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어야지

[신라 불교 500년의 역사가 경주 남산에 있다] ⑧ 용장사의 보물들

등록 2008.01.21 10:33수정 2008.01.2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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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바위로 해서 오르는 금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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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능선의 상사바위 ⓒ 이상기

금오산 능선의 상사바위 ⓒ 이상기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지나 비교적 가파른 길을 오르면 상사바위에 닿는다. 상사바위는 금오산을 오르는 마지막 능선 상에 있어 이곳에 오르면 방금 지나온 마애불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남산 서쪽의 들판과 산을 아주 잘 조망할 수 있다. 한때 수운 최제우 선생이 이곳 상사바위에 머물면서 수도를 했다고도 한다. 조선 초 금오산 남쪽에 김시습 선생이 머물렀다면, 조선 후기에는 최제우 선생이 금오산 북쪽에 머물렀다. 인물이 산을 아는 건지 아니면 산이 인물을 불러들이는 건지?


상사바위에 오르면 산행의 방향이 동쪽에서 남쪽으로 바뀐다. 이곳에서 금오산 정상까지는 완만한 능선이다. 흙으로 이루어진 평탄한 길을 약 20분 정도 걸으면 금오산 정상에 도착한다. 이번 남산 산행에서 벌서 두 번째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약수골로 오른 첫 번째에 비해 코스가 길고 문화재가 많아 훨씬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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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 가기 전에 오른 대연화대 ⓒ 이상기

용장사지 가기 전에 오른 대연화대 ⓒ 이상기


금오산 정상에서 우리는 남쪽의 용장사지를 거쳐 용장골로 하산할 예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깐 남산 순환도로를 지나야 한다. 이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난 샛길로 가면 용장사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잠깐 대연화대에 들른다. 대연화대는 여러 개의 바위들이 연꽃처럼 삐죽삐죽 솟아올라 있는 바위들로 남산 동쪽으로의 조망이 좋은 곳이다.


가까이 남산리 들판과 통일전 지역이 내려다 보이고, 왼쪽으로 조금 멀리 경주 시내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 조금 고개를 들면 남산과 토함산 사이에 누런색 들판이 보이고, 토함산 아래 자리 잡은 불국사 지역이 보인다. 경주 사람들이 남쪽으로 갈 때는 남산의 좌우를 거쳐 가야 하는데, 동쪽으로 가면 울산으로, 서쪽으로 가면 언양을 거쳐 양산으로 가게 된다.

 

용장사 3층석탑을 볼 때의 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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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 본 용장사 3층석탑 ⓒ 이상기

위에서 내려다 본 용장사 3층석탑 ⓒ 이상기

 

남산 순환도로에서 용장사지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흙길이 사라지고 다시 바위길이 시작된다. 바위들이 많으면 암릉미는 있지만 답사에는 조금 부담이 된다. 한 오분 정도 걸으니 능선의 정상에 서게 된다. 앞을 바라보니 은적골 건너편으로 남산의 최고봉인 고위산(494m)이 보이고, 발 아래로 용장사지 3층석탑(보물 제186호)이 보인다. 이 탑을 보려면 왼쪽으로 바위를 돌아 내려가야 한다.


바위를 내려가니 비교적 가파른 경사지 위에 천년 풍상을 견뎌온 3층석탑이 우뚝 솟아있다.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래 기단을 삼고 그 위에 1층의 기단을 세운 다음 3층의 탑을 쌓아올렸다. 층마다 몸돌 위에 지붕돌이 얹힌 형태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한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1층의 몸돌의 높이가 높은데 비해 2, 3층 몸돌의 높이는 낮아 안정감이 있지만, 체감비율이 갑자기 떨어져 미적 감각은 조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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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올려다 본 용장사 3층석탑 ⓒ 이상기

아래에서 올려다 본 용장사 3층석탑 ⓒ 이상기


지붕돌 밑면의 층급받침이 4단이고, 처마는 사면 끝에서 약간 들려 우리 건축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탑의 상륜부가 없고 지붕돌 일부가 깨져 완벽한 아름다움이 조금은 사라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장사지 3층석탑은 남산이라는 거대한 기단 위에 세워진 하늘 아래 첫 번째 탑으로 남산 제일의 탑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삼륜대좌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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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륜대좌불 ⓒ 이상기

삼륜대좌불 ⓒ 이상기

 

탑을 보고 또 바위를 한 굽이 돌아 아래로 내려가면 조금 평평한 공간에 삼륜대좌불(보물 제187호)이 있고, 한쪽 벽으로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이 조각되어 있다. 삼륜대좌불은 원형의 대좌가 세 개 있고 그 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공식 명칭은 용장사곡 석불좌상이다. 둥근 형태의 대좌, 이것은 초기 불교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유가종(瑜伽宗)의 조사 스님인 대현(大賢)이 8세기 전반 남산 용장사에 살았다. 당시 절에는 미륵장육상이 있었다. 대현스님이 이 장육상을 돌면 삼륜대좌 위에 앉은 부처님도 스님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옛날에도 탑돌이처럼 숭배 대상을 따라 돌면서 기도하는 의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좌대가 둥글기 때문에 그것이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은 대현스님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시에 담았다.

 

남산의 불상을 도니 불상도 따라 얼굴 돌려        遶佛南山像逐旋
청구(대현스님)의 불교가 다시 중천에 떠올랐네. 靑丘佛日再中懸
궁중 우물물 솟구치게 한 것이                         解敎宮井淸波湧
향로 한 줄기 연기에서 시작될 줄 누가 알리.      誰識金爐一炷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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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륜 위에 앉은 부처님 ⓒ 이상기

삼륜 위에 앉은 부처님 ⓒ 이상기

 

궁중의 우물물을 솟구치게 한 일화는 대현스님의 신통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대현 스님은 슬기롭고 언변이 뛰어나며 정밀하고 민첩하며 판단과 분별력이 뛰어난(惠辯精敏決擇了然)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후진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용장사에는 미륵장육상으로 알려진 삼륜대좌불만 남아 옛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장육상이라고 하면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5m나 되는 큰 부처님이다. 그러나 미륵좌상의 높이는 머리가 있는 것으로 가정한다고 해도 2m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삼륜대좌불 전체의 높이를 생각해서 장육상이라 부른 것 같다. 이 앉은 부처님은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는데, 매듭이 있는 가사와 앉은 자리 밑으로 흘러내린 천의 접힌 표현이 특히 아름답다.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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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여래좌상 ⓒ 이상기

마애여래좌상 ⓒ 이상기

 

삼륜대좌불의 북쪽 바위의 벽면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약한 돋을새김이어서 입체감이 느껴진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에 긴귀, 꾹 다문 입술 등으로 인해 조금은 근엄해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온화한 미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양 어깨에 걸친 가사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또 옷이 왼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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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새긴 대정 12,13년 명문 ⓒ 이상기

바위에 새긴 대정 12,13년 명문 ⓒ 이상기


왼쪽 어깨 바깥 부분에 태평(太平) 2년 8월이라는 글자 등 10여자가 보인다고 하는데 확인이 어렵다. 또 태평이라는 연호도 언제인지 분명치 않아 이 불상의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8세기 후반경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작품의 제작연대와는 다른 기록이 이 큰 바위를 돌아 서쪽면에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이곳에 있는 세 개의 보물을 찾아 복원한 이야기다. 조선총독부에서 1923년(大正 12)에 이들을 발견하여 1924년 복원했다고 적혀 있다.

           
3층석탑과 마애불 그리고 탑과 부처가 결합한 삼륜대좌불, 이들이 용장사라는 한 공간에 모여 있다. 높이로 따지면 3층석탑이 가장 높은데 위치하고 마애불과 삼륜대좌불이 그 아래에 있으며 용장사가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 특이한 절의 구조다.

 

이들은 금오산의 바위와 공간을 잘 이용해 만든 자연친화적인 구조물들이다. 대현스님과 매월당 김시습이 거쳐 가면서 한때 이름을 날렸던 절, 그러나 지금은 등산객과 답사객만이 찾는 절이 되고 말았다. 탑과 부처가 가지는 종교성은 멀리 사라지고 문화유산이 가지는 예술성만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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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 세 보물이 한 사진 안에 있다. ⓒ 이상기

용장사 세 보물이 한 사진 안에 있다. ⓒ 이상기
2008.01.21 10:33 ⓒ 2008 OhmyNews
#용장사 #용장사 3층석탑 #삼륜대좌불 #『삼국유사』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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