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아픈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한사코 오르겠다 고집하신 순천 깃대봉

등록 2008.01.29 16:48수정 2008.01.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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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겨울산 넉넉한 마음을 하얗게 담고 있다.

겨울산 넉넉한 마음을 하얗게 담고 있다. ⓒ 전용호


작년 퇴원 후 1년 만에 재입원. 그리고 십여일간의 병원생활. 퇴원을 하시고도 아직 몸이 불편하다고 하시던 아버지가 산에 가자고 한다. 그것도 집 뒷산도 아닌 800m가 넘는 순천 깃대봉(858.2m)을 가자고 한다.


이리저리 생각을 해 봐도 산에 간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바깥 바람을 쐴 것이라면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였더니 한사코 산으로 가자고 하신다. 아버지는 이미 준비를 다 하셨다. 그렇게 가고 싶어 하시는데 못 들은 체 하기도 난감하다. ‘그래, 조금 올라가시다가 내려오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청소골로 향했다.

청소골은 여름이면 계곡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으며, 정혜사라는 오래된 절이 있는 곳이다. 여름에 몇 번 물놀이를 왔지만 산에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도로는 굽이굽이 한참을 들어가다가 멈춰 선다. 순천-구례 간 도로를 개설하는데 마지막 터널을 남겨놓고 있다.

a 미사치 올라가는 길 산책하듯 편안하게 올라갈 수 있다.

미사치 올라가는 길 산책하듯 편안하게 올라갈 수 있다. ⓒ 전용호


등산로는 도로의 마지막에서 시작한다. 산으로 올라서니 차가 다닐 정도의 넓은 완만한 길이다. 아버지는 옛날 한양 과거보러 가던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대나무 숲이 있는 곳은 집이 한 채 있었다는 설명도 함께 해 주신다. 도란도란 걸어가던 아내는 과거 보러 가는 선비가 된 기분이라고 한다.

30분 정도 서서히 고개에 올라서니 ‘미사치’라는 이정표가 있다. 의자에 앉아 따뜻한 물 한 모금 축였다. 그리고는,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하니 아버지는 조금만 더 올라가 보자고 하신다. 편안하게 올라와서인지 조금 더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안내판에는 정상까지 2535m를 알려주고 있다. 중간에 내려오는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더 올라가기로 했다.

a 산행 얼마전에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산행내내 미끄럽다.

산행 얼마전에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산행내내 미끄럽다. ⓒ 전용호


조금 올라가니 눈이 아직 녹지 않아 하얗게 미끄러진다. 조금씩 올라서는 길에 아버지도 힘들어하신다. 우리 보고 먼저 가라면서 서서히 올라간다고 하신다. 이제 그만 내려갔으면 싶다. 올라갔다 내려오는 등산객들도 잔뜩 고생한 얼굴이다. 산 아래 쌀쌀하던 날씨는 산속으로 들어서면서 따스한 겨울햇살에 부서진다. 하늘은 가을 하늘 마냥 파랗고 높다랗다. 잎을 떠나보낸 나무들이 하늘과 대비되면서 쓸쓸하게 보인다.


a 겨울나무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겨울나무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 전용호


a 겨울나무 하늘을 가린다고 팔을 펼치고 있다.

겨울나무 하늘을 가린다고 팔을 펼치고 있다. ⓒ 전용호


a 산행중 힘들어서 잠시 휴식중

산행중 힘들어서 잠시 휴식중 ⓒ 전용호


가볍게 갔다 올 생각으로 준비 없이 나섰는데, 아버지는 정상까지 갔다 오신단다. 정말 난감하다. 몸이 정상이 아닐진대 왜 그리 고집을 피우시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보통보다 느린 걸음으로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가는 길에는 중간으로 내려서는 등산로는 없었다.

삼거리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가 정상을 향했다. 백운산 억불봉이 하얀 고깔모자를 쓰고 유혹하고 있다. 얼마가지 않아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정상에 섰다. 보통 1시간 30분 거리를 2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착했다.


호남정맥의 일부인 깃대봉은 바람개비처럼 팔을 벌리고 섰다. 계속 가면 백운산을 넘어 호남정맥의 종착점인 바다와 마주하게 된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뾰족하게 보인다.

a 멀리 보이는 정상 겨울산의 아름다움 보다는 언제 저기까지 가느냐가 걱정이다.

멀리 보이는 정상 겨울산의 아름다움 보다는 언제 저기까지 가느냐가 걱정이다. ⓒ 전용호


a 정상에 서서 그렇게 한참을 계시다 내려오셨다.

정상에 서서 그렇게 한참을 계시다 내려오셨다. ⓒ 전용호


하늘과 좀 더 가까이 있는 정상은 부서지는 햇살과 하얀 눈으로 인해 자잘자잘한 적막이 흐른다.

아버지는 왜 산을 오르고 싶어 했을까?
어머니 생각이 나셨을까?
몇 년 전에 무릎까지 빠지도록 눈이 쌓인 이 산을 올라왔었다고 말씀을 하신다.
지금은 두 분이 올라올 수는 없다.

아버지는 산으로 이어진 풍경들을 한참을 바라보신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아버지의 뒷모습이 더욱 외롭게 보인다.

덧붙이는 글 | 1.27(일) 순천 깃대봉을 올라갔다 왔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자꾸만 할 수 있는게 적어지는 아버지(78세)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산을 언제까지 올라 다니실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1.27(일) 순천 깃대봉을 올라갔다 왔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자꾸만 할 수 있는게 적어지는 아버지(78세)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산을 언제까지 올라 다니실 수 있을까요?
#아버지 #깃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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