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그러시면 안 돼요... 안 돼요...."

십년 전 그날처럼, 참된 용기 갖고 멋지게 살아봤으면...

등록 2008.01.14 13:40수정 2008.01.1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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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붕어빵을 볼 때마다 그날이 떠오릅니다. ⓒ 문인숙

▲ 붕어빵 붕어빵을 볼 때마다 그날이 떠오릅니다. ⓒ 문인숙

요즘은 붕어빵을 파는 곳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어쩌다 골목 귀퉁이 리어카 위에서 쓸쓸히 누워 손님을 기다리는 붕어빵을 볼 때면 십여 년 전 그날이 불현듯 눈앞에 떠오르곤 합니다.

 

그날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몹시도 추운 날이었습니다.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그 옆에 붕어빵을 굽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아주머니는 그날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셨는지 수저의 손잡이 쪽 조금 넓적한 부분으로 빵을 뒤집어 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빵을 사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앞에는 뒤집다 실패해서 볼품없이 망가진 빵만 수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뒤집어서 잘도 팔던데 어쩌자고 이 아주머니는 하필 저 수저를 가지고 저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혼자 속으로 애가 타서 이제나저제나 빵이 제대로 뒤집히기를 아주머니 손길만 넋을 놓고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신호등이 바뀌고 또 바뀌고…, 몇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늘 시간에 쫓겨 다니는 처지였지만 그날은 도무지 발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한참이나 지났을 즈음 갑자기 차도에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거기! 거기! 샌드위치! 붕어빵! 가방! 빨리 치워!!!!!!!"


단속반인 듯한 두 남자분께서 차 안에 앉아 마이크로 소리를 치셨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주머니는 빵 뒤집는 일에 몰두해서 그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꼼짝도 않네! 꼼짝도 않아!"


와르르 차 문이 열리고 두 남자분께서 내리더니 순식간에 아주머니의 리어카 위의 파라솔을 걷어서는 차에 던져넣고는 매정하게 앞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제야 화들짝 놀란 아주머니는 사생결단을 하고 달리는 트럭을 좇아갔습니다. 그야말로 비호처럼 달려가서는 기여히 트럭 뒷부분을 한 손으로 잡고 파라솔을 끄집어내 보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차에서 한 분이 내려오시더니 아주머니 손을 후려치면서 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처럼 외쳤습니다.


"아저씨! 그러시면 안 돼요……, 안 돼요…."

 

그 말만 되풀이 되풀이만 하며 서 있었습니다. 차도에 서 계신 아주머니 옆으로 수많은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스쳐 지나갔습니다. 남자분은 손을 탁탁 털면서 차에 오르고 차는 앞을 향해 미끄러져 갔습니다.

 

오후 시간이라 하교하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그 모습을 망연자실해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남학생 두 명이 책가방을 가로수 밑에 가만히 놓더니 차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 날렵하게 차에 뛰어올라가서는 파라솔을 집어 인도를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사뿐히 내려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가방을 집어들고 가던 길을 향해 유유히 걸어갔습니다.

 

십여 년 전 그날, 눈물겨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아! 나도 저 두 남학생처럼 멋지게 한 번 살아봤으면…."

 

모르긴 해도 아마 그 일은 공무방해 죄 같은 것으로 순경이 잡아갈 것도 같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역을 한 번만이라도 해 보면서 남은 삶을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세월은 그로부터 덧없이 흘러 흘러 여기까지 나를 데리고 왔습니다. 세월은 나에게, 찬바람 휘몰아치는 이 한 세상 살다 보면 어느 땐 붕어빵을 구워 팔아야 할 때도 오고, 또 어쩌다 보면 붕어빵 굽는 아주머니의 파라솔을 걷어치워야 할 때도 온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건너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강물 같은 세월을 사는 지금, 내 모습을 뒤돌아봅니다.

 

난생처음 붕어빵을 구워 파는 서글프고도 용감했던 그 아주머니 옆에, 어쩔 수 없는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이를 악물고 파라솔을 걷어야 하는 그 남자들 옆에, 달리는 차에 뛰어올라 측은한 한 여인의 손을 들어주었던 용감한 두 남학생 옆에, 그를 가운데 아직도 그저 울먹울먹 그러시면 안 돼요, 안 돼요 속으로만 외치며 발만 동동 구른 용기 없는 나 자신이 변함없이 그대로 서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전 옛날 그때, 젊고 푸른 두 남학생처럼 참된 용기를 가지고 멋지게 한 번 살아보고픈 속마음은 그대로 간직한 채….

2008.01.14 13:40 ⓒ 2008 OhmyNews
#붕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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