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불의 심판 - 75회

불의 심판 - 4

등록 2008.01.10 09:57수정 2008.01.1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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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남자를 따라 본관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깔린 자줏빛 카펫과 벽면에 붙은 예수의 성화(聖畵)들이 자못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는 새삼스럽게 옷깃을 여미고 남자를 따라 ‘교수실’이라고 현판이 부착된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저는 이 도량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리로 앉으시죠.” 

적갈색 사제복에 왕관 같은 모자를 쓴 교수가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산신령을 연상시키는 눈매에 허연 수염이 무성한 노안(老顔)이었다. 노인은 교수가 권한 소파에 엉거주춤 앉았다.

 

“안상순 성도는 지금 기도실에 계십니다. 기도가 끝나면 곧 이리로 오실 겁니다.”

교수가 인자하고도 온화한 눈빛을 띠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사랑이랄까 자비랄까 여하튼 종교에서 말하는 구도의 결실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은 낯선 곳에 와 있었지만 불안하거나 어색하지가 않았다. 왠지 익숙한 것들을 대하듯 마음이 푸근하고 편했다. 교수실이라고 해서 특별히 꾸며진 무엇은 없었고, 함께 앉아 있는 낡은 소파처럼 검소함이 곳곳에 배어있었다. 

 

예수 같다고나 할까, 부처 같다고나 할까? 교수에 대한 인상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문득 노크 소리가 났다.

“창세.”

합장하며 들어온 사람은 바로 노인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신라시대 복장 같은 고대 의상을 입고 있었다.

 

“창세.”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았다. 부인이 남편에게도 창세 인사를 했으나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함이 잔뜩 묻어났다. 말없이 멀뚱멀뚱 서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교수가 냉랭함을 깨려고 말문을 열었다.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니 식당으로 가시죠?”

두 사람은 교수를 따라 방을 나섰다.

 

지하층 전체가 식당이었다. 2, 3백 명은 넉넉히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식당엔 이미 백여 명의 성도들이 들어와 있었다. 남자들은 예의 사제복을 입고 있었고 여자들은 고대 의상을 착용하고 있었다. 배식을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선 이들이나 먼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이들이나 하나같이 정갈한 모습이었다. 교수와 노인부부는 줄의 끄트머리에 가서 섰다.

 

제법 길게 줄지어 있었는데 잠깐 사이에 배식대까지 다다랐다. 배식구를 통해 들여다 본 주방에선 위생복을 입은 성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식단은 오로지 채식만으로 일식삼찬이었다. 노인은 공손하게 배식을 받아 부인의 뒤를 쫓아갔다. 아까보다 많은 성도들이 식당 안에 들어와 있었지만 여전히 정숙한 분위기였다. 성도들은 식탁 사이의 좁은 통로에서 마주치면 서로 몸을 비켜주었고 가볍게 목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교수와 부인이 식탁에 앉더니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노인이 짐작하기로 식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노인은 혼자만 수저 들기가 멋쩍어서 그들이 하는 양을 어색하게 흉내 내었다. 

 

이윽고 기도를 마친 교수가 수저를 들었다. 그는 머리에 쓴 커다란 금박 모자를 의식해서인지 식사하는 내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노인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금박 모자는 그야말로 성도들과 구별되는 상징이자 권위였지만 교수는 그것을 내세우지 않고 있었다. 아까 배식을 기다리며 줄을 선 것도, 지금 이렇게 성도들과 한자리에서 식사하는 것도 권위주의와는 무관한 모습이었다. 또한 성도들도 교수와 격의 없이 어울리는 것에 익숙한 듯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부부는 본관 뒤편의 이층 건물인 가족동(家族棟)으로 갔다. 성도에게 가족이 찾아오면 1층을 사용하고, 2층은 온가족이 성도인 경우 사택처럼 쓴다고 부인이 말해 주었다. 노인은 부인의 뒤를 따라 1층의 한 거처에 들어갔다.

 

“사람들 인상이 다들 편하고 좋아 보이네?”

노인이 양복저고리를 벗으며 말했다.

“그럼요. 낮엔 울력하고 저녁엔 기도하고, 다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남편의 옷을 장롱에 걸며 부인이 대답했다.

 

“여기 있으니까 편한가?”

“편해요. 당신께는 미안하지만.”

“당신만 편하고 좋다면야 나도 괜찮아.”

노인은 체념 아닌 초월을 했다는 듯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러자 부인도 덩달아 웃었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한 후 부인이 울력을 나가자 노인은 교수의 배웅을 받으며 도량을 나섰다.

 

“아무리 할머니가 위에 계신다 해도 많이 외로우시겠어요?”

김성호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노인에게 소주를 권했다.

“그래도 사별한 노인네 보다야 훨씬 낫지 뭐.”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인 듯 노인의 얼굴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무영초막에서의 술자리를 가까스로 접고 세 사람은 읍내로 내려와 여관을 잡았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지 않고 곧장 술집을 찾아 나섰다. 운전하느라고 무영초막에서 술을 참을 수밖에 없었던 박만규를 위해서였다. 세 사람은 새벽녘 제법 취하고서야 여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날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다방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윤명오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경찰특공대 1개 중대를 데리고 한창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창세교 핵심 간부들까지 모조리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임을 감안하여 체포대상자 수를 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지금 내려오고 있다면 해질녘에나 도착할 게 자명했다. 세 사람은 다방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느긋한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다방 레지가 그들을 깨우더니 너무 오래 있었다고 차 한 잔을 더 마시라는 것이었다. 벽시계는 벌써 오후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 사람은 칡즙을 시켜 마시고 다방을 나왔다. 그리고 눈에 띄는 대로 어느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다. 미닫이문에 붉은 페인트 글씨로 ‘매운탕’이라고 써놓은 것을 보자 시원한 국물 생각이 동했기 때문이었다. 다방 의자에서 단잠을 잔데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얼큰한 메기매운탕을 먹고 나자 몸이 아주 개운해졌다.

 

구형 소나타가 다시 무영초막으로 향했다. 박만규는 무영초막에까지 차를 진입시키지 않았다. 그는 한적한 비포장 길 한쪽에 소나타를 세워두고 윤명오에게 전화했다. 병력을 실은 차량이 무영초막까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행여 가게 노인이 낌새를 채고 창세교에 전화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예측대로 해가 질 때쯤 요원들과 경찰특공대를 태운 버스 두 대가 도착했다. 특공대는 버스에 탄 채로 김성호가 일러주는 작전계획을 숙지했다. 검거작전은 창세교의 집단기도가 시작되는 저녁 8시에 개시될 예정이었다. 특공대는 서울에서 가져온 도시락으로 이른 저녁식사를 끝내고 휴식을 취했다.

 

“체포는 그러니까 교무까지 하면 되는 거지?”

윤명오가 다시 한 번 확인하자 김성호는 머리만 주억거렸다. 어제 무영초막 노인의 말에 의하면 교수 밑에 실무를 총괄하는 교무가 셋이 있는데 바로 이들이 핵심간부라는 것이었다.

2008.01.10 09:57 ⓒ 2008 OhmyNews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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