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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고단한 삶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것은 행운이다.
그렇게 지켜보고도 제대로 효도하지 못하고 사는데 그런 기억도 없었다면 모자간의 정이라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것 같다. 물론 돌이켜 보니까 행운이고, 당시에는 어서 빨리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혜화동, 그 곳에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 곳에 미술작품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낡아 있었다. 다시 채색을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낡아지도록 두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겉모습이 변한다고 그 속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뻔지르르하게 외형만 가꿔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닌 듯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이런 공간들을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삼아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있다.
혜화동 꼭대기,
그 곳에서 바라본 서울은 날씨 때문인지 음울해 보였다.
밤이면 이 음울함이 도시의 불빛 속에 가려지겠지만 깜빡깜빡 졸며 좁은 골목길을 비춰줄 가로등은 여전히 30촉짜리 백열등일 것만 같다.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 그림을 보기 위해 혜화동 골목길로 들어왔고, 한번 혜화동 골목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어머니와 관련된 혜화동에 대한 기억 때문에 작은 열병을 앓았다.
달보다도 더 높은 곳을 오르내려야 했던 사람들, 지금이야 높은 것이 부의 상징이 되어버렸지만 산동네, 달동네야 높으면 높을수록 가난의 상징이 아닌가! 대로변의 혜화동만을 생각하면서 본 그림을 통해서는 달을 낚으려는 것인가 했는데, 계단골목길로 이어진 혜화동을 걸은 후에는 저 낮은 곳에 있는 평지를 낚으려는 것인가 보다 했다. 나무만 숭덩숭덩 베고는 집을 지어 산 모양이 그대로 남아 산동네, 달과 가까워 달동네에 사는 이들에게 평지는 얼마나 선망의 대상이던가! 삶을 낭만으로 살지 못하고 현실로 살아가는 중년의 상념일 수도 있다.
어머니는 내 나이 때 혜화동에서 무슨 꿈을 꾸셨을까?
아니, 자신만을 위한 꿈을 꾸시기는 한 것일까? 자식새끼들에 치여서 오로지 자식새끼들 잘 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왔던 여느 부모들처럼 그 이상의 꿈은 꿀 엄두도 내지 못하신 것은 아닐까?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에 치여 꿈같은 것은 꿀 틈도 없으셨던 것은 아닐까? 놀 줄 모르고,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것을 죄처럼 생각하는 어머니 또래를 보면 나는 슬프다. ‘왜 그렇게 사셨고, 왜 그렇게 사셔요?’라고 묻고 싶지만 그런 질문 자체가 못을 박는 일이다.
날씨가 흐리고 추워서 혜화동 일상을 찍으려는 이들이 많지 않아 나로서는 좋다.
간혹 사진애호가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나 나도 모르게 자꾸만 기종을 비교하는 버릇이 생겨버렸고, 개중에는 사진을 담는 진지함보다는 기계자랑을 하는 이들도 있기에 사진을 찍을 때는 홀로 있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할 수는 없었는지 어느 계단에선가 사진작가인 듯한 여성이 카메라맨들과 함께 녹화를 하고 있었다. 혜화동 일대에 설치된 그림들과 미술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예정인지, 아니면 어느 작가의 이야긴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담는 나에게 “많이 찍었어요?” 다소 방송적인 멘트를 날린다. 순간적으로 “예!”라고 대답하고 골목길 계단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렇게 순식간에 조연이 되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주연(?)에 이용당한 듯해서 억울한 생각(?)이 든다. 속으로 ‘당돌한 계집애’하고는 내 길을 간다.
다시 서울, 그랬다.
종로통은 다시 서울이었다.
오로지 발로 걸어가는 것만 허용하던 계단골목길을 내려온 것이 언제인데 오로지 타이어가 달린 기계들만 달릴 수 있는 길 위에 서 있다. 앞차의 후미등만 바라보며 왜 막히는지 이유도 모른 채 라디오를 듣는다. 좀 유쾌한 음악이 나오든지 아니면 좋은 뉴스가 나오면 좋겠는데 우울한 소식들만 이어진다. 마음 뿌듯한 뉴스를 들어본 적이 꽤 오래 전의 일인 것 같다.
‘왜 이래야 하지?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만 지지리 고생하고, 무슨 일만 터지면 희생자는 늘 없는 사람들이어야만 하지?’
혜화동 골목길로 접어들기 전 나는 교통사고 이후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폐지를 실은 트럭의 운전사였다. 아마도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아이를 친 것 같았다. 아마 트럭을 가지고 일을 하는 와중에도 보이는 대로 폐지를 모아 파는 사람인 듯했다.
그 사고를 목격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술에 약간 취해 리어카에 폐지를 잔뜩 싣고 가는 중년의 남자가 트럭 운전사에게 “에이, 개새끼 얘들을 치면 어떻게, 애들을 치면”하고는 지나간다. 그 소리의 톤은 위로하는 말, 슬퍼하는 말이 아니라 ‘넌 트럭을 가지고 폐지를 모우고 난 리어카를 가지고 폐지를 모우는 경쟁자’라는 비아냥거림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혜화동, 지금껏 내 상상 속에만 머물던 환상은 깨졌다.
내 상상 속의 혜화동은 나지막한 언덕을 닮은 넓은 오르막길 양편으로 이층기와집들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니 평창동 이미지가 내 안에 혜화동 대신 들어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환상, 그것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상이 깨지고 나니 혜화동에 더 정감이 가고, 어머님이 부자들에게 채소나 계란을 내다팔아 우리를 키우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먹을거리를 채워주며 우리를 키웠다 생각하니 어머니의 삶이 더욱 더 눈물겹다. 그나저나 자식들은 효자가 될 수 없는 것인가! 자식새끼들 뒷바라지하느라 헉헉거리며 살아가다보니 어머님의 요즘 마음조차 헤아리질 못하고 살아간다.
덧붙이는 글 | 혜화동 일상을 담았으며 어머니와 관련된 '혜화동과 어머니' 이야기의 마지막 회입니다. 이화동, 낙산동, 혜화동 일대인데 편의상 혜화동으로 표기합니다.
2008.01.13 12:0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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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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