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 장독대에서 퍼먹던 환상적인 그 맛!

우리의 전통음료 식혜 만들기

등록 2008.01.16 09:08수정 2008.01.1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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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기름 손품이 많이 드는데 한 됫박에 이천원이라니 너무 싼 것 같았다 ⓒ 이현숙


장날 손수레에 실린 엿기름을 보았다. 가격도 싸다. 한 되에 이천원이다. 엿기름을 사서 들고오는 내 마음은 어느새 추운 겨울날 장독대 위에 놓여 있던 식혜 그릇에 가 있었다.


살얼음이 살짝 얼어 있던 식혜. 뚜껑을 열어 보면 언제나 밥알은 밑으로 가라앉아 있고 맑은 물만 보였다. 요때다 싶어 국자로 맑은 물만 떠다가 부엌에서 마셨다.

그 차가운 달콤함에 어깨를 흔들며 진저리를 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중에 엄마는 밥알만 남은 식혜에 설탕물을 끓여서 부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먹어야 하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식혜국물은 맛있는데 밥알은 별로다. 지금이야 아깝다고 생각해 국물이건 밥알이건 열심히 먹어주지만.

엿기름은 겉보리가 주재료다. 어린시절 집에서 엿기름 기르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키워 본 적은 없다. 그래서 겉보리를 알맞게 싹을 틔운 다음 말려서 비비고 맷돌에 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사실 내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이것도 꽤 손품이 드는 일인데 한 됫박에 겨우 이천원이라니 참 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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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기름 물 엿기름 물 만드는 과정. 엿기름을 물에 푹 불였다가 주물러서 찌꺼기는 꼭 짜서 내버리고 체에 받혀 그릇에 담아 놓는다 ⓒ 이현숙



엿기름을 집에 가져와 당장 물에 담갔다(사온 것에 반 분량). 2-3시간 담가놨다가 손으로 주물러 빤 다음 찌꺼기는 꼭 짜서 버리고 나머지는 체에 걸러 엿기름 물을 만든다. 엿기름 물은 6시간 이상 그대로 놔둔다. 그래야 엿기름의 하얀 앙금이 밑으로 가라앉아 윗물을 따르기가 쉽다.


쌀을 씻어서 전기 밥솥에다 밥을 안친다. 이때 물을 조금 넣어 된밥을 해야 나중에 밥알이 탱글탱글하게 남는다. 밥이 다 되면 밥에다 엿기름 물을 사르르 따라 붓는다. 말간 물만 넣어야지 잘못해서 뿌연 물이 들어가면 식혜 색깔이 우중충해진다.

밥알을 골고루 풀어서 엿기름 물과 잘 섞이도록 한 다음 밥솥 뚜껑을 덮는다. 밥알이 삭는 시간은 보통 4-6시간 걸린다. 중간쯤 열어 봐서 잘 안 삭는 것 같으면 설탕을 좀 넣어 섞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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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 삭히는 과정 뜨거운 밥에다 엿기름 물을 부어 잘 풀어준 다음 뚜껑을 덮어 4-6시간 놔둔다. 밥알이 10알 정도 떠오르면 다 삭은 거다 ⓒ 이현숙



밥알이 열알 정도 떠오르고 가라앉아 있는 밥알을 손으로 비벼 봐서 알맹이가 약간 남았다 싶을 때 가스렌지로 옮겨 끓인다. 끓기 직전 밥알을 한 국자 정도 건져 놓고 식성에 따라 설탕을 알맞게 넣는다. 건져 놓은 밥알은 찬물로 여러번 헹구어 물에 담가 놓는다. 식혜는 끓이다가 넘기가 쉽다. 끓을 때까지 잘 지켰다가 한소끔 끓고 나면 불을 줄여서 조금 더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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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 밥솥에서 다 삭은 것을 가스렌지로 옮겨 끓인다. ⓒ 이현숙



추운 겨울날 어른들은 뜨거운 식혜를 좋아하셨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꼭 식어야 먹었다. 식혜가 장독대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어른이 되고 알았다. 겨울이라도 부엌은 따뜻한 편이었다. 거의 명절 무렵이나 잔치에만 식혜를 하는데 그럴 때는 부엌에서 음식을 많이 해 복잡하기도 하고 온도도 올라가게 마련이다. 더구나 식혜는 조그만 따뜻해도 쉰다. 오죽하면 오뉴월 식혜맛 변하듯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 식혜는 우리 어릴 적 자연 냉장고였던 장독대에다 보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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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 차게 식은 식혜를 유리 볼에 담고 준비 해 놓은 밥알을 띄운 다음 잣 몇 알을 얹어 손님 상에 놓는다. ⓒ 이현숙



하지만 우리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아무리 추워도 살얼음 낀 식혜는 가히 환상이었다. 손님 상에야 유리 볼에 담고 건져놓은 밥알을 띄운 다음 잣 몇 개를 올려 내놓았지만, 우리는 심심하면 뒤란에 있는 장독대로 그릇을 들고 가 퍼먹었다. 그 맛을 요즘의 어떤 청량음료에 비할까?
#식혜 #엿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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