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에서 귀 청소부를 만나다

[평범한 아줌마 선생의 인도여행 14] 거친 히말라야로 들어가다

등록 2008.01.12 13:06수정 2008.01.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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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일

공영버스 스탠드(HRTC Bus Stand)는 비교적 이른 아침 나절인데도 벌써 붐비기 시작했다. 이곳 버스터미널은 포장되지 않은 탓에 빗물에 범벅이 된 진창 흙바닥이어서 그러지 않아도 노쇠하고 낡은 로컬버스들의 바퀴며 승객들의 슬리퍼를 모두 흙빛으로 물들여놓았다. 군데군데 개들의 배설물과 빗물이 고인 흙탕물의 웅덩이가 지나는 사람들을 위협한다.


여행자들은 글로벌이고 현지인들은 로컬인가? 이 로컬버스는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사설버스에 비해 절반 가격으로 대부분의 현지인이나 가끔 알뜰 배낭족들이 이용한다. 델리에서부터 사설버스만 경험한 탓에 이번에는 인도사람들처럼 로컬버스를 타고 싶었다.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현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어쩜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 같은 야릇한 기다림. 그건 기대감.

대합실 창구 근처는 더 북적이고 있었다. 어찌나 시끌벅적한지 다들 코를 창구 구멍 가까이 닿도록 들이대며 각자 외친다. 헌데, 

“뭐라고요? 표를 살 수 없다고요? 그럼 언제쯤 좌석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거예요? 델리에서 언제 도착할지 알 수없다고요? 11시는 돼야 한다고요?”

 공영버스 스탠드의 오래된 풍경

하는 수없이 공영버스스탠드를 둘러본다. 커다란 개들이 대합실 벤치 아래 퍼져 자고 있다. 인도 어딜 가나 제일 팔자 늘어진 건 개들이다. 하는 일도 전혀 없는 거 같은데 마른 개도 없다. 그저 몰려다니며 어슬렁거리거나 이렇게 누워 자는 것이 고작이다. 인도인은 다시 태어나면 개로 태어나고 싶어하지는 않을까?  


콧수염이 귀여운 중년 인도 아저씨.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더니….

“뭐 하시는 거예요?”
“귀를 청소하고 있어요.”
“그럼 귀 파는 것이 직업이세요?”
“네…. 그럼요.”
“서비스 요금은 어떻게 매기나요?”
“양쪽 귀의 귀지 양에 따라, 적으면 10루피, 많으면 20루피, 청소 후 약을 바르면 35루피입니다. 하하. 마담! 한번 받아보실래요?”
“오! 노노노! 프러브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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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날리 공영버스터미널의 귀청소부 아저씨 ⓒ 신영미


맨발의 슈산보이, 구석에서 보온병 몇 개 놓고 짜이 파는 할머니, 짐 보따리를 잔뜩 머리에 이고 창구직원과 실랑이 하는 아기 업은 아줌마, 밤새 달려왔는지 버스 좌석에 누워 여태 새우잠을 자는 운전사, 버스 차창에 머리를 괴고 지나는 사람들을 무심이 시선만 쫓아다니는 인도 아이들. 그리고 가슴에 불룩한 짐 위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에 취한 사람들, 구석 벤치에 대자로 누운 걸인…. 로컬 공영버스 스탠드에서 빠질 수없는 그림 속의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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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늘 새로운 세계를 동경한다. ⓒ 신영미


‘버스표’ + 마음 다짐 = 렛츠 고!

버스스탠드 앞 중국풍의 자색으로 깔끔하게 단장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옴마니 반메흠’의 스님 독경소리가 낮게 흐르고 있다. 쌈뚝 한 그릇을 주문해놓고 지금의 한가함을 물끄러미 바라다 본다.

‘그런데 레(Lhe)에서 뭘 하지? 그러고 보니 고산증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구나.’

여행에서 정직하게 내 힘으로 걷는 것과 묻어 따라다니는 것은 이렇게 달랐다. 이제는 다시 하나씩 확인하고 챙겨야 한다. 그것이 때론 힘들고 귀찮지만, 그렇게 찾아 가는 길의 끝에서 해가 지고, 그 지는 해를 바라보며 따뜻한 불빛 따라 몸을 누일 수 있는 방에 들어섰을 때 희열 또한 얼마나 컸던가?

다행히 2시 30분발 표를 525루피에 구입했다. 여행은 ‘표’를 끊는 것부터 실질적으로 시작이 아닐까 싶다. ‘표’를 구해야만 여행은 현실의 힘을 얻는다. 버스표를 손에 넣었으니 이미 레에 도착한 것과 진배없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레가 가까워오고 있었으므로 이제부터 마음 가운데 레가 자리 잡을 것이다. 허나 쉽지 않을 터. 킬롱에서 1박 하는, 그러니까 길 위에서 1박2일 40시간을 보내는 긴 버스여행. 얼떨결에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맥간의 상글리라에서 스치듯 만난 적 있는 두 명의 여교사와 두 명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한국 여행자 팀을 다시 만났다. 같은 버스란다. 내심 잘됐다 싶다.
 
고산증에 대비해 미네랄워터 세 통과 과일 그리고 아스피린을 샀다. 이제 돌아가 배낭을 챙겨 곧장 다시 나와야 한다. 공영버스 스탠드는 네루공원에서 가깝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삼림보호구역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 이만한 전나무숲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진한 초록물이 숲에 가득하다.

오! 친구여!

숙소로 돌아오니, 심부름하는 꼬마가 쪼르르 냉큼 다가오더니 어느 한국 여자가 찾아왔더란다. 이 꼬마, 이미 체크아웃하고 떠난 걸로 이야기했댄다. 이런! 정연이닷! 간발의 차이로 어긋난 걸로 알고는 얼마나 낙담했을까? 얼굴은 봐야할 것 아닌가? 언제냐니깐 30분 전이란다. 그렇다면, 아직 있다! 서두르면 만나고 갈 수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 가슴의 맥박수가 빨라지고 호흡이 고주파가 된다.

부리나케 뛰쳐 올라간다. 문들이 활짝 열려있고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  활기를 되찾은 듯 인도 주방장과 주인 대리인의 종종거리는 잰걸음! 저깃다!  정연이닷! 발견의 기쁨이란!

“정!연!아!”
“까약!”
“아앙! 반가워!”
“아이고 야아! 가버린 줄 알았어!”
“어엉엉! 오늘 자기 젤 예뻐 보여!”

우는 건지 웃는 건지 헷갈리는 소리를 내며 부둥켜안고 통통통 뛰면서 깔깔거리다가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을 느끼고는 그제야 법석을 떤 소란을 거두고 서로 팔을 풀고 떨어졌다.

“소개할게. 이 분이 산악팀 대장님!”
“아! 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아침 떠나셨다는 소식 듣고 허탈해 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허허.”
“네. 늦어져서 많이 걱정이 되었어요. 소식을 전할 방도도 없고. 대장님께서 이래저래 힘드셨을 거 같군요.”

정연이가 대신 그간의 일들을 설명한다.

“말도 말아. 네팔에서 트레킹도 너무 힘들었는데 포카라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비가 어찌나 정신없이 쏟아지는지 트레킹 길이 완전히 끊기고 다리가 무너져서 오도 가도 못했어. 비는 사정없이 위에서 찍어 누르지…. 탈진하는 대원도 생기고…. 죽었다 살아 여기 서있는 거야.”
“그랬구나…살아줘서 고맙다 친구야! 하하.”
“그런데, 그런 고생 끝에 낙이라더니, 안나푸르나 정상을 봤다는 거 아니니. 원래 그걸 보기란 신의 뜻이 아니면 어렵다고 하는데 말이야. 갑자기 비구름이 거치고 안나푸르나의 설산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데…대단했어…대단했어.어휴!”

푸르르 실타래 풀리듯 안나푸르나의 설산이 그녀의 눈앞에 그려지고 있나보다. 살다보면, 절대 잊히지 않는 풍경을 만날 때가 있다.

대장님과 정연이에게 혼자 여행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음을 알렸다. 말없이 팔짱끼고 계시던 대장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격려를 해주신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잘 생각하셨어요. 만나자마자 이별이군요. 저희는 내일 이곳 마날리의 쏠랑밸리를 돌아보고 내일모레쯤 레로 올라갈 것 같아요. 일정표에 나와 있는 대로 레에 도착하면 샤힌 G.H 나 레인보우 G.H로 들어갈 겁니다.”
“네. 그럼, 레에서 우리 다시 만날까요. 재밌어요. 각기 가다가 점찍듯이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나는 거요. 제가 두 군데 게스트하우스에 메모 남겨 둘게요.”
“네. 그래요. 그때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회포도 풀고요. 허허.”

여행에서 만난 것은 여행이 끝난 후에 돌아보면 늘 그리운 것들이었다.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지금도 기억 속에 살아있는지! 그래서 나는 이 여행기를 쓴다. 여행 중에 나는 릴레이경주의 바통이었다. 나는 바통이 되어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네졌다. 그렇게 고비 때마다 잘 넘어가도록 도와주고 배려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을 감히 길동무라고 부르고 싶다.

그랬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관계나 형식을 떠나 왜 이리 하나 같이 동무같은지…. 왜 이리 말 한마디, 눈빛 손짓 하나에도 살갑고 애틋한지…. 그 때 대장님의 선한 얼굴과 눈가의 주름살에 걸쳐 흔들리던 미소가 내겐 꼭 그랬다. 비록 몸은 따로 가지만, 마음만은 함께였다.

정연이와 정연이 친구 희진씨와 근처 ‘피자 올리브’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점심을 하기로 했다. 실내보단 정원에 자리한 파라솔 달린 테이블이 좋았다. 햇살이 눈부시게 밝고 정원의 크고 작은 꽃들이 화사하고 발랄하다.

희진씨가 레모나와 고산병에 좋다는 이뇨제 다이아막스 약을 챙겨주며 고산증에 대비해 밥은 평소의 절반만 먹고 물과 과일을 주기적으로 자주 먹으라고 친절히 가르쳐준다. 정연이와 둘이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만, 가.”
정연이는
자꾸 따라 오며,
“조기까지만.”
“조기까지만” 한다.
이제 그만 가라고
돌아서 종종종
짐짓 서두른 체했다.

이제는 뒤에서 자꾸만
“잘 가!”
“잘 가!”
말이 따라온다.
그 말만은 차마 떨치지
못하겠어서 웃으며
데리고 내려간다.

꺾어지는
길 모퉁이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휑뎅그렁하다.

새로운 동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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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지붕에 짐을 부리다 ⓒ 신영미


2시30분 출발이라더니 버스는 도통 뵈지 않는다. 4시가 돼서야 출발한 버스는 판잣집 같은 가옥들과 사과밭을 지나고 전나무산길 따라 부르릉 부르릉 제법 달리고 있다. 가까이에 깎아지른 듯한 전나무숲 계곡을 끼고 저 멀리 보이는 고봉준령 전나무숲이 신비롭다. 잠시 동양의 알프스라는 칭호의 마날리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아쉬움을 곱씹는 사이에 버스는 숲길을 벗어나 거칠고 가파른 누런 흙산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이곳 로컬버스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통로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두 자리, 우측에는 세 자리로 배정되어 있는데 성인남자 셋이 앉기에는 턱없이 비좁아 보인다. ‘우리들’은 운전석 근처에 대략 포진했다.

대진씨는 곧고 원칙주의적인 성격에 갓 군에서 제대해서 팀의 의젓한 맏형노릇을 하고 정혁씨는 막내로서 감초역할을, 연실씨는 여성적인 부드러움으로 침착하게 팀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잘 챙기고, 희라씨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호탕한 웃음으로 어려운 상황을 쉽게 다루는 능력이 있었다. 안정적인 팀으로서의 면목을 갖췄다고나 할까. 

비가 오기 시작한 지 꽤 되어간다. 다들 버스 지붕 위에 실은 배낭을 걱정한다. 방수 커버를 씌웠다지만 저 정도의 비가 이대로 계속 오다간 배낭이 무사치 않을 터다. 꾸불한 에스자형의 비탈길을 오르던 버스가 갑자기 멈췄다. 길가의 흙들이 무너지면서 앞에 가던 버스들의 바퀴가 족족 파인 흙더미에 걸려 전진하지 못한 탓이다.

비가 오는 산중. 굽어내려다 보이는 산들의 깊은 곳에는 비구름이 하얀 눈처럼 쌓여있다. 얼마나 오래 이곳에 정차해야 할까. 모두들 답답했는지 차에서 내려 삼삼오오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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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운무 ⓒ 신영미


길바닥에 서서 어쩌다 보니 대진씨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점점 무르익으며 재밌어지고 있다. 처음엔 여행에 대해, 그리고 점차 꿈에 대해, 그리고 이제는 인생에 대해. 다른 일행들이 궁금했는지 가끔 곁에 다가와서는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있다. 이 친구는 시선이 흩어지지 않는다. 성실하고 진솔한 시간이었다. 아주 드문 일이다.

그와 비탈 언덕을 헤치고 윗길로 이동하니 시야가 확 트이면서 하늘이 크게 열렸다. 잠시 비가 소강상태에 빠진 사이, 구름이 이동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름이 큰 원을 그리고 가운데를 비워두는 사이에 가는 햇살이 얇아진 구름을 뚫고 비춰 내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우리 모두는 사진기를 꺼내 구름과 햇살이 어우러지면서 연출하는 자연의 신비한 장관을 담느라 얼굴마다 웃음꽃이 활짝 폈다.

여행은 이렇듯 순조롭지 못한 상황에서도 뜻밖에 뛰어난 연출자를 만나 그냥 지나쳐 만나지 못했을 어떤 특별한 순간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여행은 그래서 늘 경이롭다. 그래서 여행자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하고 깨어있어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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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에서 탈출하다 ⓒ 신영미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는 신호에 우리 모두는 “와아”하고 신나는 함성소리와 함께 달리는 버스 뒤를 쫓아 힘차게 뛰었다. 맨 뒤 꽁무니에서 뛰어가며 생각한다.

‘신이여!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히말라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다

점점 가팔라지는 길. 버스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서 여행자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 길이란 히말라야의 산을 깎아 겨우 한 두 대 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로, 난간도 없이 바로 옆은 상상불허의 절벽이다. 게다가 노면이 울퉁불퉁하고 경사는 시시각각으로 급하고 커브가 심하게 꺾이는지라 버스의 유연하지 않은 허리로 돌기엔 너무나 불안하다. 약간의 고소공포증 탓에 아스라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즉시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차라리 먼 산과 하늘을 바라보는 편이 백배 낫겠다!’

아무리 아찔한 곡예운전을 밥 먹듯이, 아니 짜 마시듯이 해왔을 우리 인도인 운전사라도 우리를 지옥으로 인도할지 아닐지는 솔직히 알 수 없는 노릇. 

가도 가도 인적 없는 이대로 지구 끝에 도달할 것 같이 황량한 히말라야에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에 버스가 잠시 정차했다. 거칠게 마름질한 시멘트 건물과 허스름한 판잣집 몇 채가 전부인 마을인데 여행자들에게 차와 음식, 잠자리를 제공하는 일이 이들의 생계수단인 모양이다. 우리는 조금은 지친 상태로 가까운 가게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벌써 이른 저녁 무렵 어둠이 조금씩 짙어져 간다. 낮은 천정에 조그마한 백열등 두 개가 유일한 불빛. 백열등 주위만 겨우 형체가 드러나고, 나머지 공간들은 어둠 속에 웅크리듯 내일 아침만을 기다린다. 낡은 나무 침대에 이불이 깔려 있고, 우리가 앉아있는 나무탁자가 삐끄덕거린다. 아늑하고 따뜻하다. 어린 시절 살던 슬라브집의 다락방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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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휴게소 ⓒ 신영미


우리들은 달과 카레 등 인도음식을 먹었다. 일행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마음을 쫙 펴주었다. 그제서야 오랫동안 버스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흔들리는 버스에 혹사당한 몸을 쫙 펴본다.

다시 버스는 어둠 속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한다. 여행자로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 어두운 버스 안에서 듣는 비 소리는 유난히 심란하고 구슬프다. 예정보다 한참 늦은 10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는 킬롱에 도착했다. 해발 몇 미터일까?
#인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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