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도 아른거리는 내 딸아, 살아만 있어다오"

안양 실종 이혜진양 어머니 "긴 여행에서 곧 돌아올 거다"

등록 2008.01.11 16:41수정 2008.01.1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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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지방경찰청

지난해 성탄절, 집 근처에서 마지막 모습이 목격된 뒤 행방불명된 경기 안양 명학초등학교 우예슬(10)양과 이혜진(12)양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부모는 물론이고 경찰, 119 소방대원, 경기도 내 교사, 명학초등학교 학부모, 안양시민들까지 실종된 두 어린이 찾기에 나섰지만 아이들의 행적은 물론 생사 여부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매년 부는 겨울바람이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는 사건 탓에 두 아이의 가족들에겐 올 겨울 추위가 유난히 매섭게 느껴진다. 이와 관련 예슬양과 혜진양 부모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러나 예슬양의 부모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고, 우여곡절 끝에 혜진이 어머니와 만날 수 있었다. “긴 여행을 떠난 아이의 귀가가 조금 늦어지는 것뿐”이라며 위안 삼는 혜진양 어머니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지난 9일 오전 10시경 경기 안양시 안양 8동에 위치한 한 단독주택에서 ‘윙~’하는 청소기 소리가 새어나온다. ‘주부가 집안청소를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기계음이다.

그러나 그 집이 지난 12월 25일 이후 행적이 묘연한 이혜진양의 집이었기에 그 집에서 들리는 ‘청소기 소리’의 느낌과 의미는 보통의 것과 다르다. 기자의 방문을 알리는 전화에 급하게 청소를 한 듯 거실은 깨끗했지만 열린 문틈으로 보인 아이들 방에는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프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던 듯 바쁘게 아침을 시작한 혜진양의 어머니 이연순씨(43)씨. “내가 강해져야 아이를 찾을 수 있다”며 말문을 연 이씨는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엔 ‘생기’가 없었다.

이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 아침 혜진이 꿈을 꿨다”며 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혜진이가 예슬이하고 집 앞 현관에 서서 울고 있었어요. 얼른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다시 돌아 가야한다면서 계속 울더라고요. 혜진이의 긴 머리카락도 짧게 잘려 있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단서는커녕 제보전화 조차 없어서 ‘차라리 협박전화라도 와서 목소리라도 들었으면’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에요.”


맞벌이로 바쁜 엄마를 위해 거실바닥을 닦고, 비가 오는 날이면 빨래까지 걷어 놓던 12살 난 막내딸. “술 마시고 밥 거르면 안 된다”며 아빠를 위해 작은 손으로 계란말이를 만들어 상을 차리고, 업무에 지쳐 귀가한 아빠의 양말까지 벗겨 주는 등 혜진이는 예쁜 짓만 골라했다고 한다. 혜진이 어머니는 지금도 ‘까르르’하고 웃어대던 혜진이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선하다며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겼다. 

“인형같은 내 동생 혜진이”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자란 혜진이는 형제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6살 터울의 혜진이 오빠 성주는 평소 입버릇처럼 “인형 같이 너무 예쁘다. 이대로 안 컸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혜진이를 안고 바닥에 내려놓지 않았을 정도다.

3살 위 언니 혜경이 역시 동생을 몰래 떼놓고 놀러다니는 여느 자매의 모습과 달리 혜진이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다. 일요일 아침, 혜진이가 교회를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면 울 정도였다고 하니 이들의 형제애가 남달랐음을 짐작게 한다.

오빠 성주는 학교 보충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신촌, 명동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동생의 얼굴과 인적사항이 담겨 있는 전단을 배포하다 집으로 돌아온다. 언니 혜경이 역시 이날 공부방 친구들과 안양역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줄 계획이라며 바삐 집을 나섰다.

엄마 선물 사러 나간 뒤 깜깜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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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경기 안양초등생 실종사건과 관련해 경기지방청은 수사형사 70여명과 전경 6개 중대 500여명, 수색견을 동원해 집 근처 수리산과 안양천변, 철로변, 재개발 지역 폐가 등을 수색에 수색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경기지방경찰청


혜진이네 거실 한켠에는 아직도 크리스마스 때 사다 놓은 혜진이 몫의 케이크가 주인 혜진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다 놓은 지 20여일 가까이 돼 상했을 게 뻔했지만 막내딸 몫의 케이크를 버린다는 게 엄마에겐 마치 딸을 버리는 일인 양 쉬운 일이 아닌듯 싶다.

“이브 날 가족들이 혜진이 몫이라고 남겨둔 케이크에요. 혜진이 돌아오면 이것보다 더 크고 맛있는 걸로 다시 사줘야죠. 크리스마스 파티 한다고 들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지금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엄마’라고 부르며 뛰어들어올 것 같아요.”

부모의 맞벌이로 인해 함께 있는 시간이 적었던 혜진이는 평소 부모에게 하루에 3~4통의 전화는 기본으로 하던 아이다. 사건 당일인 지난달 25일 오전 11시까지도 아빠와 통화했던 혜진이는 그 뒤로 소식이 없다.

경찰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아이는 아빠와 통화를 한 후 12~1시경 집에서 나와 동네 화장품 가게로 향했다. 화장품가게에 들른 혜진이는 “엄마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립스틱을 예쁘게 포장해갔다.

혜진이 어머니 이씨는 “선물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살아만 돌아왔으면 좋겠다. 어디를 가든 내 손을 잡고 쫄쫄 쫓아다니면서 재잘대던 막내가 집에 없으니 빈집 같다”며 “무엇이라도 좋으니 제발 단서가 하나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정말 갑갑하다. 제발 단서 하나만…. 하나만…”이라는 말을 연거푸 내뱉으며 한숨지었다.

이씨는 부부가 맞벌이를 하느라 막내딸을 혼자 있게 한 시간이 많았다는 게 지금에 와서 가장 후회된다고 고백했다. “언니, 오빠는 학교에서 급식을 하고 저녁 늦게 들어오는데 어린아이 혼자 밥을 차려 먹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면서 “혜진이가 돌아오면 그냥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 있고 싶을 뿐이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골목마다 혜진이와의 추억 가득

이씨는 요즘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렵다. 문 앞을 나서면 혜진이의 얼굴이 붙어 있는 현수막이며 전단이 사방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양시에는 각종 게시판은 물론이고 눈에 잘 띄는 벽이나 전봇대, 버스정류장, 또 한 가게 건너 한 가게 꼴로 혜진이와 예슬이를 찾는 전단이 붙어있다. 사거리, 횡단보도 등에는 현수막이 포진돼 있는 상태다.

길을 나섰다가 집 앞에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고 울고, 혜진이와 함께 걷던 길을 혼자 걸어 들어오고 있다는 생각에 두 번 눈물을 쏟는 이씨다. 이씨는 “전단이며 현수막이 이렇게 많은데 제보전화 한 통 오지 않는 게 신기하다”면서 “전국의 수많은 집들을 구석구석 뒤질 수도 없고…. ‘어떻게 찾나’ ‘막막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이가 돌아온다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눈가에 머금은 눈물을 훔쳤다.

혜진이의 행적이 묘연해진 뒤 처음 2~3일 간 이씨는 움직일 수조차 없어 누워만 지냈다. 혜진이 환상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씨도 조금은 초연해 진 듯하다. 이사하면서 짐을 줄이려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태워버렸다는 이씨는 최근 한 초등학교 동창이 앨범을 제본해왔다고 꺼내 보이며 인터뷰 도중 처음으로 밝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내 동창이 오늘도 전단을 나눠 주러 집으로 오기로 했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큰아들 성주의 “엄마 괜찮아, 혜진이 조금 먼 여행을 떠난 것뿐이야. 금방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라는 위로가 큰 위로가 됐다는 이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좋은 소식 들리면 꼭 연락하겠다. 우리 혜진이, 긴 여행에서 곧 돌아올 거다”라고 말하며 희망의 눈빛을 반짝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사서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사서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안양실종사건 #이혜진 #ㅁ초등학교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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