부담도 해야 한다. 기획예산처가 그동안 줄곧 주장해왔던 정부지원 50%, 수익자(신문사) 부담 50%의 매칭 펀드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새로운 게 있다면 신문·방송의 겸영 규제 완화 방침이다. 정책 당국이 볼 때 이 또한 해묵은 숙제 가운데 하나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겸영 허용 문제는 감당하기 힘든 '뜨거운 쟁점'이지만, 신문사의 CATV  '종합편성' 채널이나 '뉴스채널' 허용 문제는 논의를 진행시킬 만큼 여건이 성숙됐다고 판단할 만한 사안이다.

 

어쨌든 문화관광부는 미디어정책과 관련해 정권 교체기를 통해 그동안의 '묵은 숙제'를 한꺼번에 털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인수위원회 역시 문광부의 이런 '해법'에 비교적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문광부가 언론의 자율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미디어의 산업적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신문법 폐지를 보고했다"며 "인수위도 이런 흐름에 반대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합의됐다"고 말했다.

 

인수위의 이런 방침 표명은 이명박 정부가 신문분야와 관련해 그 상한선을 대략 신문사에 케이블TV의 종합편성이나 '뉴스채널'’을 허용하는 선으로 잡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방송이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지상파 겸영 문제까지 거론해 논란을 필요 이상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신문발전위원회나 언론재단, 혹은 신문유통원 등 신문 관련 기관이나 단체의 문제는 조·중·동에게 성의를 보이는 수준에서 정리하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동배달제에 대해서는 조·중·동 사이에서도 미묘한 의견 차이가 엿보인다. '신문법 폐지'라는 그럴 듯한 포장으로 문화부와 인수위가 맞장구를 친 데 대해 <조선일보>가 발끈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포장만 요란했지, 별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듯하다.

 

<조선> "시장규제 조항 전면 삭제해야"

<한겨레>·<경향> "여론독과점 폐해 막아야"

 

<조선일보>는 9일자 '인수위 언론대책은 수박 겉핥기'에서 "신문유통원 등 신문시장 개입 장치를 그대로 두려는 것은 문제의식이 없다"고 질타했다. 신문 시장 1위 신문으로서 공동배달제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을 뿐더러, <중앙일보>나 <동아일보>까지 변형된 공동배달제에 가세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신문발전기금 등 신문사에 대한 지원 제도와 시장 규제 조항의 전면 삭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론중재제도까지 대폭 손을 볼 것을 압박하고 나섰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 같은 신문법 대체 입법 방침이 신문시장의 정상화와 여론의 다양성에 역행하는 퇴행적 '개악'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한마디로 신문시장 왜곡과 여론 독과점의 폐해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신문사에 대한 '종합편성' 채널이나 '뉴스채널' 허용 문제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서 신문이 활로를 찾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 여론독과점의 폐해를 우려해 신문의 방송 겸영을 반대해 온 상당수 언론학계와 언론단체 인사들도 '뉴스채널' 정도에 대해서는 신문사의 겸영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유연한 태도로 돌아선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경향신문>이나 <한겨레>가 여론의 다양성이라는 '원칙' 때문에 이에 대한 반대를 천명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인수위의 신문법 논의와 관련해 접근하는 방향은 정반대지만, <경향신문>과 <한겨레>, <조선일보>가 이구동성으로 '문제의식이 없다'고 질책하고 나선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정책 또한 요란한 구호와는 달리 실제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음을 단적으로 시사해주는 한 장면일 수 있다.

2008.01.09 14:28 ⓒ 2008 OhmyNews
#신문법 #인수위 #신문방송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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