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인의 눈에 박힌 전봇대

본질을 보지 못하는 현장방문은 비용만 발생시킬 뿐이다

등록 2008.01.28 13:57수정 2008.01.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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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명박 당선인은 오는 2월 25일 0시를 기해서 임기가 개시된다. 특히 그는 현장중심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위정자가 현장을 직접 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현장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지 않는 정책결정이 종종 현실과 괴리로 인해서 표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장을 중시하는 리더십은 바람직하다.

 

현장을 이해하는 시각

 

최근 이명박 당선인이 인수위 회의에서 발언한 전봇대가 화제를 낳은 일이 있었다. 그는 인수위원들에게 현장을 직접 가보고 정확히 파악한 후 정책방향을 정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바로 그 전봇대를 예로 들었던 것이다. 조선소 현장을 방문했던 경험을 상기하며 전봇대 하나 옮기는 일조차 몇 년이 지나도록 해결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이 애로사항을 많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의 보수언론들은 그 일화를 대서특필하였다. 마치 존경받을만한 새로운 리더십의 전형인 것처럼 찬양하기에 바빴다. 본인이 과거 현장에 가서 경험한 바에 바탕을 두고 들었던 예화이기 때문에 뭔가 그럴싸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대서특필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언론들은 그 현장에 가서 보고 검증한 후 보도하지 않았다. 현장중심의 리더십을 찬양하면서 사실은 책상에 앉아 기사를 작성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때로는 민망할 정도로 아부하는 기사도 눈에 보였다.

 

더욱 이상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한전은 물론 산업자원부까지 나서서 해당 전봇대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는 특정한 전봇대를 급히 옮겼다고 한다.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온갖 행정력이 동원되는 우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일의 근원적 해결책에 대한 접근은 여전히 요원하다. 단순히 전봇대를 하나 옮기는 것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냥 권력자에게 잘보이기 위하야 전시적 조처를 급히 서두른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현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접근해서 엉뚱한 행정력이 낭비된 것이다. 본질을 정확히 살피고 잘 파악해서 대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대통령 당선인의 지적이 현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만 발생하고 말았다. 그 사건의 본질은 그리 간단히 지적하고 비판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선인의 발언은 이미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켰다. 현장을 자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심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면 다행이다. 권력자의 시각은 정확해야한다.

 

대불산단의 전봇대들

 

대불산단 지역의 전봇대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단순하게 코멘트하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방송에서 심층취재를 하여 보도한 것은 매우 적절하고 중요한 언론의 태도로 귀감을 삼아야할 것이다. 무조건 권력에 아부할 목적으로 대대적으로 떠들어내던 보수언론들은 스스로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부터 해야할 것이다.

 

대불산단이 들어선 영산강 하구언에는 대규모 간척으로 조성된 농토가 있었다. 그저 한적한 농촌마을이었던 그 곳에 농토가 대규모로 조성된 것이다. 행정구역상 전남 영암군 삼호면 일대에 조성된 넓은 간척지와 주변 농토가 대규모 산단으로 변화를 하게된 계기는 1987년 대선이다. 대선에서 당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대불공단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하면서 시작되었다.

 

공단조성이 시작되면서 점차 주변의 농지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농지를 많이 가잔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익은 모두 외지인들의 몫이었다. 불과 몇천원하던 농지가 하루아침에 몇만원씩 호가하자 현지인들은 일찌감치 모두 팔아치운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름세는 멈추지 않았고 일찍 팔아버린 사람들은 주변에서 대토를 구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오히려 정든 고향땅을 떠나 도시의 노동시장에 유입된 경우가 많았다.

 

지역은 점차 변모를 거듭하였고 공단이 들어서면서 4차선의 넓은 도로도 건설되었다. 공장들이 들어오고 대학도 세워졌다. 문제는 넓은 땅에 비하여 유치된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일반공단으로 조성된 그 땅에 삼호중공업등이 들어서게 되었다. 전봇대의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 문제이다.

 

일반공단의 경우 4차선의 넓은 도로로 충분하다. 그러나 조선소가 들어오면 문제는 전혀 달라지는 것이다. 조선에 필요한 부품이나 자재들이 워낙 부피가 커서 4차선 도로로는 이동이 어렵다. 특히 길 양편으로 늘어선 전봇대는 조선을 하는 기업들에게 대단히 불편한 문제가 아닐 수 었다. 그 길 양편에는 수백개의 전봇대가 늘어서 있다. 단지 몇개의 전봇대를 옮겨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대안은 전선을 지중선로로 바꾸거나 길을 10차선 정도로 넓혀서 거대한 선박재료들을 옮길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그런데 수천억의 예산이 필요하다. 일개 군단위의 작은 지자체가 감당하려면 수백년분 예산을 쏟아부어야할 일이다. 결국 전남도청과 산업자원부 그리고 한전까지 모두 나서서 풀어야할 문제가 되었다. 핵심은 예산문제이다.

 

그런데 특정 지역의 산단지역을 지원하기 위해서 몇천억의 예산을 편성하기는 어렵다. 특히 예산의 편성권은 국회에 있고, 국회는 주로 한나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게된 것이다. 그러나 방치할 수만은 없는 일이어서 지금 지중선로화 작업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예산이 허용되는 범위에서 진행시켜왔으며 상당한 공정이 이미 진척되고 있다.

 

빠른 시일내에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조선업을 영위하는 기업이나 해당지자체나 유익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회에서 특정지역에 수천억을 지원하는 예산을 편성해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명박 당선인이 아주 간단한 문제처럼 지적한 그 일이 사실은 지방자치단체나 산자부등의 관료주의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면 그러한 곳에 예산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지 않는 국회였다. 말하자면 비판의 대상이 잘못 선정된 엉뚱한 지적이었다는 것이다.

 

관성적인 전봇대들

 

일의 전말을 보면 우리사회의 곳곳에는 대불산단의 경우와 같은 전봇대가 너무도 많다. 전국토의 곳곳에 그러한 거추장스러운 전봇대가 놓여있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남 영암군이 아닌 전국의 곳곳에 수천억,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어야한다. 감세에 열중하는 차기정권이 그러한 예산을 어디에서 만들 것인지도 지켜볼 일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전봇대에 대한 지적은 이당선인이 부적절하게 지적한 것이다. 뭔가 잘 안되면 항상 관료주의를 탓하며 앞뒤를 살펴보지 않고 비판을 쏟아내는 시각이 작동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기업들은 항상 피해자이고 공권력은 마치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의 집합체로 여기는 시각 말이다. 그 자체가 사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시각의 전봇대가 아닌가 여겨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주장에 무조건 박수부터 치고보는 보수언론들의 시각에도 거대한 전봇대가 너무도 많이 박혀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권력자를 찬양하는데 혈안이 돼서 사안의 본질을 외면한 채 아무렇게나 글질부터 하고보는 언론인들의 눈에 박힌 전봇대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보도하기 전에 최소한의 사실확인을 하고 기사를 쓰거나 기사가치가 없다면 침묵하는 것이 옳다.

 

온국민이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는 정권이라서 그들이 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만을 추구하는 정권인수위도 스스로 자신들의 눈에 박힌 전봇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지지율이 낮은 정권이라고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기에 집착하는 것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당선자의 지적대로 현장을 먼저 가서 면밀하게 파악한 후 옳은 것은 수용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정권을 인수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인 '온고이지신'의 자세이다.

 

모두가 자신들의 눈에 박힌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들의 눈에 있는 작은 티끌을 조소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사회가 좀 진지하게 돌아볼 일이다. 전봇대만 보지말고 그 전봇대를 뽑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의 눈에 전봇대를 박아둔 사람들이 현장에 가서 둘러본들 뭘 알아내고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2008.01.28 13:5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전봇대 #이명박 #관료주의 #언론의 전봇대 #인수위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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