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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08년 봄, 아저씨의 편지를 받은 지 11년이 되어 갑니다. 쌀쌀했던 추위는 가고, 어느새 나무에는 벚꽃이 피고 있습니다. 그 당시, 풍선을 날리던 그곳 아파트 앞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문득, 이맘때 제 풍선을 받고 답장해 주셨던 아저씨의 편지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한참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겨우 편지가 가득 담긴 상자 안에서 빛바랜 아저씨의 편지를 찾아냈습니다. 오랜만에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아주 새로웠습니다.
아쉽게도 아저씨께서 받으셨을 편지에 제가 무엇을 썼는지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당시 풍선을 띄워 보낸 구체적인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풍선 편지를 띄워 보낸 그날은 제가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가기 하루 전이었습니다. 낯선 땅 미국에 잘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다 같이 회식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어렸던 저는 그곳에서 어린이들에게 주는 풍선을 받았습니다.
풍선 편지를 보내게 된 계기는 참으로 엉뚱했습니다. 식당에서 돌아온 동생과 저는 할머니 댁 밖에서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실수로 제 풍선을 하늘로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저는 동생에게 날려보낸 풍선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풍선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풍선 편지에 풍선을 찾아달라고 적으면, 편지를 본 사람이 실수로 날려보낸 풍선을 찾아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풍선 편지를 띄우는 일에 잔뜩 신이 난 저는 동생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얀 풍선과 자그마한 편지를 준비한 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당시 하늘은 예쁜 보랏빛이었습니다. 저는 제 소개와 주소를 쓴 편지를 풍선 끝에 매달고 하늘에 날려보내기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식당에서 풍선을 받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풍선은 생각처럼 하늘로 잘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몸이 무거워 자꾸 가라앉기만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답답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편지를 동그란 풍선에 붙여 날려보았습니다.
그 방법은 상당히 성공적이었습니다. 풍선은 하늘 높이 떠올라 바람을 타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사라지는 풍선을 지켜보았던 그날 밤, 저는 풍선에 붙인 편지를 발견할 누군가를 생각하며 달콤한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저는 미국으로 떠났고, 며칠 뒤 할머니께서 미국으로 보내신 우편물과 함께 아저씨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당시 아저씨의 편지를 받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풍선에 띄워 보낸 편지에 누군가가 실로 답을 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보내신 분은, 주소가 대부분 한자로 쓰여있어 연세가 높으신 분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시던 20대 후반의 젊은 '총각'이셨습니다. 아저씨의 편지는 '풍선 꼬마 받으시고'란 서두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아저씨는 눈꽃이 날리는 어느 봄날, 풍선을 띄워 보낸 곳으로부터 100m가량 떨어진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제 편지를 발견하셨습니다. 아저씨께서는 풍선이 더 멀리 날아가지 못해서 안타깝다고 하셨지만, 저는 제 편지를 발견하고 답장을 해주신 분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재건축 현장에서 일하시느라고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 아저씨께서는 어린이의 동심을 지켜주고자 손수 펜을 들어 편지를 써주시고 빠른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지금도 저는 아저씨의 정성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는 사람들과 풍선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저씨, 11년이 지난 지금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습니다. 아저씨께서 일하시던 재건축 현장에는 튼튼한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이미 어른이 되었습니다. 아저씨도 그 당시엔 '아저씨'가 아니셨겠지만 이제는 정말로 아들 딸을 둔 '아저씨'가 되어 계시겠죠.
안타깝게도 시간은 우리의 모습만 바꿔놓은 것이 아니라 제 생각까지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어느새 동심을 따르던 때를 지나 동심을 추억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편지'라는 것도 인터넷과 이메일에 익숙해진 지금의 제게는 과거의 기억들을 되짚어보는 옛 종이 더미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시는 좋은 아저씨이자 아버지로 남아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면부지인 '풍선 꼬마'의 동심도 지켜주셨으니까요.
지금 아저씨께서는 11년 전의 일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는 알 수 없어도, 이 기억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아이들에게 좋은 아저씨,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세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08.04.11 18:1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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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에 띄워보낸 편지... 공사장에 가 닿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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