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일을 버텼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희망천막투어1] 홈에버 중동점 조합원들을 만나다

등록 2008.01.15 09:08수정 2008.01.1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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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이미 200일을 넘겼으며 사태의 실마리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 200일이 넘도록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오직 이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천막투어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지난 1월 13일 일요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사랑의 교회'를 찾았다. 예배가 막 끝났는지 교회의 안팎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 곳 '사랑의 교회' 정문 앞에는 작년 말부터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들이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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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일반노조 천막 이랜드 일반노조가 지난달 말부터 사랑의 교회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이재덕

▲ 이랜드 일반노조 천막 이랜드 일반노조가 지난달 말부터 사랑의 교회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이재덕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
 
천막안으로 들어서자마자 4명의 누님들이 반겨주었다. 홈에버 중동점 조합원인 나인순(49), 유명희(45), 유은자(45), 황명순(43)씨였다. 이번 겨울 들어 제일 춥다는 이 날, 그들은 전기장판과 이불 그리고 2대의 전기난로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이불 속으로 끼어들었고 그렇게 우리들의 수다는 시작되었다.
 
현재 이랜드 일반노조는 지속적인 투쟁을 위한 자금과 조합원들의 생계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1월부터는 조합비를 인상할 예정이며 조합명의로 채권도 발행할 계획이다. 또한 재정사업으로 설날특판행사를 시작했다. 실제로 천막의 이곳저곳에는 설날특판행사 포스터가  붙어있었으며 전농, 민주노총, 민주노동당등의 인터넷게시판에도 재정사업이 소개되어 있다.
 
누님들은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부담하는 돈들이 농성하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여주와 부여농민회가 지지방문을 해주고 교회교인들도 응원해 주신다고 한다. 이에 대해 누님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우리가 (그분들께) 빚을 진 거지요"
"이들이 우리에게 해준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은 도와야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지하철 파업이나 버스파업할 때 짜증내곤 했는데 이젠 생각이 바뀌게 되었어요."
"전단지 같은 것도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이젠 다 받아야지."
 
이런 이야기가 오가던중 천막안의 누군가가 "천막은 노동자의 학교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천막안은 금세 토론장이 되어버린다.
 
"아냐,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지."
"투쟁이 노동자의 학굔가?"
 
내가 '투쟁이 노동자의 학교다'라고 메모하는데 이를 보던 인순씨가 나에게 한마디한다.
"아니! '투쟁'이 아니라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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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에버 중동점 4총사 누룽지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왼쪽부터 유명희,나인순,홍명순, 유은자씨. ⓒ 이재덕

▲ 홈에버 중동점 4총사 누룽지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왼쪽부터 유명희,나인순,홍명순, 유은자씨. ⓒ 이재덕
 
200일 투쟁동안 힘들었던 일들
 
4분의 누님들, 200일동안 투쟁하면서 힘들었던 일들도 많았다고 했다.
 
"용역들을 동원해서 우리를 막는데 불광동에서가 제일 무서웠어요. 우리들은 인원이 많았는데도 그 사람들이 집에 가는 우리를 지하철까지 쫓아와서 때리기도 하고…."
"원래는 물대포를 차 1대로 쏘는데 어느 날인가는 차 2대를 가지고 와서 쏘는데 이 언니 허벅지에 정통으로 맞았어요."
 
"그래도 정말 이랜드에서 악랄하게 나온 건 구사대로 점장들을 우리앞에 내세울 때였어. 파업초기에 우리가 다 좋아했던 예전 점장님이 우리 앞에 구사대로 있는 거야. 정말 못할 짓이지. 우리들이 그 분하고 어떻게 싸워?  우리가 앞에 가서 '점장님, 저리 가세요'라고 말했는데 점장님은 아무 말 못하고 계시더라고…. 그 사람은 회사에서 시키면 할 수밖에 없잖아."
 
이때 명희씨가 한마디 한다.
"근데 그 고생하고도 왜 자꾸 살이 찔까? 음식 싸와가지고 나눠먹고 해서 그런가? 사실 불쌍하게 보여야 되잖아요. 근데 살이 쪘네. 그래도 우리 고생 많이 해요."
 
천막 안의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는 천막밖 사람들이 오해하지는 않을까 금세 걱정한다. 밖의 사람들이 웃음소리를 듣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뭐 저래?"라고 할지도 모른다며 자책한다.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은?
 
인순씨는 팀에 구심점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 팀은 끝까지 투쟁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는 구심점이 되는 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 분들 또 다시 유머감각 발휘하신다.
 
"그래, 그럼 하나둘셋 하면 손가락으로 구심점같은 사람을 가리키기로 하자. 누가 많이 표를 얻나보자"
"하나, 둘, 셋!"
인순씨는 명희씨를 찍었다. 명희씨는 은자씨를 찍었다. 명순씨도 은자씨를 찍는다.
 
"은자씨 출석율도 우리중에 최고고요. 저 분(유은자씨)이랑 친하면 구속도 더 많이 돼요"라는 명희씨의 말에 또 다시 사람들은 낄낄거린다. 다시 몇 차례의 농이 오가고 난 뒤 명순, 인순, 명희, 은자씨는 이런 친구들이 옆에 있어 7개월 동안 (투쟁)해 올 수 있었다며 빙그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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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에버 중동분회 노동자들이 사랑의 교회앞에서 교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다. ⓒ 이재덕

홈에버 중동분회 노동자들이 사랑의 교회앞에서 교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다. ⓒ 이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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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에버 중동분회 노동자들이 사랑의 교회앞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다. ⓒ 이재덕

홈에버 중동분회 노동자들이 사랑의 교회앞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다. ⓒ 이재덕
 
그래도 언제나 가족생각
 
고2가 되는 딸과 고3이 되는 아들이 있다는 유은자씨는 이곳에 찾아오거나 집회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언제나 고맙고 때로는 걱정도 든다고 말했다. "그 친구들 부모님들이 걱정을 할 것 같아요. 저도 제 자식들은 노동운동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 집회에 오면 부모님은 알고 계시냐고 물어보기도 해요.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홍명순씨는 논술을 위해 조선일보를 구독하다가 이랜드 파업투쟁에 대해 부정적으로 쓰인 기사들을 보면서 무서웠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 기사를 보고 엄마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힘들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이랜드노조투쟁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으면서 엄마가 옳은 일 하는 거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그녀는 그런 남편에게 고맙고 집에 자주 있지 못해 미안해 했다.
 
명순씨는 중학생 딸의 수업이야기도 했다. 딸의 수업시간에, 전교조 소속 선생님이 이랜드 투쟁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우리반에도 여러분 친구의 어머니가 이 힘든 일들을 하고 계신다'고 설명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딸애한테 듣고는 너무나도 자신이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딸애도 자랑스러워 했어요. 그러니 나도 자식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투쟁을 끝까지 해야 해요." 
 
나인순씨도 대학졸업반인 딸에게 인정받는것 같아 흐뭇해한다.
"내가 힘들어서 그만둘까? 라고 하면 딸이 '엄마는 옳은 일 하는거니까 몸조심하고 힘내!' 라고 말해요." 
그러자 그녀의 옆에서는 누군가가 "나인순씨! 또 콧소리내며 혼자 우아하게 말하네!"라며 농담을 시작한다.
 
그들의 힘은 유머감각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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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일기 홈에버 노동자들은 팀별로 24시간 천막을 지키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공책에 채워나가고 있다. 이곳에서도 그들만의 유머를 느낄수 있었다. ⓒ 이재덕

▲ 천막일기 홈에버 노동자들은 팀별로 24시간 천막을 지키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공책에 채워나가고 있다. 이곳에서도 그들만의 유머를 느낄수 있었다. ⓒ 이재덕
 
누님들이 천막일기를 나에게 내밀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으니까 읽어보고 방명록에 글도 남겨달라고 했다. 그런데 천막일기 읽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하다. 페이지 곳곳에서 홈에버 노동자들의 유쾌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이미 시계는 저녁 9시를 가리킨다. 그녀들과의 유쾌했던 대화 때문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녀들의 작별인사를 받으며 천막을 나왔다. 초짜시민기자의 방문이 그녀들에게도 즐거웠던 경험이었나 보다. 그녀들의 상기된 목소리가 천막밖으로 흘러나오니 말이다.  
 
남들이 오해할까 걱정도 약간 되지만 "혹시 200일이 넘도록 투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려움 속에서도 잃지 않은 저 유머감각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명박 대통령당선자는 "노동자들이 자원봉사하는 기분으로 자세를 바꿔야한다"고 했고 이랜드-뉴코아 노조원들은 14일에 태안으로 자원봉사를 간다고 한다. 태안을 기름바다로 만든 기업, 표를 위해서 봉사하는 시늉하기 바빴던 정치권, 자신들의 생계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자원봉사를 가는 이랜드-뉴코아 노조원들 중에서 진정 자원봉사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있는 사람은 누굴까? 자격조차 안되는 사람은 말을 삼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2008.01.15 09:0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명박 대통령당선자는 "노동자들이 자원봉사하는 기분으로 자세를 바꿔야한다"고 했고 이랜드-뉴코아 노조원들은 14일에 태안으로 자원봉사를 간다고 한다. 태안을 기름바다로 만든 기업, 표를 위해서 봉사하는 시늉하기 바빴던 정치권, 자신들의 생계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자원봉사를 가는 이랜드-뉴코아 노조원들 중에서 진정 자원봉사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있는 사람은 누굴까? 자격조차 안되는 사람은 말을 삼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랜드 일반노조 #천막농성 #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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