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남편 손 위해 오래 오래 살고 싶습니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우리집 뒷동산에 올랐습니다

등록 2008.01.10 13:38수정 2008.01.1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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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동산 찬 바람 맞으며 울었던 나무십자가 세워진 기도동산 ⓒ 문인숙

▲ 기도동산 찬 바람 맞으며 울었던 나무십자가 세워진 기도동산 ⓒ 문인숙

 

우리 부부는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손을 꼭 잡고 우리집 뒷동산으로 올라갑니다. 야트막한 우리집 뒷동산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천천히 올라가기에 딱 좋지요.

 

저는 남편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어떨런지…. 좋든 싫든 상대가 원하면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다 들어주려는 그의 선한 심성대로 그저 손을 맡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한없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결혼을 한 이후, 그동안 우리는 다정히 손을 잡고 걸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어딜가나 그는 정신없이 앞서 달려가고 저는 그의 뒤를 또 정신없이 따라가곤 했지요. 사랑이 깊지 않아서였을까요.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그날, 찬바람 불어오는 기도동산에서 내가 대성통곡을 할 때 그가 손을 내밀어 말없이 나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거칠고 두툼하고 커다란 손….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면서 얼마나 얼마나 울었던지.

 

오래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 사람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한없이 좋았고 그보다도 그 사람의 손이 못견디게 더 좋아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세월 도시에서 살아왔다는 그 남자의 손을 가만히 훔쳐보니 날마다 나뭇짐을 지는 나뭇꾼의 손보다 더 거칠어 보였습니다.

 

그 손을 보며 험한 세상 얼마나 고달픈 세월을 살아왔으면 저 손이 저리도 거칠어졌겠나 싶어 안쓰럽고 측은한 생각에 그를 도무지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거칠고도 억센 내 남편의 손을 잡고 산엘 오르면 더 바랄 것이 없는 듯 행복합니다. 굳은 살 박힌 거친 그의 손을 쓰다듬으며, 이 손을 위하여 내 오래오래 살아서 무엇이든 그가 기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서럽게 가슴을 져며 옵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니, 내일 일을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오늘 이렇게 새로운 새벽을 맞을 수 있었으니, 내일도 그리고 또 내일도 살아서 그의 손을 잡을 수 있겠거니 믿어 봅니다.

 

그동안 나를 만나, 거친 그 손에 더 옹이지도록 굳은살이 박힌 그를 위해 오늘도 저녁밥상을 마련할 수 있으니 너무도 행복합니다. 이 행복을 아끼고 아끼며 감사하며 오래오래 살아가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문서선교지 [해와달]에 올려진 글입니다.

2008.01.10 13:3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문서선교지 [해와달]에 올려진 글입니다.
#기도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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