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몸은 돌이 되고 혼은 새가 되었네"

[여행] 박제상의 아내와 딸의 슬픔이 깃든 망부석과 은을암

등록 2008.01.23 17:19수정 2008.01.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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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치술령 망부석에서 바라보는 동해 치술령 망부석에서 동해 쪽을 바라보면 바다 위에 떠서 오가는 배가 선명하게 보인다. 울산 시가지 한복판을 흐르는 태화강, 울산 항구, 공장 굴뚝에서 오르는 연기도 뚜렷하게 보인다. 박제상의 아내는 여기서 남편의 무사 귀환을 애타게 기다렸다.

치술령 망부석에서 바라보는 동해 치술령 망부석에서 동해 쪽을 바라보면 바다 위에 떠서 오가는 배가 선명하게 보인다. 울산 시가지 한복판을 흐르는 태화강, 울산 항구, 공장 굴뚝에서 오르는 연기도 뚜렷하게 보인다. 박제상의 아내는 여기서 남편의 무사 귀환을 애타게 기다렸다. ⓒ 정만진



망(望)은 희망, 소망, 대망 등에 쓰이는 글자이니 '기다림'을 뜻한다. 부(夫)는 부부, 부군, 부창부수 등에 쓰이는 글자이니 '지아비'를 뜻한다. 석(石)은 석공, 비석, 대리석 등에 쓰이는 글자이니 '돌'을 뜻한다.


그렇다면 망부석(望夫石)은 '지아비를 기다리는 돌'을 뜻한다. 돌이 남편을 기다린다? 문장의 주요 성분인 주어, 목적어, 서술어가 두루 잘 갖추어져 있고, 그 배치도 순서를 잘 지켜 놓여 있지만, 아무래도 옳은 문장은 아니다. 망부석은 남편을 기다리는 돌이 아니라,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끝내 죽어 돌이 되고 만 여인의 한이 깃든 애절한 전설의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망부석은 흔히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촌에 있다. 선박 제조술이나 항해술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던 지난 세월일수록 그만큼 고기잡이는 위험한 일이었던 까닭이다.

한글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노래 '정읍사'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의 심정을 애틋하게 전해주고 있으니 비록 돌이 아니라 말로 전해지고 있지만 그 역시 망부석임에 틀림이 없다.

전쟁이 많았으니 죽은 지아비도 많았을 터. 신라 진평왕 시절 아버지 대신 국경으로 3년간 수자리(병역의 의무) 살러간 청년 가실(嘉實)을 기다리며 정표로 반쪽씩 나눠 가진 거울을 3년 지나 6년이 되도록 날마다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설씨녀의 마음 또한 그 누가 망부석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a 망부석 아래에서 위로 쳐다본 망부석. 비탈이 심하고 나무가 많아 사진에는 크고 높은 망부석의 절반도 채 잡히지 않았다. 사진은 경주 망부석인데 350m 가량 더 가면 울산 망부석이 있고, 다시 100m를 가면 박제상의 아내와 딸이 떠 마시며 연명했다는 샘(참새미, 일명 망부천)이 있다.

망부석 아래에서 위로 쳐다본 망부석. 비탈이 심하고 나무가 많아 사진에는 크고 높은 망부석의 절반도 채 잡히지 않았다. 사진은 경주 망부석인데 350m 가량 더 가면 울산 망부석이 있고, 다시 100m를 가면 박제상의 아내와 딸이 떠 마시며 연명했다는 샘(참새미, 일명 망부천)이 있다. ⓒ 정만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망부석은 치술령에 있다. 치술령이 유명한 것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부전가요(不傳歌謠, 가사가 전해지지 않는 노래)에 '치술령곡'이 있다는 것을 배운 까닭이다. 또 신라 때 왕의 동생을 구하러 일본에 갔다가 죽은 충신 박제상의 아내가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마침내 절명하면서 돌이 되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치술령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때문이다.


일본에 간 남편이 돌아오는가 싶어 동해 바다가 바라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 기다렸다니 치술령은 경주와 울산 사이에 있을 게 틀림없다. 대한민국정부 건설교통부 국립지리원 원장은 그 산의 높이가 766m라는 사실을 묻는 이 없어도 언제나 친절하게 확인해준다. 국립지리원은 치술령 정상에 그 지점이 높이 766m, 동경 129˚15′23′′, 북위 35˚39′17′′라는 사실을 적시한 삼각점 표석을 세워두었다(2002년 10월).

고구려 장수왕을 만나 자신이 섬기는 신라 왕의 아우 복호를 볼모에서 풀어달라고 하여 성사시킨 박제상, 그는 뛰어난 외교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잡혀 있는 왕의 또 다른 아우 미사흔도 구해오라는 왕명을 받고는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율포(울산)로 간다.


박제상 자신이 눌지왕에게 "고구려는 나라도 크고 왕도 자비하여 일이 쉽게 성사되었으나 왜는 그렇지 않으므로 자신이 반란을 일으켜 왜로 도망친 것처럼 계책을 써서 왜왕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과 쫓아온 아내에게 "살아서 만날 생각을 하지 말라"고 스스로 말한 데서 분명히 확인되는 것처럼, 그는 죽으러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잠시 보는 일조차 팽개치고 곧장 배를 타고 동해로 들어가 버린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몸은 돌이 되고 혼은 새가 될 너무나 사랑스럽고 애통한 아내와 딸들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이는 김유신이 전쟁터에서 돌아와 귀가 하지 않고 다시 다른 전쟁터로 가면서 재매정(김유신 집 안의 우물)의 물 한 바가지를 떠오라고 해서 들이키고는 "물맛은 변함이 없구나"하고 간 것과도 다르다. 김유신은 어지간해서는 죽음의 길이 아니었지만, 박제상은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면서 그러했으니. 만고충신의 자세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다정다감하지는 못한 사내의 면모가 아닐까.

a 치산서원 홍살문 그림자가 드리워진 치산서원 마당. 멀리 치술령 고개가 보인다.

치산서원 홍살문 그림자가 드리워진 치산서원 마당. 멀리 치술령 고개가 보인다. ⓒ 정만진


경주시와 울산광역시의 경계선을 이루는 치술령 정상에 올라 박제상의 아내처럼 애틋한 마음으로 동해바다를 한 번 바라보아야겠다. 비록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박제상의 삶은 배울 엄두가 안 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의 성공을 기다리며 끝까지 생애를 보내는 김씨녀의 마음씨만은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느 길로 가볼까? 지도를 보면 치술령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지만 치산서원에서 오른쪽으로 출발하여 충효사를 거쳐 정상까지 가는 길과, 왼쪽으로 출발하여 전원주택지 한복판을 지나 오르는 서북 등산로가 무난하고 일반적인 길이다.

두 번에 걸쳐 두 길을 각각 한 번씩 올라보니 둘 다 한 시간 가량 걸리고, 힘이 드는 정도도 엇비슷했다. 하지만 과연 박제상의 아내 김씨녀와 두 딸이 어느 길로 치술령에 올랐을지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도 꼭 답을 말하라면 동쪽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서북 능선으로 오르려면 치산서원에서 한참 왼쪽으로 가야 등산로 출발 지점이 있는데, 동쪽 길로 접어들면 만화리에서 곧장 오르기 시작하니 그리로 가지 않았을까 여겨지는 것이다. 지금은 새로 지어진 절이 산 중턱에 있어 거기까지 포장이 되는 바람에 길 모양이 우스꽝스럽게 되어 버렸지만, 당시에는 계곡을 따라 좁은 산길이 쉼 없이 이어졌으리라.

a 치술령에서 바라보는 치산서원 방향 저 아래 치산서원이 있는 만화동 일대는 박제상의 아내 김씨의 친정 마을이었다. 박제상이 죽음의 길인 일본으로 떠난 후 그녀는 딸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치술령에서 바라보는 치산서원 방향 저 아래 치산서원이 있는 만화동 일대는 박제상의 아내 김씨의 친정 마을이었다. 박제상이 죽음의 길인 일본으로 떠난 후 그녀는 딸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 정만진



박제상의 아내는 남편이 일본으로 출발한 이후 치술령 아래로 온다. 치산서원이 있는 마을 일대의 지명이 만화리인데, 이곳은 본래 그녀의 친정이 있는 곳이다. 남편이 사지로 떠났으니 그녀는 갈 곳이 없는 것이다. 그녀는 두 딸과 함께 치술령에 올라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남편이 탄 배가 나타나기만 학수고대 갈망한다.

배가 제법 다닐 터인데 어떻게 남편이 탄 배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하지 말라. 왜구가 쳐들어온다면 대규모이니 그렇게 조촐한 배가 올 리 없고, 고기잡이 배라면 나라의 사신이 탄 배처럼 치장이 되었을 리 없으니 그녀는 단숨에 남편의 배를 알아보고도 남을 터이다. 그뿐인가. 마음은 몸을 지배하는 법이니, 남편이 오지 않으면 죽어서 몸은 돌이 되고 혼은 새로 변하여 날아갈 그녀가 어찌 그런 정도를 인지하지 못하랴.

실제로 치술령 정상에 가면 동해 바다가 너무 잘 보인다. 울산 시내를 관통하여 흐르는 태화강의 물줄기와 그 끝에 펼쳐지는 울산항의 풍광, 하늘로 솟아오르는 굴뚝의 연기, 동해 바다에 정착되어 있는 배들의 모습도 어김없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이러니 그녀가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겠구나 싶은 찬탄이 저절로 일어난다. 아니, 치술령 정상은 나무에 가려 동해의 전망이 드문드문 불분명하나, 망부석에 서면 거의 180도 정도 앞면이 탁 트이면서 시야를 가리는 나뭇가지 하나 없이 온통 모든 것이 조망된다. 그러니 이곳이 그녀가 서서 동해를 바라본 지점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서 망부석을 찾을 것인가 하는 찬탄이 펑펑 용솟음친다.

a 참새미 박제상의 아내와 딸은 치술령 거의 정상 지점에 샘솟는 이 물로 연명을 했다고 한다. 이 샘은 연중 어느 때도 마르지 않고, 겨울에도 물이 퐁퐁 올라온다. 눈이 쌓인 지금 크게 차지 않은 물을 산 정상 인근에서 마실 수 있다니!

참새미 박제상의 아내와 딸은 치술령 거의 정상 지점에 샘솟는 이 물로 연명을 했다고 한다. 이 샘은 연중 어느 때도 마르지 않고, 겨울에도 물이 퐁퐁 올라온다. 눈이 쌓인 지금 크게 차지 않은 물을 산 정상 인근에서 마실 수 있다니! ⓒ 정만진


기록에 따르면, 박제상의 아내와 딸은 치술령 정상의 망부석 자리에서 물을 마시며 연명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치술령 거의 정상 부분에는 1년 내내 마르지 않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이 있다. 눈이 내려 나뭇잎과 땅들이 모두 얼어 있는 한겨울에 치술령에 올랐건만 진정 이 샘물은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촐촐 흐르고, 또 고이고 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곱게 떠서 샘물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부터 약 1600년 전에 박제상의 아내와 그 딸들이 마신 샘물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지아비와 아버지를 기다리려면 살아서 목숨을 부지해야겠기에 마지못해 마신 물을 나는 그저 등산의 갈증을 풀기 위해 들이키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스스로 참새미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녹이며 그녀들처럼 순절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참새미, 일명 망부천이라는 이 샘물은 망부석에서 100m, 혹은 450m 지점에 있다. 100m 혹은 450m? 길 안내가 좀 이상하지만 사실이다. 울산 망부석에서는 100m이고, 경주 망부석에서는 450m이다. 치산서원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든 왼쪽으로 올라가든 등산객은 항상 울산 망부석에 먼저 닿는다. 치술령 정상 300m 지점이다.

이 망부석에 올라 왼쪽으로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동남쪽 산 아래 치산서원이 있는 만화리를 바라보면서 박제상의 아내를 안타까워하다가, 몸을 돌려 뒤를 보면 참새미 100m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 사이에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 오솔길이지만 샘까지의 거리는 100m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산 정상에 올라 다시 50m 가량 내려가야 하는 경주 망부석에서 이 참새미까지는 450m 정도 되는 것이다.

a 치술령 정상의 신모사지 비석 치술령 정상에는 박제상의 아내를 기려 제를 지냈던 신모사의 터를 밝히려는 비가 서 있다.

치술령 정상의 신모사지 비석 치술령 정상에는 박제상의 아내를 기려 제를 지냈던 신모사의 터를 밝히려는 비가 서 있다. ⓒ 정만진



울산 망부석? 경주 망부석? 울산시와 경주시는 서로 자기네 땅 안에 있는 큰 바위가 진짜 망부석이라고 우기는 듯하다. 울산시가 세운 이정표와 망부석 안내판에는 '경주 망부석'에 대해서 말이 없고, 경주시가 세운 이정표와 망부석 안내판에도 '울산 망부석'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참새미가 가까이 있고, 동해 바다와 만화리가 두루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울산 망부석이야말로 박제상의 부인이 서 있던 곳일 듯싶고, 동해 바다가 더 넓게 보이는 점만 중시하면 경주 망부석이 더 그럴 듯하지만, 어차피 진위를 가려야 하는 과학적 사실도 아닌 바에야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딸들도 같이 망부석이 되었다고 하니 그 망부석들이 모두 그녀들의 슬픔이 서린 한스러운 장소가 아닐까… 여겨진다.

a 은을암 종루에서 바라보는 치술령 은을암 바위를 비스듬히 타고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 위로 올라가면 망부석이 있는 치술령 정상이 똑바로 보인다.

은을암 종루에서 바라보는 치술령 은을암 바위를 비스듬히 타고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 위로 올라가면 망부석이 있는 치술령 정상이 똑바로 보인다. ⓒ 정만진


살아서 몸으로는 지아비와 아버지를 만날 수 없으니 이제는 새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죽어 돌이 되었지만, 혼은 새로 변해 창공으로 치솟았다. 박제상의 아내는 새 '치'가 되고, 딸은 새 '술'이 되어 멀리멀리 날아갔다.

새들은 10여 리를 날아 거대한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 새가 숨은 바위, 은을암은 치술령 정상에서 산등성을 따라 다시 오르락내리락 4.5km를 더 걸어야 한다. 새는 날아서 쉽게 갈 수 있지만 치술령 정상까지 오르느라 이미 지친 사람의 몸으로는 그리 간단하게 마음 먹을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박제상의 아내와 딸은  그렇게 새가 된 것이다. 실제로 하산하여 치산서원에서 은을암까지 가보면 차를 몰고 가도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다. 거리가 아니라 워낙 좁고 가파르고 굽은 길이 문제가 된다.

차가 절벽에 구를까봐 저절로 거북이 운행을 하게 되니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르게 된다. 아마 한 번 그 길로 차를 몰아본 사람이라면 다시는 그리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은을암에서 반대편으로 차를 몰고 내려오니 '위험하니 차량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시퍼런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a 은을암 죽어서 새가 된 박제상의 부인이 날아 들어간 거대 바위(은을암) 사이의 동굴 같은 틈. 사람이 촛불을 켜고 들어간 모습으로, 촛불은 암자(역시 이름은 은을암. 바위 은을암 앞에 세운 암자 은을암이란 의미)에서 기도 하는 신도들을 위해 마련해둔 것이다.

은을암 죽어서 새가 된 박제상의 부인이 날아 들어간 거대 바위(은을암) 사이의 동굴 같은 틈. 사람이 촛불을 켜고 들어간 모습으로, 촛불은 암자(역시 이름은 은을암. 바위 은을암 앞에 세운 암자 은을암이란 의미)에서 기도 하는 신도들을 위해 마련해둔 것이다. ⓒ 정만진


은을암에는 동굴이 있었다. 새가 날아 들어간 동굴이다. 망부석도 산 정상에 있지만 은을암 또한 완전히 꼭대기에 있다. 동굴은 그리 깊지 않아 안으로 한 번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은을암에 기대어 설치해 놓은 계단을 올라가면 종이 있는데, 좁고 사방이 절벽인 종루에 버티고 서서 몸을 추스르고 바라보면 망부석이 있는 치술령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와 은을암(隱乙岩)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은을암(隱乙庵) 뒤로 가는 좁은 길을 따라 몇 분 걸어오르면 다시 동해가 보인다. 왜 새가 이곳으로 날아왔는지 알 것만 같다.

이제 시간을 내어 박제상이 동해 바다로 출발한 지점을 한 번 찾아가 보려 한다. 율포라고 했으니 지금의 울산이다. 그 곳에 당도하면 박제상이 마침내 죽고만 대마도에도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쩔거나. 혹여 대마도에 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박제상과는 달리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그 때면 나는 다시 치술령 망부석에 올라 슬프게 죽어간 그의 아내와 딸을 위해 술 한 잔을 부을 것이다. 물론 박제상을 위해서는 대마도에서 이미 한 잔 술을 쳤으리라.
#박제상 #치술령 #망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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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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