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 콘서트.노래하는 병휘씨. 여행 길에서 머문 집에서 즉석 콘서트가 열렸다. 분위기가 좋아 다시 가고 싶다는 집.
강기희
사람의 온도로 살아가는 집, 가수 병휘씨와 게바라씨 부자 오다정선의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집 마당엔 눈이 설원처럼 깔려 있고, 눈은 몰려온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솔았다. 발을 옮길 때마다 얼음장이 꺼지듯 푹푹 빠지는 눈밭. 그들은 그 눈밭을 걸어 가리왕산에 있는 우리집으로 왔다.
게바라씨와 아들 형규는 가방을 풀자마자 땔나무를 해야 한다며 앞산 자락으로 올라갔다. 자신들이 머물 방에 군불을 지피기 위함이었다. 병휘씨는 추운지 방안을 서성이며 문 밖 출입도 하지 않았다. 며칠 전에 이사를 한 터라 몸살 기운도 있다고 했다. 게바라씨는 병휘씨 이사를 도우면서 허리를 삐끗했다고 하니 겨울철 이사가 사람 잡은 셈이다.
이사를 왜 했냐고 하니 집주인이 나가라는데 별 수 있냐는 병휘씨. 그렇지. 주인이 나가라는데 버틸 재주는 없겠지. 허리 삐끗한 게바라씨, 끌고온 나무를 톱으로 베느라 절절 맨다. 아들 형규는 아비를 돕는다고 하지만 아직 도움이 될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열 살도 되지 않은 나이 때 산에 올라 나무를 했던 내 기억은 요즘 아이들에겐 옛날이야기도 되지 못하고 그야말로 '뻥'일 뿐이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시기라도 하는 게바라씨. 나무를 베고 도끼질을 하더니 이번엔 고장난 아궁이를 고친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고장난 아궁이는 어머니가 사용하던 방의 아궁이. 열흘 전쯤 고장났는데, 아들은 추위를 핑계 삼아 고치기를 미루고 있었다. 다른 방도 있으니 봄이 되면 고치리라 마음 먹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게바라씨. 마른 진흙을 용케 구해 물을 섞은 후 흙을 썩썩 갠다. 손이 시릴 법도 한데 그런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단다. 무너진 아궁이를 척척 잘도 고친다. 어머니는 게바라씨만 오면 아들을 밀어내고 이것저것 주문이 많다. 게바라씨 솜씨를 어머니도 인정하기 때문이다. 얼어 붙은 보일러까지 녹여낸 게바라씨는 아들과 눈이 가득한 마당에서 축구시합을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아들도 마찬가지. 눈밭을 뛰어 다니며 두 사람은 마냥 즐거워했다. 그 시간 병휘씨는 방에서 기타를 쳤다. 저녁 시간 어느 모임에서 작은 공연을 해야 하기에 손을 풀고 있는 것이다. 손이 시려 기타조차 어렵다는 정선의 날씨. 그 시간 그의 손을 뎁혀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방에선 기타소리가 나고 마당에선 공을 차면서 내는 아들과 아비의 거친 숨소리가 하모니처럼 잘도 어울린다. 세 개의 아궁이에선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촌의 집. 마을 사람 누군가 보면 '저 집에 잔치라도 벌이나' 할 왁자함. 날은 춥지만 사람의 온도로 살아가는 집의 겨울 날 오후 풍경이다.
다섯 사람이 있으면 다섯 사람의 온도로 끓고, 두 사람이 있으면 두 사람의 온도로 마음을 뎁히는 우리집. 가끔 어머니와 냉랭하게 다투다가도 마주 않으면 그 만큼의 온도로 사는 집. 산촌에 있어 사람의 온도보다 바깥 날씨가 더 추운 곳. 그러나 그런 추위를 견디며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운 사람 하나 찾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