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 앞에 위치한 달력.촌사람 바보 만드는 새로운 달력. 위의 달력과 비교하면 1월 1일의 위치가 다르다.
강기희
월요일이 앞에 있는 달력은 나 같이 출근할 곳이 없는 사람이나 주 5일제를 실시하지 않는 중소기업 노동자, 요일이 따로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건설 잡부, 파트타임 노동장 등은 사용할 이유가 없는 달력인 것이다. 월요일이 앞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였다. 어제 아침의 일이다.
"어머이, 오늘 날도 추운데 장터에 나가지 말지." 한파주의보까지 내렸다는 소식에 어머니가 걱정된 아들이 한 말이다.
"오늘이 장날이냐?""응, 오늘이 수요일(17일)이던데.""그래? 난 장날이 내일인 줄 알고 준비도 안했는데."
어머니께서 손을 펴 음력 날짜를 꼽아보더니 "뭔 장이 나흘만에 돌아오냐?" 했다. 아들은 "나흘?"하며 달력을 다시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수요일에다 17일이니 정선 장날이 맞았다.
"어머이, 장날 맞는데?""그래? 그러면 나가봐야지.""아이참, 오늘은 장에 나가지 말라니까." "지난 번 장에도 눈 때문에 못 나갔는데 또 쉬면 어쩌냐.""길이 빙판이라 차도 못 댕겨."아들은 장터에 나가겠다는 어머니와 잠시 옥신각신 했다. 그리곤 "정 가겠다면 택시라도 타고 가던지"하고는 방으로 왔다. 집에서 장터까지는 택시비 1만원. 추위에 떨며 하루를 꼬박 장터에 있다 해도 만원 벌이를 못하는 요즘이고 보면 어머니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촌사람 바보 만드는 새로운 달력장날이라고 우기긴 했지만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아들은 다시 달력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오늘은 수요일이 맞았다. 달력을 자세히 살피던 아들의 눈에 수요일이라고 알았던 날에 나무 목(木)이라는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무슨 달력이 월요일이 맨 앞에 있담. 그렇다면 장날은 내일?'아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머니께 오늘이 장날이 아니고 내일이 장날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일이 장날인 것 같은데 자꾸만 우기니. 배웠다는 놈이 어찌 저모양일까.""거참, 이상한 달력 때문에 졸지에 바보되네."어제 아침, 월요일이 앞 자리에 있는 달력 때문에 아들은 어머니께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새삼 평생 달력 한 번 보지 않고도 장날이나 제사날, 손자들 생일까지 알아내는 어머니의 능력에 놀라워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달력 하나를 아궁이에 집어 넣었다.
촌사람에게 주말과 휴일이 어디 있으며 주 5일제 근무는 가당치도 않다. 그러하니 나 같은 사람에겐 그저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달력이 제격이다. 쉬는 날이 따로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에게 월요일로 시작되는 달력을 보는 것은 화요일을 월요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밖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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