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아이의 아기 때 손아기에게 손가락을 갖다 대면 아기는 이렇게 꼭 쥔다. 갓난 아기와 손 잡는 방법이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약하고 소외받는 생명들을 귀힌 여기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최봉실
셋째 아이를 위한 완벽한 산후조리에 도전한 남편이제 셋째 몸조리를 하는 것은 당연히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번엔 음식까지!”하는 나의 선언에 처음엔 인상을 팍 구겼다. 나는 또 몇 달을 마음으로 정성을 드렸고, 남편은 결국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음식 전수에 들어갔다. 최소한 국은 끓일 줄 알아야 된다. 국, 사실 별로 어렵지 않다고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 미역국만 끓이면 되지 않는가! 미역국은 국 중에도 제일 끓이기 쉽다. 맛까진 안 바란다. 끼니 안 거르고 먹을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물 볶는 거, 이것도 너무 쉽다. 나물도 미리 씻고 나눠서 냉동실에 얼려뒀다. 나물은 다듬는 게 어렵지 요리는 간단하니까. 나중에 녹여서 소금 넣고 들기름 넣고 볶기만 하면 된다. 남편은 어머니 음식 솜씨를 닮아서 맛을 정말 잘 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해?” 하면 “사랑으로 하니까!”하고 남편이 대답한다. (이 대목에서 살짝 닭살이라도 용서하시라!)
남편은 한 달 산후조리 기간을 진작부터 주변에 알려 놓았다. 일도 조정하고. 남편이 육아에 너무 매이는 게 아니냐는 걱정(?)어린 시선을 던지는 것을 무겁게 견뎌야 하기도 했다. 아내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 시간을 당연히 감수하고 갈 마음을 어떻게든 설정하게 되는데, 남편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미 아내가 자신의 인생에서 아이를 위해 이미 내어 놓고 있는 많은 시간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 시간을 조금 내어 놓는 결정을 하는 것에, 남편도 사회도 너무 힘겨워한다. 종종 그 조금을 내어 놓으면서도, 그보다 더 많은 걸 내어놓고 자신의 몸까지 내어놓는 아내 앞에서 더 힘든 내색을 할 때면, 아내들은 서글프다 못해 그냥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돼버리고 싶다.
함께 산후조리를 통과한 소중한 경험, 동지가 되다!둘째와 셋째를 위해 남편이 전적으로 집중한 총 두 달간의 몸조리 기간은 긴 인생에서 정말 한 줌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두 팔 걷고 온 몸을 내어 던진 그 시간에 흘린 서로의 땀을 기억하는 것은 이후 함께 살아갈 인생을 떠받쳐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버팀목이 되었다. 게다가 고통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함께 힘겨운 시기를 통과했다는 동지 의식으로 충만할 뿐이다.
동네에 함께 사는 친구 두 집도 얼마 전에 남편들이 몸조리를 맡았다. 물론 당당히 육아 휴직을 냈다. 함께 하는 품앗이에 첫째 아이를 데리러 오는 그 남편들을 보면, 전장에서 잠시 빠져나온 기색이다. 막 싸움을 하고 나온 자의 가라앉지 않은 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러나 어둡고 거친 기색이 아니라, 마치 사우나를 하고 나온 기색이다. 장거리 경주를 달리고 난 후의 흠뻑 젖은 땀 냄새에 묻어나는 상쾌함 같은 것 말이다.
이천 냉동창고 폭파로 안타까이 떠나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출산과 산후조리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또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그래도 공적인 장에 글을 쓴다는 것은 망설여졌다. 산후조리에 관련된 기사를 공모한다는 광고에 눈이 번쩍 뜨였지만 진작에 쓰는 걸 포기했다. 다시 몇 년 전 일을 풀어낼 것도 엄두가 안 나서.
그런데 또 병이 도졌다. 결국은 쓰고 말 것 같았다. <오마이뉴스> 메인에 걸린 기사를 보고서는 말이다. 그러다 다시 한 차례 제동이 걸렸다. 거기에 달린 댓글 때문이다. 이천 냉동창고 폭파 사고로 인해 40명의 노동자들이 숯덩이가 된 현실에 울분을 견딜 수가 없는데 웬 난 데 없는 산후조리 이야기냐고. 나는 다시 풀이 꺾였다. ‘그래 맞아!’ 하고.
그런데 쓰고 말았다.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남편과의 산후조리에 돌입했던 것은, 단순히 내 가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남성이 세상에서 가장 여린 생명을 함께 돌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 이후 사회에 미칠 영향은 정말 다를 수 있다고 믿고 소망했다.
각종 위험 물질을 취급하면서도 어떻게 노동청의 관리 감독도 전혀 받지 않고 안전을 총괄하는 책임자도 없이 공사를 강행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일하는 사람들의 안위와 행복은 아랑곳없이 내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할 수 있는가!
남편이 아내의 산후조리를 하며 가장 취약한 상태의 산모와 아기를 세심히 돌보는 경험을 하고, 엄마와 아빠의 협력을 지켜보며 아이가 자라나는 것은, 사회의 기본 토대가 되어야 할 성품과 관계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문화적 기반이 될 것이다.
요즘은 주위에서 남편이 산후조리도 하고 요리도 잘 하는 그런 모습들을 종종 본다. 그런 변화들이 이후 우리 사회가 약하고 소외받는 존재를 더욱 존중하고 그들의 행복과 윤택한 삶을 가꾸고 지켜줄 줄 아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귀한 씨앗임을 믿는다.
안타깝게 떠나가신 마흔 분의 노동자들께 삼가 명복을 빌며, 가족들에게도 평안을 빈다.
덧붙이는 글 | <산후조리 제대로 하셨습니까?>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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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나라, 널리 생명을 이롭게 하는 나라가 되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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